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 우나무노 "안개"의 두 가지 포인트
미겔 데 우나무노의 "안개"는 전필 수업 강의계획서에 적힌 다섯 작품 중 세번째를 차지하고 있었다. 학기 중반 즈음 이 작품을 읽은 셈이다. 지난 학기, 공부와 독서에서 멀어지기 쉬운 무렵인 중간고사 이후, "안개" 특유의 느슨함은 오히려 내 생각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안개"를 읽을 사람들과 읽은 사람들을 위해, 작품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을 돌아다닌 두 가지 화두를 정리해 본다.
Point 1. 조각난 스페인어와 집단적 독백
모두가 같은 언어로 말하지만, 아무도 타인의 말을 듣지 못하는 세상
"안개"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언어, 소통의 부재로 가득한 작품이다. 인물들은 서로가 말하는 내용을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이에 공감하지 못하며, 각자는 자신만의 ‘안개’에 둘러싸인 채 타인의 것과 양립하기 어려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집단적 독백이 빈번하게 등장하며,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강아지 오르페오만이 충실한 청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언어, 대화의 실패는 작품 11장 중 에우헤니아의 고모와 고모부, 에우헤니아, 아우구스토가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해당 장에서 인물들은 서로의 말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말만을 내뱉을 뿐이다. 아우구스토의 시적인 구애에 에우헤니아는 ‘그런 일은 책에서나 나오는 것’이라 일갈하고, 돈 페르민이 무정부주의를 찬양하자 에르멜린다는 에우헤니아의 피아노 연주가 죽인 카나리아에 관한 이야기로 맞받아친다. 모든 인물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스페인어는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개개인의 정신에 의해 파편화되었고, 소통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이는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나눌 수 없는, 혼란으로 가득한 당시 스페인의 현실을 환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언어의 거듭되는 실패와 대화의 좌절은 빅토르가 자신의 ‘소셜’을 구성하는 중심 요소로서 대화를 강조한다는 점, 엘레나가 소설의 독자로서 무엇보다도 대화를 중시한다는 점과도 대비된다. 빅토르는 말이 저절로 인물을 만들며, 대화만이 쓸모 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안개" 속 모든 인물은 ‘대화 불능’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상대의 언어를 차단하는 상황에서, 돈 페르민이 에스페란토주의를 고집스럽게 주장한다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수수께끼같은 말을 늘어놓거나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선언을 내지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이들이 단일한 언어로 소통하기를 바라는 유일한 인물이 돈 페르민이다. 집단적 독백이 지속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유일한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 대화의 문제는 해소되지 않으며, 아우구스토는 작품 후반에 자신이 실험실의 개구리와 같은 처지가 되어 조롱당했음을 깨닫자 아예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작품 속 언어, 발화는 인물의 끝없는 고독, 내면으로의 침잠, 좌절을 외면화하는 수단으로서, 말줄임표, 동일한 단어와 질문의 반복 등으로 채워지게 된다.
Point 2. "돈키호테"의 계보
'스페인의 신 = 돈키호테 신'
"안개"는 "돈키호테"에서 이어지는 스페인 문학의 계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돈키호테"는 작품 중간에 직접적으로 언급되며, 작품 후반부에서 우나무노는 자신의 신이 스페인의 신, 즉 돈키호테 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인물, 작품 구성에서 "돈키호테"를 환기하는 지점, "돈키호테"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아우구스토는 돈키호테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광인, 방랑자이지만 시대적 맥락의 차이로 인해 그와 상이한 면모를 보인다. 아우구스토는 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회의감을 내비치는 인물로, 제대로 된 직업도, 사랑에 대한 확신도 없이 군중 속을 방황한다. 돈키호테는 작품 초반 완전한 광기에 빠져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건설하지만, 아우구스토는 명확한 세계관도 없이 흐릿한 안개 속에서 헤매는 존재인 것이다.
"돈키호테"는 제국의 화려한 면모, 피폐한 백성들의 삶이 극명히 대비되던 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완전히’ 미칠 수 있었다. 돈키호테의 시대는 ‘이분법의 시대’로, 구교 – 신교, 제국의 겉면 – 제국 내부, 중세 – 르네상스와 같은 대립적인 두 항으로 세상이 나뉘던 시대다. 돈키호테는 이분법 중 하나의 항에서 다른 항으로의 이행기 속 부적응으로 인해 ‘미친 자’로 취급받지만, 적어도 자기만의 흔들림 없는 세계를 건설한다. 그러나 20세기 무너진 제국의 도시 방랑자인 아우구스토는 대립하는 두 개의 선택지도 가지지 못하는 존재다. 몰락한 스페인은 아우구스토와 마찬가지로 세계,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토는 이처럼 부재와 혼란을 경험하는 스페인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돈키호테와 같이 완전히 미치지 못한 채 회의하고 혼동한다. 또한 그는 자신 속에 또다른 자신, 즉 타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돈키호테의 경우 그를 둘러싼 세계가 양분된 상태였으나, 아우구스토의 경우 자아가 둘로 쪼개지는 모습을 보인다. 빅토르의 말처럼 당시 스페인은 ‘모든 것이 하나의 안개 속에서 혼동되는’ 곳이다.
에우헤니아는 현실적이고, 생활력 강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상주의자,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산초를 환기하기도 한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계속 노동하며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지만, 이 모든 노력의 목적은 사랑의 성취와 현실 도피에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작품의 주요 서사와 관련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들이 작품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는 점은 세르반테스의 글쓰기 방식을 환기하기도 한다. "돈키호테"를 통해 "안개" 속 여러 요소들을 바라봄으로써 17세기, 20세기 스페인의 정신을 비교해 볼 수 있고, 스페인 문학사에서 ‘돈키호테적’인 인물과 글쓰기의 계보가 이어져 왔을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