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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패션 꼰대

#23 마스크 벗을 결심이란 무엇인가?

코로나19 엔데믹 시대에

by 이문연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마스크에 부딪혔다.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해제가 10일 정도 지나자 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었다. 나도 슬 벗어야 할 것 같긴한데 내 얼굴이 어색하다.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긴 했지만 얼굴을 가리고 다닐 때의 편리함이 너무 커서 꼭 얼굴이 어색한 게 아니더라도 벗고 싶지가 않더라. 하지만 이렇게 계속 마스크에 의존(일단 꾸밈 노동에서 자유로운 것부터가 최대 수혜. 원래도 화장을 잘 안하긴 했지만;;)할 수만은 없어 4월에는 마스크를 벗기로 나와 약속했다. 이제 엘리베이터 앞에서 '맞다. 마스크!'라고 외칠 일도 없겠지.

나의 하관이 특별히 못났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마스크를 썼을 때의 V라인보다 둔탁해진 턱라인을 보고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 싶었다. 원래도 얼굴과 목의 경계선이 그라데이션 된 오묘한 턱선이라 아주 배신감이 들거나 하진 않았는데 역시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서운 것.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마스크를 쓰고 만난 사람들은 마스크 해제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 내가 상상했던 하관이 아닌,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을 새로 인식하는 시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내 얼굴도 마찬가지다. 마스크 착용 후의 얼굴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미지)을 만들어냈고 이제는 그 느낌을 원래대로 복구할 차례다.

마스크를 벗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누굴까. 비주얼적으로만 판단해보자. (1)마스크를 쓴 것과 안 쓴 것의 차이가 크지 않은 사람 (2)마스크를 쓴 것이 안 쓴 것보다 나은 사람 (3)마스크를 쓴 것이 안 쓴 것보다 못한 사람. 여기서 '낫다와 못하다'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본인의 생각 역시 타인의 생각에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결정적으로는 본인이 생각한 자신의 얼굴이 괜찮고 안 괜찮고를 말한다. 추측건대 (2)번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기 힘들어하지 않을까. 외모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록 그리고 그 외모를 인정하고 칭송?하는 분위기에 있을수록 마스크를 썼을 때의 비주얼이 마음에 든다면 마스크를 벗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

아직 봄이고 하루 걸러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기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나 역시 나만 마스크를 벗을 결심을 했지 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마스크를 얼굴에 입는 속옷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만큼 벗기가 부끄럽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라 생각한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는 일상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은 한 글자를 가린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여진다. 이O연. 이름은 이름인데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름. 익명인 듯 익명아닌 익명 같은 이름. 그러니 얼마나 편한가. 사회생활하기에 최적화된 비주얼이 바로 마스크를 쓴 비주얼이라 이 마음 편함에서 벗어나기를 다들 힘겨워하는 것이리라. 반익명이 주는 거리감의 쾌적함.

2년 전에는 내 얼굴이 어땠는지 몰라도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의 얼굴에 익숙해졌으니 이제는 다시 마스크를 벗은 얼굴에 익숙해질 차례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벗고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은 민낯이 부끄러워 마스크 벗기를 미루다보면 자신을 마스크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마스크라는 공통분모는 개인의 특성을 가리고 익명성은 높였다. 표정은 가려졌고 불필요한 마찰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마스크를 썼을 때의 좋은 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을 되찾을 때이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얼마나 듣기 좋던지. 그래서 나 역시 아직은 부끄러운 하관을 내놓고 벚꽃을 맞을 것이다. 그래! 내 턱은 원래 자세히 봐야 보였어.

글쓴이 이문연

옷생활 경영 코치

건강한 멋생활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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