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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ul 24.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20) 나이

글쓰기 훈련 프로젝트

에피소드(1) 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쌍꺼풀이 생겼다. 어느 날 왼쪽 눈에 진한 쌍꺼풀이 생기더니 곧 없어지리라는 내 예상을 깨고 라섹을 전후로 두 눈에 쌍꺼풀이 생겨 버렸다.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도 이렇게 곤혹스럽지는 않았다. 흰머리는 나이들어감의 상징이기라도 하지 쌍커풀이 노화의 현상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곧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손으로 비벼보기도 하고 주름 위에 테이프를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일시적인 흐릿함만 줄 뿐, 곧 쌍꺼풀은 고집센 아이의 무언의 시위처럼 곧 주름을 만들고 본인의 존재감을 어필했다. 일단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지냈다. 정신 승리의 일환인지는 몰라도 나는 내 외꺼풀(쌍꺼풀은 꺼풀로 나오는데 외꺼풀은 검색하면 안 나온다. 무쌍, 홑꺼풀 많은 단어들로 지칭되고 있지만 정확한 단어가 없다.)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 기껏 37년 동안 익숙해져왔더니 갑자기 쌍꺼풀이 생길 건 또 뭔가.


동생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노화의 현상으로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눈꺼풀이 내려오면서 쌍커풀이 생겨버렸다는 논리가 가장 설득력 있다. 그래서 그냥 노화의 현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엄마는 돈 들여서 쌍커풀도 하는 세상인데 돈 아낀 거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건 자기 눈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고 난 아니라고요~ 그런데 라섹을 전후로 이런 결과물이 생긴 건 느낌상 눈동자가 좀 튀어나와 눈을 떴을 때 눈꺼풀이 더 잘 말려올라가 그런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원인이야 어쨌든 난 이제 남은 인생을 쌍꺼풀 있는 여자로 살아야 한다. 흰머리라는 역변?에도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쌍꺼풀이라는 현상에도 적응해야 하다니 아~ 나이듦이란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 혹시 없어질지 또 아느냐구? 우리집 딸은 셋 모두 외꺼풀로 태어나 30이 넘을 때까지 외꺼풀로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하나 둘씩 쌍꺼풀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셋 모두 쌍꺼풀있는 눈이 되었다. 언니는 살짝 희미하게, 그리고 여동생은 아주 수술한 것처럼 생겼다. 그래서 옛날 사진과 지금 사진을 비교해보면 정말 수술했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인체의 신비를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고 있자니 아주 심신이 불편하다. 


그런데 이러한 미스테리는 아주 예전부터 예고된 결과였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둘 다 진한 쌍꺼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종 나이 들어서 쌍꺼풀이 생겼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고보면 결혼 사진 속 부모님의 눈은 여백의 미를 자랑하듯 고이 외꺼풀이다. 이제 나는 영락없이 나의 쌍꺼풀을 받아들여야 한다. 쌍꺼풀이 생긴 지 두 달 정도가 되었는데 이제 많이 적응이 되었다. 아직도 거울을 보면 신기하고 짝짝이(원래 내 눈이 짝짝이라) 쌍꺼풀이라 화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지만 그래도 뭐 37년 동안 외꺼풀로 살았으니 이제 앞으로는 쌍꺼풀로 살아보지 뭐. 쌍꺼풀이 내 눈에 안착한 이상 어쩔 수 없다. 흰머리도 나의 아이덴티티로 받아들이는데 1년 정도 걸렸는데 쌍커풀도 잘 받아들여보자. 사람들 만나면 쌍커풀 수술 했냐는 이야기를 듣겠지만 오해를 푸는 설명의 기술 또한 나이들면서 탑재해야 할 기본 값이라면 기꺼이 받아주겠다. 


에피소드(2) 30대의 무릎이 20대의 무릎에게


난 원래도 계단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은 20대 때도 계단 오르는 것이 이렇게 힘들었나 싶을 정도로 가쁜 숨을 부여잡고 빨리 계단 정상?에 오르기를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30대인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대체 40대, 50대 땐 어떻게 되는 건지를 생각하면 근력 운동을 열심히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이 운동하는 6,70대 아줌마 할머니들을 보면 존경스러움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참여하게 된다. 대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바로 스키장에 놀러갔었더랬다. 스노우보드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에 얼마나 열심히 탔는지 모른다. 한 번 오기가 어려우니 가르쳐 줄 때 빡세게 배우자는 심정으로 수도없이 구르고 엎어지며 S자 스킬을 배웠다. 친구 남자친구가 선생님 자격으로 동행했는데 나처럼 빨리 배우는 학생은 처음 봤다며 나의 운동 신경(사실 운동 신경이라기보다는 뽕을 뽑자는 의지가 강했다.)을 칭찬했다. 스노우보드는 기대한만큼 재미있었다. 엉덩이와 무릎이 아픈 것도 모르고 탔는데(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무식하게 탔다는 말이 제일 어울리는 듯)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무릎이 피멍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나도 30대에 무릎 건강을 생각할 줄은 몰랐다. 그러니 20대의 나를 탓하지는 않겠다.


에피소드(3) 내 얼굴에 책임질 수 있을까?


알쓸신잡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알쓸신잡의 재미는 3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유영하(작가), 유희열(가수, 작곡가), 유시민(작가, 전 정치인),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정재승(교수, 로봇 박사) 이렇게 5명이 모여 만들어내는 여행에서의 케미가 첫번째, 잡학처럼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가 주는 신선함(지식과 지성의 차이에서 오는, 그리고 지식과 지성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신선함이겠지)이 두번째, 자기 분야에 있어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대리만족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시청자의 입장과 좋은 역할 모델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짬뽕되어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8회의 마지막 즈음에 유시민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면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정치인이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면 하나도 행복해보이지가 않았다고 했다. 매번 화내는 모습, 싸우는 모습, 격렬히 논쟁하고 있는 모습이 검색을 통해 볼 수 있는 정치인 유시민의 모습이었다. 지금 작가 유시민의 얼굴은 너무도 평화로워보인다. 여유가 넘쳐 흐른다. 지금의 얼굴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도 지금의 유시민 작가의 얼굴이 좋다. 다른 참가자들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72년생(만 45세) 정재승 박사부터 59년생(만 58세) 유시민까지 아마 저런 여유로움을 갖기까지 각자 저마다의 치열함이 있었을 거다. 나이를 먹는 것이 세월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나이를 채워가는 것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민(물론 그게 환경적인 영향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어려운 것이겠으나)으로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0대와 50대에 내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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