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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Oct 08.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28) 병원(응급실)

에피소드(1) 응급실행이 추억?

에피소드(1) 응급실행이 추억?


전우애는 전시 상황과 같은 극한의 힘든 상황에서 싹트는 애틋함 감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힘든 상황을 함께 겪은 사람과는 그 경험으로 인한 애틋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아마도 대학생 때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여름 바다 여행을 갔었는데 저녁을 먹고 근처 바닷가로 산책을 갔다가 오던 길에 펀치(막대 사탕처럼 생긴 샌드백이 올라오면 주먹으로 쳐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놀이. 보통 오락실 앞에 많이 위치해있다.)를 발견했다. 친구들과의 자리에 내기가 빠질 수 있나. 가장 낮은 점수가 나온 친구가 설거지를 하기로 하고 한 명씩 펀치를 쳤다. 남자의 경우 한 주먹으로 내리쳐도 점수가 어느 정도 나오겠지만 여성의 경우 기도를 할 때처럼 두 손을 꼭 잡은 형태로 펀치를 쳐야 점수가 잘 나온다. 게다 두 세걸음 뒤에서 날아?오면서 치면 또 가속도가 붙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펀치를 좀 쳐본 나의 노하우다.


그렇게 한 명씩 쳤고 4번째 친구가 쳤을 때 갑자기 그 친구가 손목을 잡고 웅크렸다. 우리는 점수에 집중하느라 그 친구를 돌볼 겨를이 없었는데 5명의 점수를 다 확인하고 나서야 그 친구가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친구는 손목이 갑자기 아프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설거지를 마치고 손목이 아픈 친구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의료 행위를 시전했다. 뜨거운 물 찜질부터 시작해서 뼈가 부러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목을 돌려보라고도 하고 한 2시간 정도 별 짓을 다 했다. 그런데 웃긴 건 아픈 친구 빼고 그 상황이 뭐가 그렇게 웃긴지 놀러 와서 제일 많이 웃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도 핸드폰으로 인터넷이 되었기에 검색을 활용해 상태를 점검하기도 했는데 뼈가 부러졌다면 결코 그 정도로 '안정적'일 수 없다고 했다. 뼈가 부러질 경우 아파서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는 답도 있었는데 우리가 응급실 행을 결정한 것은 참다 못한 친구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여러 불법 시술을 해보며 웃겨죽겠다는 우리 앞에서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친구는 울기 시작했다.


그 때 시간이 밤 11시쯤 되었을라나 우리는 콜 택시를 불렀던 것 같다. 119를 불렀으면 좀 더 극적이었겠지만 펜션 촌에 삐뽀삐뽀를 울리며 오는 119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에 얌전히 택시를 탔다. 응급실에 가서 친구는 엑스레이를 찍었고 우리는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야심한 밤이었고 지방의 응급실은 생각보다 한적했다. 그래서인지 빨리 검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검사를 끝내고 의사 선생님은 우리를 불러 친구의 엑스레이 사진을 설명해주었다. 팔목에 미세한 금이 간 것을 보며 우리는 '그래도 안 부러져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금이 간 건 골절이 되지 않은 것일 뿐, 부러진 거나 다름없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친구가 늦게 울음을 터뜨린 건 결코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친구는 팔에 기브스를 했고 우리는 남은 여행 경비를 응급실 치료비에 쏟아부었다. 아직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배꼽을 잡는데 마냥 웃을 수는 없는 것이 10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여전히 약한 뼈로 골골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타고나길 뼈가 약하게 타고났더라. 진작에 알았으면 펀치는 하지 않았을텐데 그래도 덕분?에 전우애 뺨치는 추억 하나 얻었으니 그 친구에게 고마워할 일 같기도 하다. 물론 그 친구의 뼈 건강을 앞으로도 쭈욱 빌어주어야하지만 말이다.


에피소드(2) 그 정도라 다행이다.


동물은 자신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상대에게 해를 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은 유일하게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동물이 아닌가 한다. 동생과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동생이 반려견의 생명에 위협을 주는(반려견 입장에서) 행동을 한 나머지 윗입술을 물렸을 때다. 소형견이 물어도 그 강도에 따라 상처가 깊을 수 있는데 코천(우리집 반려견)이는 9kg의 중형견이며 사냥개이기 때문에 이빨이 날카로운 편이다. 그런 코천이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열받?게(과연 이런 표현이 옳은가 생각해봤지만 코천이 입장에서는 꽤 적절하다 생각한다) 했으니 순간적으로 이빨이 먼저 반응했을 것이다. 가족들이 다 모여 과일을 먹던 자리였고 동생의 윗입술은 순간 피로 흥건해졌다. 예전에 한 번 몸살과 체끼가 한 번에 온 적이 있어 응급실에서 몇 시간 보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또 응급실을 방문할 줄이야. 집 근처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가서 접수를 하고 동생과 대기를 했다.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 20대 중반쯤 되는 여자가 자신의 '벌어진' 손목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칼로 자해를 한 것 같다. 사람의 피부가 노골적으로 근육을 보이며 벌어진 것은 그 때 처음 본 것 같다. 무슨 사정인지 알 길은 없다. 보면 징그러웠지만 난생 처음 보는 그 광경에 홀리듯 자꾸 보게 되더라. 대체 왜?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건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동생과 나누면서 대기 시간을 기다렸다. 코천이가 자신을 문(코천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동생이기 때문이다) 것에 놀랐을 테고, 상처때문에 얼굴이 걱정되기도 했을텐데 동생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코천이를 원망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이 생긴 것에 대해 어떤 감정을 쏟아낼 법도 한데 그런 동생의 모습이 어른(내가 코천이한테 물렸어도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을까? 물론 난 애시당초 갸(코천이)를 열받게 하지는 않겠지만)스럽게 느껴졌다. 하긴 우리는 옆에서 계속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은 그 벌어진 피부에 온 신경을 뺏겨서 우리 상황은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이 상처를 보더니 아예 피부가 찢겨서 들려 올라갔단다. 그래서 꿰매야 하는데 상처가 깊어서 흉터가 100%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꿰매는 건 근처 피부과에서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보탰다. 일단 소독하고 응급처치만 한 다음 내일 오전에 바로 피부과에 가기로 했다. 희한하게 같은 시간대에 응급실에 와서 그런지 그 벌어진 손목 주인도 같은 공간에서 응급처치를 했는데 그 손목에 끊임없이 어떤 액체를 계속 붓고 있었다. 응급실 의사선생님(아마 레지던트 분들이겠지)들이 그 손목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 손목 주인의 별 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과 전체적으로 지저분했던 몰골은 기억에 남는다. 다음 날 동생과 함께 피부과에 가서 입술을 꿰맸고 1년이 지난 지금 동생의 작은 얼굴에 흉터는 거의 사라졌다. 피부과에서 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는 질문에 우리는 키우는 강아지한테 물렸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선생님은 별 말씀 안 하셨다.


코천이는 지금도 아픈 발을 만질 때면 입술이 씰룩씰룩(물기 전에 하는 준비운동 같은 것)거린다. 해를 가하려고 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지만 동물은 그걸 모른다.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저 자기가 아프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동물은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사람은 '본능'을 거스른다. 생존하려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대로의 생존이 힘들다고 생각할 때 생존을 스스로 포기한다. 본능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는다. 자신을 포기하는 동물은 결코 없다. 자해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굳이 찾아본다면 찾아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자해는 자신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거나, 포기하고 싶은 자신을 붙잡아 달라는 신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다 어렴풋이 생각났는데 자해는 더 큰 아픔을 잊기 위한 수단이라고 들었던 게 떠올랐다. 응급실에서 본 그녀의 아픔이 어떤 건지 모르지만 동생의 상처가 잘 아문 것처럼 그녀의 아픔도 잘 아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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