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칠 때면 어떤 말로 멋지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내가 늘 레파토리처럼 쓰는 말은 강의로만 '잘 들었다' 하지 말고 집에 가서 실천을 해보라는 것이다. 배움은 실천을 통해 내 것이 된다는 놀랍도록 누구나 알고 있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내가 만약 인문학 강사라면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바로 써먹기보다는 강의 내용을 곱씹어 내 것으로 만들게 되면 그것이 숙성되어 내 삶에 적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실용학 강사에 더 가깝다. 옷이라는 도구를 통해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돕는다는 측면에서는 어찌어찌 인문학을 끼워맞출 수는 있어도 그래도 내가 스스로를 떠올렸을 때는 실천적 방법론을 설파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생각한다. 과연 강의가 끝나고 몇 명의 수강생들이 갖고 있는 옷 하나라도 분석해봤을까. 올 해 산 옷들 중에 안 입게 되는 옷의 이유를 생각해봤을까. 안 입는 옷을 입는 옷과 분류하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했을까. 등등이 궁금하다. 물론 누구나 옷장을 2-3개씩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정리'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의 극심한 알러지 상태가 되는 '옷 분야'의 편향적 게으름쟁이(편향적 게으름쟁이란, 자기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깝거나 자기가 잘 못하는 분야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 것으로 남이 해주면 고맙고 해줄 사람이 없으면 마냥 그 상태로 놔두게 되는 기질을 말한다 - 분야만 다를 뿐, 사람은 대개 편향적 게으름쟁이들이다)들도 있기에 아무리 '정리의 신'이 '이건 너를 위한 꿀팁이다'라고 알려준들 어떤 팁이 와도 철벽같은 기질을 뚫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마음만 굴뚝같은 옷 정리에서 중요한 것은 '정리'가 아니다. '귀찮은 마음'이 가장 큰 허들이다. 옷 정리가 안 되어서 이런 방법도 찾고, 저런 방법도 찾아 보지만 마음에 드는 방법이 있을리가 없다. 왜냐하면 마음에 드는 방법은 '쉬워야' 되기 때문인데 어디 옷 정리가 쉽나. 옷 자체만 봐도 일단 부피가 있고 그리고 여러개다. 그리고 옷장에 걸려 있는 것만 있나? 옷 박스에도 있고 서랍장에도 있다. 그러니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지쳐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할 마음이 있다? 그러면 작은 정리부터 시작한다. 옷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옷을 버리는 것은 그것 또한 큰 결심을 해야 하는 행동이라 7번째 액션쯤 된다. 안 입는 옷은 분류가 먼저다. 옷장에서 빼서 다른 공간에 두든, 옷장 내에 입는 옷과 안 입는 옷의 구획을 만들어 JSA(Joint Style Area)로 관리를 하든지 말이다.
무의식은 의식보다 강하다. 말은 하지만 마음만 굴뚝같은 일들은 그 일 자체가 목적이 아닐 수 있다. 분명 진짜 욕망은 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을 실현시키기 어렵거나, 그게 뭔지 모를 때 우리는 엄한 곳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니 옷 정리는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옷 정리 그거 당장 안 한다고 우리의 삶이 크게 요동치거나 하지 않지 않나. 직장 다닐 때 입었던 정장을 비우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 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무의식 때문에 그럴 수 있고, 날씬했을 때 입었던 옷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는 건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무의식인 건 아닐지 궁금하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더라도 비우지 못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단지 '정리법'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다.
나도 그렇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굴뚝같을 뿐, 사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세발의 피 정도다. 의식은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무의식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정리법을 알려준들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하고 묻는다. 고민과 연구 끝에 조금 더 쉽게 정리하는 법을 개발해서 알려주면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하고 묻는다. 스타일도 그렇고 정리도 그렇고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은 남이 해주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옷 정리에 대해서는 안 입는 옷을 입는 옷과 일단 분류하고 마음이 동하면 비우라고 할 뿐, 그 이상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함구(내 전문도 아니고)한다. 옷 정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바라봐야 할 것은 옷장보다는 내 마음이다. 당신은 진짜 옷 정리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굴뚝같은 마음보다는 옷장 앞에 서는 것이 첫번째 스텝이다.
글쓴이 이문연
옷문제 해결 심리 코치
행복한 옷입기 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