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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사이시옷 Apr 09. 2023

살 날이 많은 게 문제였어요.
어느 CRPS환자의 고백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 투병 에세이스트 김소민 님


※본 콘텐츠는 팟빵 메인 콘텐츠로 추천되었습니다.



되게 밝은 청년이었어요. 세상을 사는 게 재미있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평범한 한 청년이었던 것 같아요.

2018년도 여름에 대상포진에 걸리게 되었는데요, 동네 병원에서 바로 치료를 받았음에도 증상이 악화돼서, 진료의뢰서를 써 주시길래 집 근처 대학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호전될 줄 알았는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어요.


그 당시 여름철이어서 제가 굉장히 얇은 이불을 덮고 잤거든요.

이불이 오른발에 닿으면 소리를 지르면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취통증학과 첫 진료를 보게 되었는데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의사 선생님께서 

"환자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치료받으셔야 돼요,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끝까지 진료받으셔야 됩니다"

라는 이상한 말씀을 저에게 하시더라고요. 그 의사 선생님의 말씀, 왜 그런 조언을 해주셨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CRPS 통증에 대해 좀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느끼는 통증을 0~10점으로 나눌 경우

출산할 때의 통증을 한 7점이라고 한다 하더라고요.


CRPS 통증은 9~10점을 계속해서 24시간 내내 느껴야 하는 질병이라고 해요.

CRPS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표현하는 게 '저주받은 질병' 초반에는 그 표현이 너무 싫었거든요

근데 이 투병을 하다 보니 맞더라고요. 통증 때문에 사람이 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자극들이 전부 통증으로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오른발이 통증 부위였기 때문에 양말을 신을 수가 없었어요. 양말의 천이 닿으면 그게 그렇게 아플 수 없었고, 샤워할 때 떨어지는 물방울이 저한테는 쇠구슬처럼 세게 느껴지더라고요.


다리를 움직이면, 다리 움직임으로 인한 공기의 흐름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통증이 유발이 돼요.

공기만으로도 아프다 보니까 바람이나, 선풍기 바람, 에어컨 바람 이런 거는 당연히 못 쐬고, 모든 것을 통증으로 느끼는 질병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굉장히 밝은 사람이어서 병원에서도 의료진분들이 "소민이는 참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좋아질 거야"라고 하고 다닐 만큼 항상 웃고 다녔는데 점차 웃을 일이 없더라고요. 24시간 약을 먹어도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웃을 수가 없고 이 악물고 버티다 보니 치아에 무리가 가서 마우스피스를 물고서 계속 버텨야만 했어요.


'죽음밖에 답이 없나?'라는 생각까지 갈 만큼 사람이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프기 전에는 '이렇게 세상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수가 없구나'라고 살만큼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다 보니까 

'어떻게 해야 완벽하게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냥 단순히 '아 죽고 싶다, 너무 아파서 죽고 싶다'가 아니라

'이 통증을 끝내기만 한다면 그 어떤 방법도 상관없겠다'라는 생각. 

애매하게 자살시도를 했다가는 이 통증과 더불어 더 힘든 상황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생각과 실제로 CRPS 젊은 환자분들의 자살률이 굉장히 높고,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다가 더 힘든 상황에 놓인 분들을 봐서 정말 완벽하게 죽을 수 있는 법에 대해서 매일같이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마취통증의학과에서 기본적인 신경차단술부터 이름을 알 수 없는 신경차단술을 전부 받았어요.

일일이 치료명을 여쭤볼 수도 없었던 게 진료실에만 들어가면 너무 아파 있는 상태에서

"너무 아파요, 뭐라도 해주세요" 


그렇게 치료를 받아도 통증은 거의 잡히지 않아서 모르핀과 아티반이라는 진정제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 주사를 맞는다고 해서 제가 계속 괜찮은 것도 아니고 주사를 맞고 나면 그날 저녁 정도 한 끼 정도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로) 목숨을 잃을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너무 심하다 보니까, 목숨과도 맞바꿀 만큼 여러 치료를 받게 했던 것 같아요.



젊다는 게 저한테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람들은 '젊으니까 이겨낼 거야'라고 위로를 해주는데

제가 투병을 해보니까, 젊으니까 문제더라고요.


살 날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게 문제였어요.
이 통증을 가지고 남은 50 년을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지금 보시다시피 정말 너무 많이 호전이 되어서, 교수님들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실 만큼 많이 호전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 몸에 척수자극기 기계도 있고, 약도 계속 먹고 있지만 계속해서 좋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치료를 받아 가고 있고 재활과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와 영상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인데요. 저처럼 지금 를CRPS 앓고 계시는 환자분들 또는 보호자분들 또는 장기 투병하고 계시는 분들이나

절망 속에 빠진 분들한테 희망을 드리고 싶다는 이유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CRPS 환자 중에서도 굉장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라고 교수님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좋아진 저의 모습을 보고 오늘 하루라도 버티실 수 있는 힘을 좀 가지셨으면 하는 마음에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플 때 사람들이 저한테 희망이라는 걸 계속해서 심어주려고 했지만 제 상황이 절망 속에 빠져 있다 보니 계속해서 튕겨냈고, 그럼에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받다 보니 조금씩 정말 희미한 불빛이 보이더라고요.


보통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기억은 미화돼서 좋은 것만 남는다라고 하는데, 제가 이렇게도 호전이 되었지만 사실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은 절대 미화가 되지 않더라고요.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은 저한테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팠던 시기에 느낀 게 있어요. 

내가 사람이니까 걸어 다니고 사람이니까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게 아니구나
당연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누리고 있었던 삶이네?" 



오히려 아프고 나서부터 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더라고요.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 오는 행복과 감사가 커서 평범한 몸과 마음.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나가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kimsomin91


https://www.youtube.com/watch?v=yt_zImoFxag&t=378s


https://youtu.be/3 OwCOvrZr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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