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이 수술을 해서 잘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 단톡방이 잠깐 활기를 띄었다. 그러다 친구가 ‘아프면 짜증나니까’라는 말을 써서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집도 아프면 짜증내는 사람이 많아서 늘 그게 궁금했다. ‘아픈 건 아픈 거지, 대체 왜 짜증을 낼까?’ 친구는 아프면 감정조절이 잘 안 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일견 이해가 갔다. 심리적으로 약해지면 사소한 것에도 좋은 마음을 먹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나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누군가를 케어했을 때 좋은 기억이 없다. (난 경험에 대한 기억이 불편감을 상승 혹은 축소시킨다고 생각하는데) 아픈 사람을 기능적으로 케어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그 사람이 짜증까지 내면 그 짜증을 해소하는 심리적 에너지가 쌍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통증이 짜증내서 해결될 일이냐고요.(그것도 옆에서 케어해주는 사람한테)‘ 아이들은 아프면 울거나 떼를 쓴다. 아프다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아픈 걸 어떻게 참아야 하는지 모르기에 나오는 표현이다. 하지만 어른은 다르다. 어른은 참을 줄 아는 사람이다. 참지 못하는 아픔(내 경험치로 알지 못하는 극한의 아픔은 존재하므로)도 분명 있지만, 참지 못해 내는 짜증과 ‘통증은 곧 짜증’이라 치환해버리는 의식은 다르다. 고로 아프다고 짜증내는 건 통증의 미숙한 자기표현이라 생각한다. 아픈 건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고, 나아지기 위해선 여러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단연코 여기에 ’짜증‘은 없다. 나는 효율애호가인데 그런 면에선 감정적으로도 참 효율적인 인간인 것 같다. 아픈 건 아픈 것일 뿐,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짜증낼 일은 아니다. 아픈 이의 감정이 몸의 회복만큼 중요한 만큼, 케어러의 감정 또한 아픈 이를 잘 케어하기 위해 중요하다.(가끔 사랑해서 아픈 이의 짜증을 무제한으로 흡수&소화하는 사람이 드라마나 미디어에 등장[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부부가 서로를]하는데 너무 놀랍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나와 그렇다고 보살과 같은 마음도 없는 나는 ’아프면 왜 짜증을 내는 건가요?‘를 묻는 온라인 상의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이들에게 함께 외치자고 말하고 싶다. “아픈 이여, 통증을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를 부르시오. 나는 그대의 짜증받이가 아니며 그대의 통증도 짜증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정할 때 진정한 케어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오.” (휴- 겁나 짜증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네)
+ 친구가 나에게 아파본 적 없다고 해서 뭐 그럴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성향 차이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경험상 예민할 수록 아프면 짜증지수가 올라가는 듯. 나는 둔감한 편이라 안 그러는 것일 수도… 고로 짝꿍은 둔감한 사람으로 만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