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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May 24. 2024

나를 위해 150벌의 옷을 비우다.

옷장경영 4칸 디톡스 1화

“뚜르르르 뚜르르르” 신호음만 가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2시간 넘게 걸려 찾아온 낯선 집 앞.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11시쯤 도착한다고 문자를 남겼는데 “은미님~” 문 앞에서 이름을 불렀다. 안에서는 노래 소리가 들리는데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설마 잠수는 아니겠지.’ 꼭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한 문자를 떠올리며 ‘에이 설마-‘라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은미님, 저 도착했어요. 문 앞이에요.” “아 선생님, 문 열어드릴게요.” 철컹하고 문이 열리며 대면하게 된 첫번째 디톡스 신청자 박은미님(가명)이다. 



혼자 살기 좋은 아담한 집이 물건으로 꽉 차 있었다. 부엌 앞의 1.5m 지름의 동그란 테이블에는 다양한 물건이 올려져 있었는데(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님이 분명했다) 은미님에게 받은 종이컵 하나 겨우 올려놓을 수 있었다. “은미님, 어떻게 진행할 거냐면요, 한계절에 해당하는 옷을 모두 거실로 가지고 나올 거예요. 그런 다음 은미님이 4칸으로 옷을 분류하면 분류된 옷을 바탕으로 제가 피드백해드릴 겁니다. 옷은 어디 있나요?” “제가 비우지를 못해서 옷이 좀 많아요. 이 쪽 방에 있고, 저 쪽 방에도 좀 있어요.” 은미님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안방에는 철제 옷걸이에 걸린 옷들이 옷장 안에 가득히 걸려 있었다. “지금이 겨울 끝나갈 즈음이니까 겨울 옷 위주로 꺼내서 볼게요.” 은미님이 겨울 옷을 하나씩 골라서 꺼내기 시작했다. 평균 키인 여자가 쉽게 꺼내기 어려운 높이에 철제 옷걸이가 뒤엉켜 걸려 있었다. ‘아…저렇게 하나씩 고르다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는데…’ 



40대인 은미님은 오래도록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통화할 때와 나를 마주했을 때는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대해주었지만 (잘은 모르지만 이러한 활동에는) 용기를 내서 신청했을 것이다. “은미님, 하나씩 골라내다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 그냥 걸려 있는 옷을 다 빼서 보는 게 빠를 것 같아요. 옷장 속 옷을 다 빼서 저한테 주시면 제가 거실로 가지고 나갈게요.” “그럴까요?” 오히려 옷을 다 빼니까 분업이 확실했다. 양손 가득히 옷을 안고 거실로 가지고 나갔다. 은미님은 무겁다며 나를 걱정했지만 헬스로 다져진 몸이라며 은미님한테 걱정하지 말고 달라고 했다. 일단 안방의 옷부터 보기로 해서 안방에 걸려있는 겨울옷과 봄/가을 옷, 여름 상의까지 가지고 나왔다. 



옷장경영 4칸 디톡스의 취지는 신청자가 자신의 옷/신발/가방을 4칸(마음에 들고 자주 입는/마음에 들지만 1-2번 입을까 말까/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주 입는/마음에도 안 들고 거의 안 입는)으로 분류해보고 본인의 옷장과 스타일과 쇼핑 패턴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깨닫게 하는 프로젝트이다. 거실로 100벌 정도 갖고 나왔고 은미님에게 하나씩 분류해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4칸으로 분류가 가능한 분들은 적어도 본인의 옷을 스스로 선택해 구매해온 경험이 있어야 하고 외출을 통해 자기 라이프 스타일이 어느 정도 구분이 되는 사람이어야 했다. 은미님은 오랫동안 쇼핑을 해오지 않았고 친구가 준 옷이 많았으며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아 특별히 나눌만한 라이프 스타일이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자기한테 어울리는 스타일로 심플하게 입고 싶다고 했기에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코치인 내가 분류를 할 테니 살릴 옷만 살리고 나머지는 다 비우는 것으로 결정했다. 



갖고 있는 옷을 ‘잘 어울리고 남길 옷’과 ‘지금 입기에는 잘 안 어울리고 매력을 반감시켜 비웠으면 하는 옷’ 2가지 칸으로 나눴다. 안방의 옷을 다 나눈 후 작은 방에 있는 옷을 가져왔다. 윗 행거에 걸린 60벌의 옷과 아랫 행거에 걸린 40벌 이상의 바지를 가져와서 나눴는데 청바지가 엄청 많아서 핏을 보기 위해 하나씩 입어보며 이상하고 애매한 핏의 청바지는 비울 영역에 넣고 핏은 괜찮은데 길이가 애매한 청바지는 핀으로 길이를 잡아 수선해 입기로 했다. 발목이 보이지 않는 10부나 11부의 청바지가 더 잘 어울렸는데 발목이 보이는 8부나 9부의 청바지가 꽤 많았다. 발랄한 이미지보다는 성숙하고 세련된 느낌이 더 잘 어울렸기에 짧은 길이보다는 10부 길이로 입을 것을 추천했다. 



<옷장 속 문제>

1)    친구가 준 옷이 많은데 친구의 취향(귀여운 디자인)이 은미님에게 안 어울리는, 매력을 반감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2)    오래도록 옷을 비우지 않았기에 과거에 입었던 옷, 지금은 안 입는 옷이 혼재되어 있어 입을 옷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3)    옷 태가 안 날 경우 속옷 사이즈를 잘못 착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이즈는 맞는데 착용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입을 것인가? 스타일 처방>

1)    42가지 청바지 중 17가지(수선해서 입을 옷 포함)만 남기고 나머지 25가지는 비우기로 결정.

2)    살리지 못하는 아이템(조끼 퍼, 롱 남방, 크롭 퍼)의 코디 제안

3)    친구의 이미지와 은미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다르니 잘 구분해서 받을 것을 추천.

4)    폴로 티셔츠, 라코스테 등 보수적인 느낌의 클래식한 디자인의 아이템이 안 어울리므로 기억할 것.



<4칸 디톡스 옷터뷰>

1)    혼자서 잘 비우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혼자 많이 아프다 보니까 정리를 못하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비우지도 못하게 됐고 제가 지금 40대인데 20대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던 옷이에요.

2)    옷을 구분해봤잖아요. 잘 어울리는 옷, 비울 옷, 앞으로 안 입을 옷 등 구분해보니까 어떠셨어요?

너무 시원해요. 

3)    옷장에서 뺀 옷들을 다 비워야 하잖아요. 잘 비우실 수 있을 것 같나요?

좀 아쉬울 것 같기도 한데 잘 비워야죠. 

4)    오늘 했던 과정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옷을 다 빼서 버릴 것을 골라내고 옷장에 넣는 방법도 알려주시고 한 게 기억에 남아요.

5)    4칸 디톡스를 하면서 이건 정말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누가 옷을 줘도 안 어울리는 건 가져오지 말아야겠다. 벙벙한 옷, 귀여운 옷 등 예쁘다고 주니까 가져오게 됐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코치의 4칸 디톡스 후기>

2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옷장 디톡스가 3시간이 걸렸다. 가방과 신발까지 정리했어야 하는데 개인적인 일정으로 3시간만에 나서야 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스스로 비울 수 있는 여지를 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20대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그녀의 삶이 어떨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난 그저 이러한 옷장의 환기가 그녀의 마음과 인생에도 시원한 리프레시가 되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지만 과거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긍정적 영향이든 부정적 영향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옷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옷이었지만 추억으로 남길 옷은 남기고(실제 첫 취업 때 입은 하늘색 블라우스 정장을 보여줬는데 그건 남기자고 했다) 지금의 나에게 의미가 사라진 옷들은 비우는 것이 지금에 집중하는 삶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삶의 경영자이자 내 옷장의 경영자이다. 옷장 경영을 통해 내 마음을 환기시키고, 나를 위한 옷에 집중하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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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절 옷경영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건강한 옷장/마음/일상 프로젝트입니다.

* 모든 사진과 글은 신청자분의 허락하에 올립니다.

* 옷 정리 & 코디 코칭을 제공하는 대신 콘텐츠를 무상으로 제공받습니다.

* 관심있는 분들은 카페 <건강한 옷장/쇼핑/코디 생활의 시작, 4계절 옷경영 연구소>에 놀러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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