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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Feb 15.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16 운전

혼자하는 글쓰기 시즌 투

피소드(1) 아빠는 베스트 드라이버

우리집의 베스트 드라이버를 순서대로 꼽자면 아빠, 여동생 그리고 나머지 넷이다. 경력으로 치자면 엄마나 언니가 비슷하고 나와 남동생이 비슷하다. 감각면에서는 나와 남동생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 경력과 감각을 등가로 쳤을 때 나오는 계산이다. (아마 엄마와 언니는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운전 면허를 따고 아빠한테 연수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오토와 스틱으로 운전 면허가 나눠져 있었고, 아빠 소유의 자동차가 스틱이었기에(그리고 스틱을 따면 오토는 발로도 운전할 수 있다는 엄마, 아빠의 주장으로) 난 스틱 운전 면허를 땄다. 그리고 아빠한테 연수를 받았는데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었던 아빠에게 받는 연수는 연수를 받을 때마다 호러 영화를 보는 긴장감을 선물했다.

그 때는 너무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운전이란 잘못했을 때 그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더 엄하게 했던 거라 '지금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아빠 덕분인지 타고난 귀차니즘 성향때문인지 나는 운전을 썩 좋아하는 드라이버가 되지는 못했다. 베스트 드라이버(우리집만 봤을 때)의 공통점은 운전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짐작해보건대 커다란 자동차를 내 맘대로 몰 수 있다는 컨트롤에 대한 욕망과 자동차를 운전하는 나의 모습에 대한 자부심이 운전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아빠는 30년 이상 운전을 하셨음에도 내가 알기론 무사고 운전자이다. 그렇다고 아빠가 조심조심 천천히 운전을 하는 건 아니다.(아빠는 길의 흐름을 읽어 운전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오히려 천천히 가는 게 위험한 거라고 말씀하신다. 운전 철학이 있으시다.) 가족들과 함께 할아버지 댁(경주)에 갈 때 150-170km를 밟기도 하니 이건 순전히 아빠 운전 실력과 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매번 분당에서 경주까지 3시간 반을 찍었느니, 4시간을 찍었느니 이야기를 하시며 은근히 스피드 부심을 표현하신다. 급하게 가는 건 별로지만 아빠의 스피드 부심때문에 집에 빨리 도착하면 좋기는 좋다.

에피소드(2) 동생도 베스트 드라이버

그런 아빠의 피를 물려받아 여동생도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다. 여동생은 운전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워낙 차를 몰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서 엄마, 아빠가 차를 쓰지 않는 날엔 어김없이 차를 몰고 나갔다. 감각과 경력의 크로스 합체로 그녀의 운전 실력은 이제(그녀는 운전 경력 16년, 나는 장농면허 경력 17년) 아빠에 버금간다. 그래서 외식을 하거나 가족들이 함께 나갔을 때 아빠께서 술을 한 잔 하실 경우엔 운전석은 늘 여동생의 차지가 된다. 나나 엄마나 남동생이 해도 되지만 이미 그런 시스템이 너무 고착화?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녀의 레전드 운전 경험을 듣는 재미도 쏠쏠한데 360도 원형으로 내려가는 어떤 상가에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던 중에 어떤 초보 아줌마가 대형 세단을 몰고 올라오고 있더란다. 그 원형 지하 주차장 통로는 워낙 좁아서 차 두 대가 같이 지나갈 수 없었는데 아줌마가 뒤로 가느냐, 여동생이 후진을 하느냐의 기로에서 아줌마가 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후진으로 1층까지 돌아돌아(원형 통로를 진짜 돌아돌아서) 나왔다고 한다. 막무가내 아줌마로 인해 고생은 좀 했지만 운전 레전드로 남을 그런 이야기는 자신의 운전실력은 은근히 자랑하면서 듣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니 아주 가~끔씩은 있어도 좋을 법하다.(내 생각인가. ㅡㅡㅋ)

에피소드(3) 내가 운전을 안하게 된 이유

운전하는 걸 좋아하진 않았지만 운전면허를 따고 신나게 운전을 하고 다니는 여동생과 비교를 당하다 보니 나도 뭔가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가끔 엄마 차를 몰고 나갔다. 초반에 운전 경험을 쌓아놔야 나중에 고생하지 않는다는 엄마, 아빠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고. 아빠를 닮아 운전 감각은 좀 타고(필기, 실기, 연수 삼종 세트를 난 한 방에 통과했다. 운도 따라주긴 했지만 ㅋ) 났으나 그래서 겁을 실종한 것이 문제였다. 뭔가를 모를 때는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데 뭔가를 몰랐기에 과감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주차를 하다 뽑은지 한 달밖에 안 된 렉스톤(그 때 막 SUV차량이 나올 때라 꽤 비싼 편이었던)을 긁고 말았다. ㄱ자 주차를 하다 렉스톤 뒷바퀴 위(뒷바퀴를 감싸고 있떤 차체)를 한 번 긁고 그 사태를 알고 수습하기 위해 후진으로 차를 빼다 긁은 데 또 긁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엄마 아빠한테 말씀드렸고 정말 무지하게 혼났다. '혼나다'라는 단어로 감히 설명도 안 될 정도로 엄마, 아빠는 나를 죄인 취급했다. 차를 긁은 건 잘못했고 운전을 배우고 처음 낸 사고?였는데 무슨 대역 죄인처럼 취급하니 나도 화가 나서 엄마 아빠한테 맞 대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내 차 사서 운전할거야!'라고 선언(이라 쓰고 악다구니라고 읽는다.)한 뒤 그 이후로 운전을 끊고 살았다. 사고 수습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파트 같은 라인의 친분이 있는 분의 아들이어서 수리비를 적당한 선에서 물어준 걸로 알고 있다. 욱하는 엄마, 아빠의 욱 하는 딸. 그렇게 운전을 안 하게 되니 나만 손해(운전 실력이 17년 전 그대로 ㅡㅡ)라는 걸 지금 알았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가도 운전은 안할 것 같다. 내 차를 언제쯤 사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내 자식이 사고를 내도 죄인 취급은 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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