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문연 Aug 23. 2022

#3 (마음만 굴뚝같은) 옷 정리란 무엇인가?


강의를 마칠 때면 어떤 말로 멋지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내가 늘 레파토리처럼 쓰는 말은 강의로만 '잘 들었다' 하지 말고 집에 가서 실천을 해보라는 것이다. 배움은 실천을 통해 내 것이 된다는 놀랍도록 누구나 알고 있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내가 만약 인문학 강사라면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바로 써먹기보다는 강의 내용을 곱씹어 내 것으로 만들게 되면 그것이 숙성되어 내 삶에 적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실용학 강사에 더 가깝다. 옷이라는 도구를 통해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돕는다는 측면에서는 어찌어찌 인문학을 끼워맞출 수는 있어도 그래도 내가 스스로를 떠올렸을 때는 실천적 방법론을 설파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생각한다. 과연 강의가 끝나고 몇 명의 수강생들이 갖고 있는 옷 하나라도 분석해봤을까. 올 해 산 옷들 중에 안 입게 되는 옷의 이유를 생각해봤을까. 안 입는 옷을 입는 옷과 분류하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했을까. 등등이 궁금하다. 물론 누구나 옷장을 2-3개씩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정리'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의 극심한 알러지 상태가 되는 '옷 분야'의 편향적 게으름쟁이(편향적 게으름쟁이란, 자기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깝거나 자기가 잘 못하는 분야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 것으로 남이 해주면 고맙고 해줄 사람이 없으면 마냥 그 상태로 놔두게 되는 기질을 말한다 - 분야만 다를 뿐, 사람은 대개 편향적 게으름쟁이들이다)들도 있기에 아무리 '정리의 신'이 '이건 너를 위한 꿀팁이다'라고 알려준들 어떤 팁이 와도 철벽같은 기질을 뚫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마음만 굴뚝같은 옷 정리에서 중요한 것은 '정리'가 아니다. '귀찮은 마음'이 가장 큰 허들이다. 옷 정리가 안 되어서 이런 방법도 찾고, 저런 방법도 찾아 보지만 마음에 드는 방법이 있을리가 없다. 왜냐하면 마음에 드는 방법은 '쉬워야' 되기 때문인데 어디 옷 정리가 쉽나. 옷 자체만 봐도 일단 부피가 있고 그리고 여러개다. 그리고 옷장에 걸려 있는 것만 있나? 옷 박스에도 있고 서랍장에도 있다. 그러니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지쳐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할 마음이 있다? 그러면 작은 정리부터 시작한다. 옷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옷을 버리는 것은 그것 또한 큰 결심을 해야 하는 행동이라 7번째 액션쯤 된다. 안 입는 옷은 분류가 먼저다. 옷장에서 빼서 다른 공간에 두든, 옷장 내에 입는 옷과 안 입는 옷의 구획을 만들어 JSA(Joint Style Area)로 관리를 하든지 말이다.


무의식은 의식보다 강하다. 말은 하지만 마음만 굴뚝같은 일들은 그 일 자체가 목적이 아닐 수 있다. 분명 진짜 욕망은 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을 실현시키기 어렵거나, 그게 뭔지 모를 때 우리는 엄한 곳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니 옷 정리는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옷 정리 그거 당장 안 한다고 우리의 삶이 크게 요동치거나 하지 않지 않나. 직장 다닐 때 입었던 정장을 비우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 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무의식 때문에 그럴 수 있고, 날씬했을 때 입었던 옷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는 건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무의식인 건 아닐지 궁금하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더라도 비우지 못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단지 '정리법'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다.


나도 그렇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굴뚝같을 뿐, 사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세발의 피 정도다. 의식은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무의식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정리법을 알려준들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하고 묻는다. 고민과 연구 끝에 조금 더 쉽게 정리하는 법을 개발해서 알려주면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하고 묻는다. 스타일도 그렇고 정리도 그렇고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은 남이 해주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옷 정리에 대해서는 안 입는 옷을 입는 옷과 일단 분류하고 마음이 동하면 비우라고 할 뿐, 그 이상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함구(내 전문도 아니고)한다. 옷 정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바라봐야 할 것은 옷장보다는 내 마음이다. 당신은 진짜 옷 정리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굴뚝같은 마음보다는 옷장 앞에 서는 것이 첫번째 스텝이다.


글쓴이 이문연

옷문제 해결 심리 코치

행복한 옷입기 연구소 대표

작가의 이전글 갑자기 오버롤(멜빵 바지)에 꽂혀 만든 포스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