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벤트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250ml 미니 하이트 맥주가 주는 기쁨

by 이문연

친구 2명이 평생교육원에서 사서 자격증 과정을 듣고 있다. 일주일에 3일 5시부터 10시까지. 30대 중반의 나이에 1시간 반 거리(한 명은 청주에서 올라오므로 무려 3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 수업을 듣는 것이 대단해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 암기 실력이 좋아야만 대부분의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기에 나에게 공부란 형편없는 기억력을 확인하는 작업일 뿐이었다. 그 작업으로 인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건 당연한 거고.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시험 기간에는 그저 공부하는 코스프레만 했을 뿐, 요약본을 만들기 위해 들인 노동력은 내 눈과 손목만 아프게 했지 머리에 결코 입력되지 않았다. 지금에야 느낀 거지만 암기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다.


원래 이야기의 흐름이 이것은 아니었는데 여튼 그렇게 과제를 하고 시험 공부를 하는 친구 2명이 대단해 보이는데 1명이 곧 졸업을 하고 자격증을 받는단다. 1년 반 동안의 수업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아마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하겠지만 졸업 핑계를 대며 '축하주'를 하자며 카톡을 보냈다. 그러자 친구 1명이 '우린 맨날 파티할 이유를 만드는 것 같아 ㅋㅋㅋ'라며 보냈는데 그 순간 떠오른 대답이 '삶의 이벤트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니'이다. 쓰고나서 생각한 거지만 어찌 보면 삶의 가성비를 박탈당한 요즘 세대들에게 필요한 것이 '내가 만드는 나를 위한 소소한 이벤트'가 아닌가 싶다. 나 또한 여유롭지 못한 생활 속에서 맥주 한 잔의 아주 소박한(하지만 가성비 짱!) 이벤트로 행복감을 느끼니 말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생활 속 이벤트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아도 어떤 일들이 나에게 알아서 일어나주길 바라는 사람. 글쎄, 길을 걷다가 5만원을 주웠다면 그게 나에게 5만원짜리 기쁨을 줄지는 몰라도 100원도 찾아보기 힘든 요즘 1:2980275872 비율 정도로 희박한 이벤트를 기대하느니 100% 당첨 확률인 가을 자켓에 1만원을 넣어놓고 내년에 발견할 이벤트를 기획해보는 건 어떨까. 내가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그만큼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가족들과 맛있는 걸 먹으며 내가 원하는 것(돈을 써야 얻을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삶의 기쁨을 누렸을 테지만 좀 아쉽지만 그건 그렇게 될 미래에 하기로 약속하고 지금은 지금의 상황에 맞게 현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인생의 시간 속에서 필요한 태도라 생각한다.


여유롭지 않음에서 오는 가끔 보게 되는 친구들, 어쩌다 먹게 되는 음식들, 마음먹고 하게 되는 행동들이 때로는 희박하기에 소중해지기도 한다. 그게 삶의 가성비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생존 본능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삶의 이벤트를 소소하게 만들어가는 지금이 좋다. 그리고 이런 이벤트가 내 삶에 광합성같은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친구들의 졸업은 6월 중순, 졸업 파티는 7월에 하기로 했다. 6월에 독립하는 친구의 집들이 또한 6월 말이나 7월 초쯤 할 예정이니 친구들과의 이벤트가 벌써 2건이나 잡혔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3번도 만났었는데 지금은 '그냥 만나'는 일을 많이 자제한다. 돈도 돈이지만 어쩌다 보는 얼굴이 더 좋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이벤트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내가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지 알고자 노력한다면, 그래서 알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이게 누구나에게 참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늘 냉장고에 250ml 미니 하이트 맥주를 사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