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엑스퍼트에 새로 등록하고 나서 오랫만에 지식인의 패션/스타일 질문을 보게 되었다. 20대 여성 질문자가 재킷 사진을 올려놓고 이 재킷 위에 걸칠 수 있는 코트를 추천해달라고 적었다. 두 명의 전문가가 답을 달았는데 약간의 설명(왜 이 코트가 저 재킷과 어울리는지)과 함께 코트 사진(질문자가 이미지를 원했다)을 첨부했다. 두 답변 모두 질문자가 딱 원하는 답변이었다. 8-9년 전쯤 지식인 답변에 한창 열을 올렸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를 기억하며 답을 달았다. 재킷은 재킷 자체로 아우터이며 코트랑 같이 입을 경우 재킷 본연의 태가 망가지므로 새로운 아우터를 사는 걸 추천한다고. 질문자가 원하는 답은 따로 있었지만 나는 지식인 [영웅] 등급에 해당하므로 영웅에 맞는 답변을 썼어야 했다. <형태가 잡혀 있는 아우터는 겹쳐입기보다는 따로 입기를 권해드립니다>
이런 궁금증을 갖는 건 20대뿐만이 아니다. 학습해본 적 없는 부분은 뭐가 맞는 것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시도해보지 않았거나, 관심이 없거나, 센스가 없다면 30대나, 40대나, 50대나 옷에 있어서만큼은 똑같은 초보이다. 그래서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옷이란 게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늘 옆에 있고 누구는 배우지 않아도 잘 입는 것처럼 보여 다른 배움과는 다르게 쉬워 보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어떤 공부를 하든 하루 아침에 내가 그 공부를 익힐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영어 공부는 10년 넘게 해도 외국인과 프리토킹 한 번 하기 어렵고, 어떤 스포츠든 최소 3개월은 해야 기본기를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배움에는 꾸준함이 필요하고 단기간에 익힐 수 없다는 자세가 깔려 있다. 하지만 옷은 쉽게 배울 수 있고 쉽게 익힐 수 있으며 빠른 시간 안에 옷잘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보이는데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옷을 잘 입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 마인드, 인정, 안목. 마인드는 머릿 속으로만 그려보고 결정내리는 태도의 지양을 말한다. 사람들은 냄새로 인해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다지만 무색무취의 똑같은 질감의 모양이라면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봐야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초보자들이 내리는 실수는 머리로 생각하고 결정내려 버린다는 점이다. 이 옷이 안 어울릴 거야. 저 신발은 신어봐도 뻔해. 등으로 머릿 속으로 떠올리고 결정내리기 때문에 스타일이 한정적이고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깨기가 어려운데 이건 마치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모르겠는 헤어 스타일을 두고 고객이 '잘 모르겠어요, 안 어울릴 것 같은데요,' 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전문가는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의뢰인의 굳건한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감각이자 통찰이다. 이 틀을 깨는 것이 마인드다.
두번째는 자신의 이미지와 체형, 욕망에 대한 인정이다. 어떻게 보면 타협으로 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접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개성은 각자가 가진 이미지와 체형, 옷차림이 목소리, 말투, 표정, 성향과 섞임으로 인해 풍기는 분위기를 말한다. 옷은 이미지와 체형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데 이 때 욕망은 입고 싶은(내가 갖지 못한 이미지에 맞는) 옷이라면 어울리는 옷은 이미지와 체형(현재의 내가 갖고 있는 요소)에 부합하는 옷을 말한다. 이 두가지가 비슷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이 두 가지는 자기자신에 대한 인정보다는 '내가 갖지 못한 나'에 대한 욕망이 클 때 격차가 벌어지며 혼란을 야기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을 것이냐,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것이냐. 정답은 없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되는데 남이 봤을 때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남의 시선보다는 '내 만족이 우선'이라면 누가 뭐라하든 간에 내가 입고 싶은대로 입으면 된다.
세번째는 안목이다. 이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것을 말한다. <월간 옷장 경영> 프로그램이나 피드백 코칭을 받는 분들이 쇼핑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데 쇼핑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옷을 좋아하고 잘 입는 사람이 쇼핑이 즐겁다고 이야기해서 그렇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영역을 학습?하는데 쉬운 게 어디있으랴. 나에게 맞는 옷을 고르는 것과 옷, 신발, 가방 스타일링은 평소 안 쓰는 근육을 쓰는 것과 같다. 복근운동이 얼마나 힘든지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나의 이미지와 체형을 알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입고 싶은 옷의 접점을 찾아 그 기준으로 현재 나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하나씩 골라내는 작업. 쇼핑 어플도 한 두개가 아닐 뿐더러 상의 카테고리에 블라우스/셔츠 카테고리만 들어가도 수천개의 아이템이 나온다. 그걸 일일이 탐색하며 내 기준에 맞는 아이템을 선별하는 작업이 바로 쇼핑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끝난 것도 아니다. 그렇게 고른 아이템을 입어보고 구매를 결정하거나 반품을 실행하는 것까지가 완료이다. 이런 과정이 쉬울 거라 여기는 것은 무수한(어떤 옷을 골라야 하는지와 어떻게 골라지고, 어떤 고민의 결과물로 코디로 완성되는지) 과정이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고, 미디어에도 생략된 채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어떤 공부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퍼스널 컬러 수업 3시간 들었다고 옷잘러가 되는 것이 아니듯 30년을 무관심과 노센스로 입었다면 물렁살을 근육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공부든 떠먹여주는 것으로 바뀌는 것은 거의 없다. 어렵고 하기 싫어도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배워가는 것이 많고 나 또한 수강생들의 불평?을 수렴하는 쪽으로 프로그램을 다듬어왔지만 어느 순간 느꼈다. 쉽기만 해서는 얻어가는 것이 없겠구나. 글쓰기든 옷입기든 학습의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약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고 더 쉽고 재미있는 수업을 찾는다면 그런 수업을 반복해서 들을 뿐, 남는 건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수업 자체도 재미와는 거리가 멀지만 재미보다는 생활에 남는 수업이 되기를 더 바란다. 나 또한 정확한 전달을 위해 힘써야겠지만 그런만큼 적극적으로 학습하려는 분들에게 어쩔 수 없이 애정이 간다. 그래서 말인데요 여러분, 쉬운 멋 공부란 없답니다. 있다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글쓴이 이문연
옷문제 해결 심리 코치
행복한 옷입기 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