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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사이시옷 May 25. 2020

"희망"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


3년간 한 입시 미술학원 브랜드의 지역 디자인 실장을 했었다. 내가 그곳에서 하는 일은 주로 미술학원의 홍보 전반에 관련된 일인데, 이를테면 전단지, 홍보동영상, 온라인 홍보제작, 각 원내 안내 부록 등을 제작하는 일이다.


나의 자리는 벽을 바라보고 있는 자리. 상담실은 내 의자 뒤에 위치해 있었고, 상담실의 벽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작업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불편한 자리에서 근무했었다.


미술학원의 하루는 다른 직장인보다 늦게 시작한다. 전체 일과가 학생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인데, 원체 밤을 좋아했던 나는 초반에 이점이 아주 좋았다. 남들보다 늦게 끝나지만 밤 시간은 남들보다 더 쓸 수 있으니 뭔가 내 시간을 맘대로 활용하는 느낌에서 좋았다. 


또한 학생들이 많아서 좋았다. 물론 대개의 아이들은 2~3명 이상씩 모이면 시끌벅적하지만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게도 하다.(이는 사방이 오픈된 곳에서 일했던 탓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 학교를 끝내고 돌아와 쉴 틈도 없이 바로 학원으로 와 붓을 잡고 공부해야 하는 고단함, 그 속에서 잠깐의 쉬는 시간마다 수다를 떨며 즐거워하는 천진함, 특정 주기마다 돌아오는 미술 평가에 대한 초조함, 원내에 게시된 작년 합격자를 보는 희망과 절망감 같은 것 말이다. 


우리들이 과거에 겪었던 학창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요즘 아이들도 힘들겠구나"라고 어렴풋이 생각하는 정도보다 아이들의 피로도는 상상 이상으로 고되며 이는 매년 바뀌는 교육정책이나 입시 제도 등으로 인해 착실하게 한해 한해 더욱 힘들어진다. 그리고 미술학원, 그중에서도 입시미술 학원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학원비가 상당히 비싸다. (그만큼 그 학원은 합격률이 좋았던 학원이었다.)


학부모과 학생은 어떤 비눗방울 같은 희망으로 엮여있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친구들, 더 좋은 노후, 더 좋은 미래. 


그리고 이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희망은 정말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연금, 보험, 교육, 재테크, 주식, 부동산, 도구, 사람, 배우자, 시간, 확률, 미래 등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희망을 거래한다. 


비눗방울처럼 위태롭지만 매력적인 이름 희망 / 이미지 = 프리픽 




1_희망은 왜 잘 팔릴까?


어떤 물건이 잘 팔리는 것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우리 역사는 단 한 번도 희망의 수요가 부족했던 적이 없다. 그리고 잘못된 희망을 판매하거나 사기 치는 것이 아니라면 이 희망을 팔거나 팔기 위해 연구하고 이용하는 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더욱 그렇다.

단, 필요한 만큼의 수요와 필요한 만큼의 공급이 중요한 거지 / 이미지 = 프리픽




2_희망은 어떻게 판매되는가?


희망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VIP 고객은 현재 무언가에 대한 강한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희망을 구매한다. 살 사람들은 그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산다. 


단적인 예로 최근 흥미로운 홍보글을 보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20대 중반 전까지 성장판이 닫힌다. 그 후로 사람은 보조도구를 사용하거나 특별한 수술이 아닌 한 키는 성장하지 않는다.(자고 일어났을 때와 특정 운동을 했을 때 일시적인 변화 제외) 이는 초, 중, 고 과정의 체육이나 가정과목 등에서 알고 있고 상식의 범위 안에서 모두가 동의하고 인지하는 내용이다.


"성인도 복용하면 3개월 안에 키가 크는 약"


이런 제품이 짧은 시간 동안 판매되었다. 소셜에서의 잠깐의 이슈라고 생각했던 것이 잠깐 동안 많은 변형과 후기들로 복사되고 배포되었다. 나는 이 제품이 많이 팔렸거나 적어도 손익분기점의 2~4배 이상의 수익을 봤을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유튜버처럼 보이는 일반인이 찍은 광고가 유튜브 광고로 나왔으니 광고비 모델비 등을 생각해봤을 때 그 이상의 수익을 봤으니 집행됐으리라.


후에 이 약을 구매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글이 올라오고 그들을 비판했다. 비판글을 대략적으로 정리해보면 "보통의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저런 말에 속지 않는다."라는 걸로 의견이 모인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렇다. 

"보통의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도 거짓 희망을 구매한다."

희망을 판매하는 판매자는 홍보가 필요하다. 

"당신은 그 희망이 필요하다"라는 암시다.


적절한 일반인의 예시와 "당신은 몰랐겠지만 여태 이것이 불편했었다."라는 자료 같은 것이다. 당신에게 그것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 희망을 붐으로 만들어 유행을 시키고 일상 속에서 듣게 만들고 그것에 대한 연구자료가 쏟아진다. 그러다 보면 그중 일부는 생각하게 된다. "아 나는 저 희망이 필요했었구나", "내가 힘든 이유는 저 희망이 없어서였구나"


타인의 욕망을 희망하게 되는 타이밍에 희망의 판매는 이루어진다.

이런 함정에 빠진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같은 맥락의 질문을 해본다.

"당신은 희망을 구매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가?"

나는 위의 내용 중 구매자를 헛된 희망에 빠지게 하는 것을 "나쁜 희망"으로 정의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장판이 닫히면 키는 커지지 않는다. 계란형 존경합니다.  / 이미지 유튜브 피지컬 갤러리 中





3_우리는 희망을 어떻게 소비하는가? 


세 가지 단어로 축약된다. [화폐 · 편의성 · 시간] 간단한 명제로 위 세 가지를 정리해보자.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수술을 하지 않는 전제하에 모두가 인정하는 절대 진리 중 하나다.


1) 돈


자본주의는 편리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랐다. 무언갈 주고 대가를 받는 것에 익숙하다. 보통은 그게 화폐이다 보니 생기는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있다. 위 명제의 괄호 안에 (화폐)을 구겨 넣는다.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보자. 타인에게 자신이 다이어트 중이라고 말할 때, 운동기구를 삿다거나, 보조식품을 삿다거나, 의상을 삿다거나 하는 말을 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다이어트를 화폐로 구매했다.


2) 편의성


운동은 힘들고 귀찮다. 운동 후에 샤워도 해야 하고 익숙한 패턴에서 변화를 주려니 불편하다. 그렇다 보니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효율적인 공간, 전문적인 시스템, 간편한 패턴 등이 그렇다. 타인에게 자신이 헬스장을 신청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효율적인 PT 과정을 신청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다이어트의 편의성을 구매했다.


3) 시간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고 먹고, 자고, 일하고,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한 몇 안 되는 내 시간에 "운동"이라는 변수가 들어온다. 이는 운동을 하기 전 준비시간, 운동하는 시간, 샤워하는 시간이 소비된다. 좀 더 빠르게 운동하는 법, 빠르게 세정하는 목욕용품, 빠른 준비를 도와주는 운동화 끈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다이어트에 들어가는 과정을 줄여주는 시간을 구매했다.


예민할 수 있는 주제라 미리 선을 긋고 가자면, 위 내용의 옳고 그름은 없다. 그것이 잘못되고 잘 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희망은 위와 같이 화폐, 편의성, 시간이라는 타이틀로 소비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판매자는 이를 활용한다.




4_희망의 소비로 구매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판매자가 희망을 판매하는 미끼는 '목적성'(혹은 동기부여)이다.


당신은 이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강한 암시가 그것이다. 판매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구매자에게 암시한다. 구매한 상품이 당장이라도 이룰 수 있는 꿈에 닿을 것처럼 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극적일수록 좋다. 혹은 무방비 상태의 예비 구매자를 자극하는 문구도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구매자가 희망을 구매하는 이유도 목적성일까?

나는 '행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구매로 구매자가 원하는 희망을 바로 이루어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건물주가 되고 싶어 건물을 샀으나 그에 대한 세금이나 임대 문제로 즉각적인 수익이 나지 않고, 영어를 배우고 싶어 영어 스터디 코스를 삿으나 구매와 동시에 마법처럼 원어민 수준의 영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수입산 무쇠 프라이팬을 샀다고 해서 호텔 셰프 수준의 요리를 뚝딱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구매자가 구매와 동시에 해당 목표가 바로 이루어 지길 바라는 희망은 헛된 희망이다. 앞서 말한 "나쁜 희망"에 해당한다. 


나쁜 희망을 판매하는 판매자는 마치 제품을 구매함과 동시에 구매자의 희망을 이루어 줄 것처럼 포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0개월 동안 복용하면 키가 커지는 약"을 구매하는 사람과 동일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판매자의 방법이 매우 정교하고 교묘해서 우리가 "나쁜 희망" 제품을 구매했다 하더라도 누구도 우리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컨데 운동화를 샀을 때 구매자가 원하는 건 운동하는 건강한(멋진) 자신의 모습 같은 것 / 이미지 = 프리 픽






5_그렇다면 "좋은 희망" 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한 답은 어렵다. 구매자가 실제로 '행동력'을 발휘했는지에 대한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과물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고 결과론적이다. 일반인이 쉽게 그것이 좋은 제품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판단이 쉬웠다면 "나쁜 희망"을 구매하지 않았을 테니)


다만 그 과정을 보고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해선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구매자의 행동력에 자극을 주거나, 약간의 강제성을 띄거나, 하나의 단계를 클리어했을 때 구매자가 그 단계를 클리어했다는 성취감을 주는 것, 또는 그 희망을 이루어 낸 후의 다음 스텝을 제시하거나 스스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제품이 좋은 희망일 것이다.


즉, 구매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가능성이 있고 구매자가 실질적으로 구매로 인한 이득을 보았거나 성장했을 때(혹은 자신이 성장했다고 판단했을 때) 좋은 희망이 거래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자격증을 들 수 있다. 자격증은 두 가지가 있다. 국가에서 발급하는 국가자격증과 일반에서 발급하는 민간자격증(혹은 사단법인 자격증)이 그것이다. 국가자격증은 국가에서 인증하고 누구에게나 제시할 수 있는 자격증이지만 민간자격증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보통 학원이나 특수기관에서 발급하며 그 자체로는 이렇다 할 의미가 없다. 정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정한 부분에서 남들보다 공부를 더 했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의 선을 넘지 않는다. 민간 자격증의 경우 해당 과정 수료 시 증서나 그럴듯해 보이는 상징물을 준다. 객관적인 시선으로만 보자면 이러한 것들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과정으로 봤을 땐 생각보다 강한 의미가 있다. 그러한 상징물들은 그것 자체로는 별 것 아니지만 형태를 갖춤으로써 그 의미가 부여된다. 


민간기관에서 가치가 있는(혹은 있는 것처럼 판단되는) 한정적인 상징물을 제시하고, 기관에서 교육과정 중 다음 스텝을 제시하면 구매자는 노력하여 상징물을 획득한다. 


위의 과정은 가치판단을 제외, 결과물의 이상 유무를 제외하고 과정 자체로만 보자면 이상적인 '좋은 희망'에 속한다. 그 후 구매자는 해당 제품의 충실도가 높아져 자연스레 그 제품을 홍보해준다. 

별것 아닌 서류, 기념패 같은 물건이라도 일단 형태를 갖추게 되면 힘을 가진다. / 이미지 = 프리 픽











희망의 판매에 대한 정리


1. 타인의 욕망을 희망하게 되는 순간 구매욕이 생긴다.

2. 구매자의 교육 수준은 크게 의미가 없고, 그것을 얼마나 열망하는지에 대한 정도 차이다.

3. 화폐, 편의성, 시간을 공략하는 것은 효율적이다.

4. 단순한 동기부여는 1회성 만족에 그치지만 구매자에게 자발적인 행동력을 자극하는 상징물이 주어졌을 때 구매자의 충실도는 높아진다.



희망은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구매욕을 일으킨다. 일종의 결핍에서 희망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가장 잘 팔리는 결핍은 무엇일까?

가장 잘 팔리는 결핍은 열등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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