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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06. 2016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워크북(11) 트라우마

지금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상대적으로 가벼운 일화일 수 있으나 난 25살때까지 범퍼카를 타지 못했다. (요즘도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려나?) 몇 살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니까 아마 5살쯤 됐던 것 같다. 엄마, 아빠, 언니와 놀이공원에 간 날이었다. 범퍼카 운전이 특별히 어려운 게 아니었고 그 전에도 타 본 기억(발 밑의 엑셀을 밟으면 나가고 발을 떼면 멈추는 아주 단순한 원리였던 듯)이 있어서 범퍼카 운전에는 자신있엇다.


그런데 이 범퍼카가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엑셀레이터를 아무리 밟아도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내가 모르는 운전의 원리가 있나? 아니면 놀이공원마다 작동 원리가 다른가? 나는 순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범퍼카들 사이에서 혼자만 시간이 멈춘 듯했고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범퍼카 관리 직원(모든 기구에는 다 직원들이 1,2명씩 있다.)으로 보이는 어느 남성이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미 범퍼카를 탄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범퍼카를 타고 있었으며, 오픈된 공간을 에워싼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려 있었다. 난 울고 말았다. 범퍼카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뿐,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아빠가 오셔서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빠는 그 직원에게 항의를 했다. 항의 내용 또한 기억 나지 않는다. 대충 아이한테 그렇게 화를 내면 어쩌냐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기억으로 놀이동산에 가서 결코 범퍼카를 타지 않았다.(사실 기억해보면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놀이기구도 아니었다. 다행히.) 범퍼카 자체가 무서웠던 건 아니다. 내가 탄 범퍼카가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어떤 잘못(그것이 직원의 성남으로 인해 생긴 오해일지라도)으로 인해 처음으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았던 첫 경험이기도 했다. 


그렇게 범퍼카를 탈 때마다 나는 밖에서 친구들을 기다렸고, 언젠가 범퍼카를 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는 대학생 때였다. 친구들과 놀이동산을 가게 되었고, 피날레로 범퍼카를 타기로 했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탈까, 말까를 반복하다가 친구들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고, 친구들은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참 별거 아닌데 친구들의 괜찮을 거라는 말이 힘이 되었다.) 내가 탄 범퍼카가 움직이지 않아도 그 사실에 당황하지 않으며, 직원이 나에게 소리를 쳐도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그 상황이 두렵지 않았다. 그 날 친구들과 즐겁게 범퍼카를 타고 나니 내 머릿 속에 있던 그 날의 기억도 좀 더 희미해졌다.


그 이후로 놀이 공원에 간 적도 별로 없지만 난 더 이상 범퍼카를 타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넘어 내가 좋아하는 놀이 기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트라우마와 내가 원하는 않음을 혼동해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타기 싫은 것을 타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해 동참할 수 없음을 합리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트라우마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놀이기구(난 내가 뭘 하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것에서 오는 스릴이 좋다. 바이킹처럼)가 아니었는지의 진위는 아마 가리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더 이상 트라우마 운운하며 범퍼카 주위를 얼쩡거리는 일은 없을테니까 말이다.(하긴 이미 나이가 범퍼카 타면 이상한 나이 ㅡㅡ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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