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의 발달과 산업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 최근 발표된 신인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노래 가사 일부다. 인간인 멤버와 그의 개성을 본떠 만든 AI 멤버가 가상 세계에서 만나며, 둘은 서로의 '분신'같은 존재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이러한 독특한 세계관, 즉 현실과 가상 세계의 분리와 결합을 모티프로 한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고 있다. AI와 인간 멤버가 무대에서 함께 공연하는, 아직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컨셉이 시도되는 바탕에는 끝없는 이익에 대한 기획사들의 욕망이 존재한다. 인간과 달리 고된 스케줄에도 지치지 않는 AI 연예인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장기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대형 기획사들이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새로운 형태의 아이돌을 구성하면서 등한시된 문제들이 있다. AI 아이돌 멤버의 등장으로 인해 대두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이슈들이다. AI와 인간이 합쳐진 아이돌 그룹은 이때까지 대중, 연예계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으로, 인간 멤버들이 겪을 수 있는 권리의 침해 문제, 범죄 악용 가능성 등에 대한 논의는 선행되지 않은 상태다. 인간 멤버들은 AI 멤버에 대해 어느 정도의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를 어떤 방식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할까. 더불어 AI 멤버를 독립적인 개체로 봐야 할지, 기업 또는 인간 멤버가 소유할 수 있는 상품 또는 대상으로 봐야 할지 그 지위에 대한 고찰 역시 필요하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7년의 활동 기간 중에도 문제시될 수 있으나, 계약기간 만료 후 더욱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 인간 멤버들은 기획사에서 나오며, 연예계와 공인의 삶을 떠나고자 할 수 있다. 이때 각 멤버의 또다른 자아인 소프트웨어 멤버 역시 수명을 다하고 더 이상 이익 창출에 활용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 상에 퍼져 있는 AI 멤버의 이미지와 영상을 폐기하고, 이에 대한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늙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자신과 닮은 AI로 인해 계약 만료 후에도 이익 창출에 이용될 수 있는 인간 아이돌 멤버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 계약 조항이 필요한 것이다.
AI 멤버에 대한 인간의 통제권을 정립하지 않을 시 특정 성별, 연령 집단이 집중적인 피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령, 외모가 인기와 수익의 중요 기준인 것으로 여겨지는 20대 여성 아이돌이 그 집단을 이룬다. 이미 리얼돌, 딥페이크의 포르노 악용 등을 통해 여성 연예인들이 가상 세계에서 성적 대상화되는 사례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최근 '이루다' 서비스가 초래한 문제 역시 무관하지 않다. 계약 기간 중에도, 계약 만료 후에도 AI 멤버가 음란물 등에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현재 연예계의 뒤틀린 관행에 따라 나이와 외모로 시장 가치가 평가되곤 하는 여성 아이돌에게만 시간에 따라 변하거나 흐트러지지 않는 인공지능 캐릭터가 결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 연예인에 대한 평가적인 시선은 더욱 강화되고 이들의 인권에 대한 존중 수준은 더욱 낮아질 위험이 있다.
AI 연예인의 탄생은 인공지능, 컴퓨터 그래픽 등의 첨단 기술이 이익 극대화의 수단이 되면서 인간의 권리가 시험대에 오르고, 사회적 약자의 삶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것임을 시사한다. 과학 그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이 것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기술이 가져다 줄 물질적 부에 사로잡힌 눈길을 돌려, 그 기술이 누군가의 삶, 나아가 사회의 '독'이 될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해 법, 제도를 정비해야 할 때다. 한 아이돌 그룹의 계약 기간이 7년이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셈이다.
사진 출처: 서울신문, "IT 만난 케이팝, 아바타 함께 큰다",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1118025007, 검색일 20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