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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Feb 15.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17 친구(우정)

혼자하는 글쓰기 시즌 투

에피소드(1)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란

'고등학교 때의 친구와 대학교 때의 친구는 뭔가 다르다. 그리고 사회 생활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기란 어렵다.'는 말을 하곤 한다. 나 또한 그런 말에 공감해왔던 한 사람으로써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차이가 뭔지 잘 모르지만 그냥 어렴풋이 생각하기론 전우애와 비슷한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야간 자율학습을 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하루 평균 친구들과 12시간 이상 붙어 있었고 입시라는 치열함 속에 함께 부대끼며 동고동락했다. 치열함과 부대낌의 콜라보로 따지자면 고등학생 때가 더 깊은 전우애를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입시의 치열함 속에서 이어졌던 우정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대학교 때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옛날에 비해 다소 느슨해진 공감대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어나갈지 여부를 고민하는 때가 온다.

개인적으로 가졌던 추억도 가장 많고 고등학생 때나 20대에 나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결혼을 했고, 집을 장만했으며, 10년 넘게 직장을 다니고 있다. 나는 아직 미혼이며, 부모님과 함께 살며, 직장을 그만둔지는 7년이 넘었다. 삶의 방향이 달라도, 가치관이 달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달라졌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워서였는지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지 못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 또한 그걸 품어줄 만한 에너지가 있지 않았다. 친구라 하더라도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친구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다른 걸 바랬다. 그녀는 공감을 바랬고, 나는 상처받는 반복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

성별만 다를 뿐, 나는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많이 안 해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그 친구와(그 친구도 그렇게 생각했겠지만)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한 건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긍정적인 에너지와 행복한 감정으로 채워지기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아졌을 때였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데 어떻게 좋은 시간만 있을까.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무던히도 싸웠고, 화해했고, 그 전으로 돌아갔었다. 그리고 1년여의 공백기간을 깨고 먼저 손을 내민 것도 나였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면서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 고등학생 때의 우리와 20대의 우리 그리고 30대의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했다. 나는 시간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우리는 멀어졌다.

가족, 친구, 지인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고 치유가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나는 이 관계를 유지할 거라면 싸웠다 하더라도 빨리 화해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에 먼저 손을 내밀었던 건데 어떤 관계든 한 쪽만의 노력으로는 개선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정확히 말하면 개선할 수 없는 걸 개선하려고 했던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서로의 의사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가) 가족, 친구, 지인 등 내가 더 큰 에너지를 가지고 포용할 수 있다면 관계를 이어나가겠지만 나는 누구를 '포용'할 정도로 사랑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 누구보다 내가 소중해서 그런지 만났을 때의 내가 느끼는 감정이 관계 유지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더라.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해를 끼친다는 기분이 들 때 거리를 두게 된다. '해를 끼친다'는 건 내 식대로 해석했을 때 그런 경우지 상대적으로 전혀 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나의 입장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반론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멀어질 뿐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듯이 친구들도 완벽하지 않다. 내가 친구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기에 아마 거리가 멀어진 것이리라. 오랜 시간 가깝게 지냈던 친구라 기대하는 것만큼 섭섭함과 아쉬움이 컸고 그 친구도 아마 그랬을 거다. 취직,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 등 삶의 굵직굵직한 경험을 기점으로 친구들과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한 발짝 물러서서 친구를 이해하면 되는데 나와 가까울 수록 나와 같은 곳을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는 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건가. 얼마전 짐을 정리하면서 그 친구와 나눴던 편지를 다시 읽게 되었다. 웃긴 건 그 편지 또한 싸우고 나서 그 친구가 나에게 준 화해의 편지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 친구가 내 삶의 반경에서 많이 멀어졌지만 그 친구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언제 다시 연락을 하게 될지 아니면 영영 안하게 될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서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다.(근데 왜 서글픈 거지 ㅡㅡ)

* 인연의 인이 내가 내민 손이라면, 연은 상대방의 손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로의 손을 잡게 되면 인연이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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