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후 기다림의 시간

두 번째 책 출간은 처음인데요, 4화

by 이문연

요이~ 땅! 책 계약을 하고 나면 일이 착착착 진행되어 책으로 바로 나올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편집자가 진행하는 책이 한 권이 아니고 출판사의 분기별 출간 계획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은 했지만 엉성한 원고를 수정하며 계속 편집자와 소통을 진행해야 한다. <주말엔 옷장 정리>는 한 건물에 입주한 각자의 전문가가 각 방(실용서 & 에세이)에 대한 책을 출간하는 기획이기 때문에 1층부터 5층까지 있었는데 내 방은 103호였지만 이 건물은 1층부터 지어지지 않았다.


101호의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은 1인가구를 위한 소소한 집수리 안내서였고 102호의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는 작은 공간을 꾸미는 인테리어 노하우였다. 책은 그 동안 봐왔던 사이즈에서 벗어나 한 손에 쥐기 좋은 아담한 사이즈였고 그래서인지 더욱 귀엽고 트렌디해 보였다. 누구나 계약을 하고 나면 내 책이 빨리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원고를 쓰는 고통?(소설은 창작의 고통이 있을 법도 한데 난 실용서라 그런지 창작의 고통은 적은 편이었다)은 둘째 치고 책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계약만 일찍 해 놓고 다른 책이 하나씩 출간되는 걸 보니 기대감보다는 쫄리는 마음이 더 커졌다. 이러다 출간 무산되는 거 아냐?


직장을 다니지 않고 내 일을 하면서 갖게 된 마음가짐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이 노력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라는 뜻이라면 ‘일날일’은 닦달한다고 안 될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 성취욕에 불타는 사람들이 본다면 뭔 염불에 마쉬멜로우 구워먹는 이야기냐며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일은 나만 으쌰으쌰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일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때가 되었을 때 일어난다고 생각하기에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편집자님은 먼저 출간될 책을 편집하고 출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 책의 출간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했고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서 기다렸다.


난 꽤나 잘 참는 편이다. 웬만한 일에는 화도 잘 내지 않는 편이고 경락을 받을 때도 소리 한 번 안 질러서 마사지 해주시는 분이 놀라기도 했다. 아마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섬세한 면모보다는 둔한 면모의 퍼센티지가 나라는 인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책 출간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힘들었을 수도 있다. 신경을 덜 쓰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집중할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 워크북도 꾸준히 쓰고 전자책도 꾸준히 출간했다. 두번째 책이 나올 것이라면(하지만 이미 계약 사건에서부터 운빨 날렸으므로 이 책은 100% 나오지 않을까 하는) 나올 것이고 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준비만 잘 하면 될 터였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고 9개월이 지났다. 출간에 대한 자신감은 계약 무산에 대한 불안감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1년쯤 지났을까. 편집자님한테 메일이 왔다. ‘너무 늦어져서 작가님한테 죄송하니 원하시면 다른 출판사를 알아보셔도 괜찮다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잘 기다리고 있구요. 그 동안 원고도 집중해서 보고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구라)는 걸요. 휴머니스트 출판사와(편집자님과) 작업해 자기만의 방 시리즈로 꼭 출간하고 싶어요. ‘그럼 다행이구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이렇게 짧지는 않았고 공손하고 다정한 어투로 메일을 주셨다)’라는 말로 답장을 받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끊어질 뻔한 동아줄을 부여잡고 다시 기다림의 세계로 들어갔다.


ㅣ 초보 티를 뗀 저자의 한 줄 생각

출판사가 작가의 원고를 기다리는 일은 많아도 작가가 출판사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상황은 잘 없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나는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고 다른 책이 먼저 출간되는 것을 보면서 안데르센 동화에서 11마리의 백조가 된 왕자들에게 쐐기풀 옷을 만들어주는 공주(읭?)의 심정으로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편집자가 출간 무산 제안을 했을 때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냐는 입장도 있겠지만 투고란, 생각보다 피가 말리는 작업이며 좋은 출판사와 계약한다는 것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500원짜리를 줍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첫번째 책을 출간하고 난 뒤 알게 된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오래 걸린 만큼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년 5개월을 기다린 후 본격적인 퇴고 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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