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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예 May 08. 2021

돈키호테 속 '여성'

마르셀라, 도로테아,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생각

    3월 내내 돈키호테를 읽었다. 대학 생활 마지막 전공수업인 스페인소설 덕분에, 이때까지 완독한 적이 없었던 돈키호테 1, 2권과 한달 동안 함께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낸 책이다 보니 세르반테스의 마지막 문장 "안녕"(원문은 'vale')을 읽었을 때는 현실 속 인물과 작별할 때 느끼는 공허함, 아쉬움을 경험하기도 했다. 


    1500페이지 가량의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써야 했을 때는 막막했다. 두 페이지 짧은 분량으로 써내야 해 더욱 까다로웠다. 고민 끝에 '평등', '여성'을 키워드로 잡았고, 작품을 넓게 보기보다는 몇몇 부분으로 다이빙해 깊은 곳까지 잠수해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정리했다. 그 중 돈키호테 속 '여성',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여성' 인물들에 관한 내용을 조금 다듬어 공유하려 한다. 


    산초와 돈키호테에 관한 글은 수없이 많다. 돈키호테의 주인공은 여성이 아니지만, 내가 쓴 돈키호테에 관한 글에서 만큼은 주인공이 여성이기를 바랐다.


*돈키호테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 중 완독을 계획하고 계신 분이라면 "흐린 눈"으로 읽어주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돈키호테 속 사람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산초, 가상의 작가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 작품의 번역가 등 작중 인물들의 입을 빌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되는데, 그중에서도 작품에 삽입된 여러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으로 ‘평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현대의 관점에서 본 세르반테스의 인본주의, 인간 평등 사상에는 비판의 여지가 존재하지만, 17세기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작가의 사상이 혁신적이었다는 점, 그가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종교, 경제적 상황, 타고난 신분, 출신 지역 등 여러 특성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 서민 남성, 기독교인 귀족 여성, 무어인 상류층 여성 등 다양한 프로필의 인물들이 작품을 이루는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교차하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준들을 둘러싼 부당한 차별을 걷어내기를 원했다. 이 중 ‘성별’에 초점을 맞춰, 작가가 창조한 여성 인물의 면모, 여성에 대한 작중 남성과 작가 자신의 시선 사이 간극을 살피며, 작가가 작품을 통해 당대의 여성관을 비판하고자 했음을 확인해 본다.




돈키호테 속 '여성'


    작품 속 여성은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물인 동시에 남성 인물에 의해 평가되는 ‘대상’이다. 여성 인물들은 이분법적으로 분류되며, 특정 스펙트럼의 양극단 중 한쪽에 위치한다. 이들을 묘사할 때 남성 인물들은 ‘아름다움’과 ‘추함’, ‘정숙함’과 ‘자유분방함’, ‘고귀함’과 ‘천함’, ‘사향 향’과 ‘마늘 향’ 등의 이항대립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즉, 어떤 여성은 ‘이 여인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듯하다’,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고 묘사되는 데에 반해 다른 여성은 ‘추하고, 거칠고, 억세며, 마늘 냄새가 난다’는 등의 비하적인 표현으로 그려진다. 거칠게 말하자면, 작중 남성 인물들은 여성을 ‘우아함과 정숙함에 의해 신격화되는 여성’, ‘과부 시녀 혹은 농촌 여성과 같이 멸시받는 여성’ 두 부류로 나눈다. 작품에서 외모, 교양, 평판 등의 스펙트럼 상 중간에 머물며 남성의 비난도, 칭송도 받지 않는 여성은 극소수다. 단점과 장점을 고루 갖추고, 다양한 방면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여성 인물은 거의 없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르반테스가 작중 남성들에 의해 세워진 이 ‘이분법의 규칙’을 깨는, 예외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꾸준히 창조해내고,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마르셀라와 도로테아다. 작가는 마르셀라의 입을 빌려 여성이 남성의 사랑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아름다운 여성에게 ‘여신’과 ‘마녀’ 즉 극단적인 두 이미지를 동시에 부여하는 모순적이고 폭력적인 시선을 꼬집는다. 세르반테스는 여성을 평가하는 이분법적 시선을 가진 남성 인물들과 이를 무너뜨리려는 여성 인물을 동시에 창조해낸 것이다. 


     한편 도로테아는 개인적 경험을 가장 길게 이야기하는 여성 화자로서, 자신의 결함과 과오를 주저 없이 내보이는 동시에 남성 인물을 능가하는 재치와 재능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녀는 운명을 개척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논리로써 남성을 설득하는 인물이다. 돈 페르난도의 선택을 바꾸고, 루스신다와 카르데니오의 행복을 완성해 준 장본인 역시 도로테아다. 도로테아는 자신의 결점, 감정을 여과 없이 내보이며,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능동적으로 행동하며 남성의 평가적인 시선 속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작중 여성들은 주로 남성 인물의 시선에 의해 외모와 정숙함을 평가당하는 ‘대상’이 되지만, 이러한 시선의 불균형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몇몇 여성들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생각


    작가는 여성을 억압하고 대상화하는 남성들, 이들의 평가적인 시선을 거부하려는 여성 인물들을 동시에 등장시켰다. 이는 작가가 바라본 여성과 당대의 남성들의 눈에 비친 여성이 다름을 보여주며,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모델이 되었을 당시 현실 남성들의 여성차별적 시선에 세르반테스가 반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특히 남성들의 일방적인 비난과 폭력적인 대상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마르셀라의 등장, 그녀의 연설에 납득하는 남성 인물들이 연출하는 장면은 세르반테스의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세르반테스는 남성보다 뛰어난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여성, 이러한 여성을 소유와 평가의 대상으로만 보는 남성 인물들의 시선을 대비하고자 한 것이다. 작중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이 남성 인물들을 창조해 낸 장본인인 세르반테스가 여성을 묘사하는 태도 사이 존재하는 간극에서, 당대 당연시되었던 여성 차별과 대상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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