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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ul 18.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19) 부모님

엄마아빠가 모르는 딸의 이야기

이번 화는 부모님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어디서 읽었는지 아니면 그냥 떠오른 건지 모르지만 '불편하지만 그리운 관계'라는 문장이 나에게 있어서의 부모님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독립한지 조금있으면 6개월째다. 불편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심리적으로 가족들과 거리를 두니 편한 것이 훨씬 많다. 자신의 생각, 가치관이 정립되는 20대부터 부모님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내 생각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관철시켰다면 좀 달라졌을까. 부모님한테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 그닥 생산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이건 어쩌면 나의 의사소통 문제때문일 수도 있다.) 30대부터 피곤을 자처하지 말자라는 모드로 살다보니 굉장히 고분고분하게 변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독립을 해야겠다 마음먹은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언제쯤 독립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라는 질문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 어쩌면 나를 가장 이해해주지 못하는 존재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함께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마이너스일 때'가 바로 집에서 독립을 준비하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나는 좀 많이 늦은 것 같다. 두 분은 모두 경주 출신이시다. 엄마는 경제 형편이 괜찮은 집에서 자랐지만 막내딸로써 대접을 받기보다는 딸이기 때문에 가사일을 도맡아 하셨고(그래서 딸들에게 뭘 잘 시키지 않으셨다.) 아빠는 8남매의 맏이로 가난해서 공부할 형편이 안 되었지만 본인의 힘으로 상경(8남매 중 유일하게 서울에서 거주)해 중산층 대열에 입성하셨다. 부모님과 같이 산 세월이 오래이긴 하지만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6명이라는 대가족임에도 무음이 더 익숙한 집안 환경은 부모님이 두분 다 경상도 출신(다 그렇지는 않겠지만)이라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강신주 철학박사가 어느 강연에서 부모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다양한 종류가 있듯이 보고 싶고 생각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랑이라기보다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굉장히 복합적인 것 같다. 부모님은 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 어떻게 키울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지만 어떻게 자라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다. 그래도 우리 4남매는 별 문제없이 자랐(다고 생각한다.)고 어떻게 보면 자식 자랑이 살아온 세월에 비추어 좋은 대화거리가 된다면 그 부분에서도 나쁘지 않은 스펙을 드렸(나 말고 다른 자식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우리 부모님 세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낳았고, 낳았으니 키웠고, 그게 도리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우리 세대는 그저 낳았고, 낳았으니 키우는 세대가 아니다. 그래서 부모님 세대와의 간극은 클 수밖에 없고 기대에 부응하려면 힘에 부치며 기대를 저버리면 불효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부모님과의 간극을 체감하지 않기 위해 전투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오히려 대화를 시작하기 어렵게 된 요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의 생각, 나의 이미지 등을 현재의 나에 맞게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늘 부모님의 시선으로 나를 대했기 때문이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한 번 굳어진 자아상을 깨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엄마는 가정주부로 열심히 자식들을 챙겼고, 아빠는 가장으로 열심히 일하셨다. 정말 성실함에 있어서는 부모님 세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그 시대에는 몸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았기에 성실하면 그에 맞는 보상이 따랐다. 그럼에도 아빠는 적당히를 모르는 분이었다. 본인이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에 굶기지 않는 것이 가장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엄마와 우리들을 챙기기보다는 밖에서 일때문에 바쁜 날이 많았다. 우리야 뭐 엄마가 챙겨주니(아빠가 챙겨주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 시대에 안 바쁜 아빠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괜찮았지만 엄마는 많이 외로웠을 거다. 지금도 엄마의 외로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IMF로 무너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빠는 지금도 홀로 사업체를 운영 중이고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주말없이 일하고 계신다. IMF때 아빠는 많이 고독했을 거다. 10대의 자식들과 평생 가정주부로만 살아왔던 엄마에게 나눠주기엔 아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거다. 아빠는 자존심 하나로 버텨오신 것 같다. 자식인 나는 엄마의 외로움과 아빠의 자존심을 모른다. 


지난 주말, 여동생이 영국으로 유학가고 나서 3주만에 집에 갔다. 안 그래도 집에 가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잘 지내고 있냐고. 부모님은 평생 먼저 전화를 잘 안하는 분들이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부모님께 전화가 오면 참 생소하다. 언제부턴가 가족끼리 생일을 챙기지 말자고 했었는데 올해 생일엔 아빠가 전화를 하셨다. 집에 밥먹으로 오라고. 그 때도 참 생소했다. 부모님이 나한테 전화를 안 하는 만큼 나도 부모님께 내 얘기를 잘 하지 못한다. 부모님이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삶에서 거리가 있기에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물어보지 않기에 조잘조잘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부모님이 나에 대해 남보다 모르면 어떤 기분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조금씩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십년만에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엄마아빠가 모르는 딸의 이야기' 그 동안 말로 하지 못했던 근황을 적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계획하고 있는 것들, 앞으로의 전망 등등.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을 그렇게라도 전달해드리니 마음이 편하더라. 난 부모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직도 많지만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알려드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부모님도 자식들한테 편지를 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편지에 그런 내용은 적지 않았다. 엄마 아빠한테 그런 에너지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아는 자식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알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원래 그런거야 라는 말로 퉁쳐버릴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엄마 아빠가 편하지 않다. 그럼에도 집에 갈 때마다 편지를 드리려고 한다. 집에 자주 가지 않는 만큼 그런 식으로라도 내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다.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조용히 잘 살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께도 잘 해드리고 싶다. 그게 불편하지만 그리운 부모님을 대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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