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년 전 글
어느 날, 언니가 카톡으로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동생아(문자에는 애칭?ㅋㅋ으로 적혀 있으나 블로그에는 순화하여 동생으로 작성), 내 노래엔 왜 쏘울이 없을까?'
나 왈, '왜 누가 언니 노래에 쏘울이 없대?'
언니 왈, '걍 내 느낌이'
나 왈,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언니 왈, '사람들이 노래에 생동감이 부족하댜.'
나 왈, '오...그렇구나.' '내가 느끼기엔 언니가 '잘' 부르기만 해서 그런 거 아닐까?'
언니 왈, '흠 ㅠㅠ' '술 한 병 먹고 부르랴'
나 왈, 'ㅋㅋㅋ 것도 좋은 방법이지.' '내가 느끼기에는 남들 눈 의식해서 언니의 벽을 못 넘는 것 같다는?'
언니 왈, '빙고'
나 왈, 'ㅎㅎㅎ 잘 알고 있네.'
언니 왈, '알지만 잘 안돼'
제목만 보면 우리 언니가 가수 지망생 혹은 노래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언니와 나는 그냥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면서 또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사람이고. 나는 밴드를 했었고(하지만 난 공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언니는 사내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다. 나보다 성량, 리듬, 박자, 발음 다 좋은데 나보다 한 가지 부족한 점(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이 있다면 쏘울의 부재이다. 쏘울, 삘 또는 삘링이라고도 한다. Soul & Feel.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덩달아 노래방가서 지르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노래방가서 노래를 안 부르는 부류를 보면 대부분 자기 삘링이 없는 사람들이다. 노래란 자고로 자기 멋에 심취해서 부르게 마련인데 자기 멋없이 남들이 내 노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생각에만 갇혀서 우물쭈물 하다보면 제 실력도 안 나오고 삘링도 없는 멋 대가리 없는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어도 자신만의 삘링으로 노래를 부르면 흥겹다. 거기에 빨려들어간다. 노래를 잘 불러도 음정, 박자 정확하고 고운 목소리구나라는 인식에서 끝나면 그것은 결코 '노래했다.'라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자는 스킬이, 후자는 삘링이 부족한 경우 되겠다. 그렇다면 삘링을 채우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적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자뻑과 자학의 반복이다.'라고 했다. 난 여기서 자뻑은 삘링이요, 자학은 스킬이라고 본다. 삘링이 충만해서 노래를 부르면 이 목소리는 내가 아닌 듯하다. 경이로운 음성인 것이다. 그런데 스킬에 견주어보면 이건 삘링도 뭣도 아니요, 그저 음정, 박자, 리듬 무시한 막무가내 지름일 뿐인 거다. 아마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삘링에 비추어서 스킬을 좀 더 다듬고 스킬에 비추어서 삘링을 좀 더 채워넣고 이러한 과정이 필수불가결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단지 노래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사람들은 나를 감동시키는 일. 나의 영혼이 뜨거워지는 일을 찾는다. 그런데 감동과 영혼만 찾다보면 정작 스킬의 부재가 떠오르고 만다. 그러면 사람은 괜찮은데 마인드도 괜찮은데 능력적인 부분에서 뭔가 2% 부족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면 영혼이 없는 일은 어떨까?
1996년 탐크루즈 주연의 제리 맥과이어란 영화가 있다. 영화 끄트머리쯤에 탐크루즈와 그가 에이전트를 했던 스포츠 선수가 우승에 기여를 해 얼싸안고 축하하는 장면이 있다. 그걸 보고 있던 상대편 선수가 담당 에이전트에게 '당신은 왜 저런 맛이 없지?'라는 이야기를 하고 담당 에이전트가 어색하게 안으려고 하자 선수가 밀쳐내던 장면이야말로 단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스킬만 존재하는 것이 쏘울이 있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책에서는 우리에게 이성적으로 사고하라 말한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라 충고한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라 조언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적인 생각도, 논리적인 말빨도, 합리적인 행동도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감동. 이것이다. 물론 그 감동의 물결 뒤에는 어느 정도 레이아웃으로 뒷받침되는 스킬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나를 믿고 내 목소리에 힘을 싣고 내 노래를 듣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파동이라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자뻑이 필요한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자학보다는 자뻑이 나와야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불평한다. 나는 왜 이렇게 코가 낮을까? 나는 왜 이렇게 다리가 두꺼울까? 내 목소리는 왜 이렇게 엥엥거릴까? 나는 젊은 나이에 흰머리가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난 왜 이렇게 상식이 부족할까? 난 왜 이렇게 어휘력이 부족할까? 우리가 못나고 남들보다 못한 점을 들추어내면 밑도 끝도 없다. 내가 김태희가 아니고 장동건이 아닌 이상(난 뭐 그들도 단지 좀 잘생기고 예쁠 뿐 똑같은 인간이기에 별 감흥을 못 느끼지만) 그리고 내가 이상향으로 삼는 그 누군가가 아닌 이상 그들과 비교해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은 피곤한 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일에서건, 스타일에서건, 노래에서건 쏘울을 느끼고 싶다면, 내 삘링을 찾고 싶다면 마음에 드는 점부터 인정하고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내 코가 오똑하다라는 점이나, 손가락이 예쁘다는 점이나, 인사를 잘한다는 점이나,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나, 암기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는 점이나, 친화력은 누구못지 않다는 점이나 내가 잘나고 기특하다고 인정해줄 만한 점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삘링을 찾으면 된다고 본다.
언니는 일단 목소리가 좋고, 성량도 풍부하다. 그리고 대학교 합창단 활동을 할 때도 성악과로 편입하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기도 했단다. 나? 난 그냥 내 만족으로 노래방에서 칭찬 몇 번 들었을 뿐이다. 그런 나는 나에게 자뻑하고 나보다 훨씬 우수한 재능의 언니는 자학으로 삘링없는 수난을 겪는 중이다. 삘링이야말로 내가 가진 재능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야지만 해방될 수 있는 스킬의 운명적 장난이다. 당신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가? 그렇다면 남 눈치 보지 않고 내질러라.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 흥에 겨워 삘충만한 노래로 사람들과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아...나도 쏘울은 이제 그만채우고, 스킬을 좀 길러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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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블로그에 적어놓은 글인데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어서 퍼왔습니다. 냐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