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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14. 2023

마감애정녀 feat. 2W 매거진 마지막호 기고


나는 마감을 사랑한다. 일반적으로 마감은 넘기고 싶지 않아 온갖 스트레스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나에게 마감은 나라는 사람을 일으키고 무언가를 하게 하는 동력이다. 게다 마감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이렇게 성실?한 사람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평소에 마감할 일이 넘쳐난다면 나 또한 어쩔지 모르겠으나 한 달에 한 두 번 꼴로 마감일이 있는 나란 인간에게 마감은 좀 더 친해지고 싶은 단어랄까. 마감은 곧 일이 있다는 뜻이고 그 일은 어떻게 해서든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며 해낼 수 있는 그 일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금전적 수단이 되니 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물론 돈 없이 글을 쓰는 일도 많다. 하지만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란, 마감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나 조차도 무신경하게 랜덤으로 발송하게 되는 그런 일이 된다. 그래서 최근에 카카오 브런치의 연재 시스템은 너무 많은 작가들이 유입되고 어떤 시스템으로 상위 랭크되는지 알 길이 없어 별로 탐탁치는 않으나 '연재'로 마감일을 묶어 둔 것만큼은 나같은 마감 애정녀에게는 환영할 일이다. 마감을 애정하기 때문에 마감이 있는 일에는 그 성실함이 발현이 되나 마감일이 없을 경우엔 원초적 게으름이 온 신경을 장악해 버려 ‘쓰지 않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원초적 게으름은 습관성 스크린 타임을 유발하고 평균 7시간의 스크린 타임은 안구 건조증으로 이어져서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내가 처음 마감에 강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을 때는 1년 동안 매달 연재를 시작했을 때다. 역시 돈받고 하는 일이 효율은 최고라는 걸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12번 연재를 하는 동안 마감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이건 마치 초, 중, 고 12년 동안 개근을 한 것과 맞먹는 프라이드(지금은 프라이드가 아니겠지만, 자의든 타의든 12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어딘가에 몸뚱아리를 이끌고 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80년대생은 알 것이다. 80년대생 푸쳐핸접!!)인데 나 또한 놀란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 이번 달은 어떤 주제를 써볼까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찾고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었으면 하는 내용을 하나의 콘텐츠로 완성하는 것.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스프링을 누르지 않고는 튀어 오르게 할 수 없듯이 결과물을 내기 위한 적정한 책임감과 고민은 자긍심으로 치환되었다.


하여간 마감 애정녀라 좋은 것도 있긴 한데 위에서 설명했듯이 치명적인 단점이 마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스로 마감을 부여하는 삶이 필요한데 스스로는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기에 나를 강제할 수 있는 어딘가에 나를 처넣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돈 내고 그룹PT받기, 약속된 연재글 올리기. 2월부터 아미가 매거진에 연재한 <두번째 책은 처음인데요>도 그래서 완성할 수 있었다. 원래 메모장에 4년 넘게 묵혀 둔 기획인데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두번째 책을 출간하고 나서 출간기를 써볼까 목차를 메모장에 정리했지만 딱히 다이나믹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에너지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 출간기에 대한 목적 의식이 실종된 터였다. 그러다 홍아미 대표님이 연재를 제안하셨고 오래 전 묵혀 둔 그 기획이 떠오른 것이다. 이런 것 보면 글도 타이밍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에 나올 글은 결국 나오는 건가. 하는 생각.


희한하게도 안 써질 줄 알았던 글이 마감이 생기니 써지더라. 그리고 연재를 완료한 지금의 생각은 '쓰길 잘했다'이다. 세상에는 많은 글이 있고, 읽을 거리가 넘쳐나기에 방대한 디지털 활자 세계에 숟가락 올릴 자리가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찾아주는 단 1명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쓰는 자가 결국 글을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내 글이 10년 뒤에도 읽힐지 온라인 어딘가에 처박혀 아무 리뷰도 없이 쓸쓸하게 디지털 쓰레기처럼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그런데 갑자기 무한공간같은 디지털 세상에서 구석에 처박혀 쓸쓸히 있을 콘텐츠를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지네.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손꾸락으로 낳은 글이라 그런지.) 요즘 같은 시대에 10년의 유효기간을 지닌 글은 얼마나 있을까. 책은 또 얼마나 있을까.


[‘마감’은 ‘막다[防]’라는 동사의 어간 ‘막-’에 접미사 ‘-암’이 결합된 형태로 파악됩니다. 그러므로 “막아서 끝냄”이라는 어원적 의미입니다. - 국립국어연구원]


이번에 글을 쓰면서 마감이 한글인 걸(한자인줄;;) 처음 알았다. 막아서 끝냄. 뭔가 용기있는 자가 할 수 있는 행위같다. 전쟁에서도 적을 막아서 끝내고, 몸을 불사르는 직업에는 대부분 막아서 끝내는 행위가 떠오른다. 마감은 머리와 손가락, 엉덩이로 해내는 일이긴 하지만 주요 신체 부위이니만큼 몸을 불사른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나는 어떻게 나를 마감에 밀어넣을까 고민 중이다. 쓰고 싶은 글은 없지만 써야 할 글은 있는 나에게 스스로 마감을 부여하기란 스크린 타임을 줄이는 일만큼 어렵다. 나에게 중요한 건 어쩌면 쓰고 싶은 글이 아닌, 써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 건 아닐지.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글,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글, 성취와 즐거움이 있는 글. 이 세 가지 중에 두 가지 이상을 충족시켜준 것이 마감이다. 그러면 글이 나온다. 내년엔 더 많은 마감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막아서 끝내는 행위를 하는 모든 용자들에게 빌어본다.


2W 매거진 마지막 호


2W 매거진의 에디터분들과 모든 필진들께,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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