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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Oct 05.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27) 독립

귀차니스트의 요리법

에피소드(1) 귀차니스트의 요리법


내 정체성의 한 가지를 꼽으라 하면 귀차니스트가 있다. 얼마만큼의 귀차니스트냐면 모든 욕구의 상위에 귀차니즘이 있고 뇌활동의 90%를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에 쓴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최상효율주의자이며 안 좋게 말하면 극귀차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요리의 경우도 미각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예쁘고 맛있게 먹는 것보다는 손이 가장 덜 가는 방식으로 한 끼를 먹는 방식을 택한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라고 말할 정도로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쁜 플레이팅으로 식사를 하지 않아도 나는 내가 먹는 방식이 나를 대접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귀차니즘적인 성향으로 단순하고 간결하게 먹는 걸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독립한지 9개월차에 들어가는 내가 해봤던 요리는 된장찌개와 카레이다. 카레는 한 번 많이 만들어서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했더니 아주 훌륭한 저장?음식이 되었다. 뭐해서 밥먹을까를 고민할 때면 하나씩 녹여먹으면 그만이다. 된장찌개는 시중에 파는 된장찌개용 된장을 활용하는데 이것 역시 안에 내용물은 소분해 놓아야 한다. 양파, 두부, 애호박, 팽이버섯의 적정량을 소분해 냉동실에 보관해 놓은 다음 끓는 물에 된장과 소분해놓은 재료들을 한 꺼번에 투하! 적정 시간동안 끓여주면 그만이다. 참, 가장 중요한 밥 역시 냉동실행이다. 한 번 밥을 할 때 양을 많이 해서 밥 한공기 용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하면 밥을 먹을 때 하나씩 꺼내서 녹여주면 그만이다. 물론 전자렌지에 돌릴 때는 밥그릇에 담아서 돌린다. 귀차니즘이지만 환경 호르몬 이런 건 중요하게 여겨서 절대 플라스틱 통에 그냥 돌리지는 않는다. 


사실 귀찮기도 하고 다이어트 핑계로 매일 밥을 녹여먹지는 않는다. 가끔 다른 걸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런 다양성?이 꼭 요리를 하지 않아도 나를 질리지 않게 하는 요인이다. 물론 그 허기짐?으로 맛있는 녀석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불편한 점은 잘 모르겠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최적화된 생활요리를 해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귀차니스트로 해먹은 인스턴트 생활요리를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1) 군만두플레 (군만두 + 요플레)

내가 좋아하는 식사 중의 하나다. 사실 군만두나 만두는 1인생활자들을 위한 아주 훌륭한 한 끼 식사 대용이라 생각한다. 맛도 있고 식감도 좋다. 매번 어떻게 튀기는 게 가장 적당하게 튀기는지 잘 몰라서 어려움을 겪긴 하지만 그래도 기름을 두른 약한 불에 오래 내비두면 잘 익긴하니 요리무식자에게도 적합한 식사다. 난 만두를 간장이 아닌 요플레에 찍어먹는데 이게 약간 기름이 많고 느끼하다는 생각에 좀 상큼한 맛이랑 어우러지면 좋겠다 생각해 요플레에 한 번 찍어볼까? 생각한 것이 내 입맛에는 아주 좋더라. 게다 요플레는 발효 음식이라 몸에도 좋지 아니한가. 그래서 군만두 4개에 요플레 1개(아무 과일도 섞이지 않은 플레인을 추천한다.)면 한 끼 뚝딱이다.


2) 치계반개라면 (치즈 + 계란 + 라면반개)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는 걸 좋아한다. 라면 자체의 맛도 좋지만 계란이 들어갔을 경우 달라지는 고소하고 약간 걸쭉해지는 풍미와 식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 20대 때는 라면 한 개도 부족해서 라면을 다 먹고 꼭 밥을 말아먹었는데 어느 순간 라면을 잘 먹지 않다보니 라면을 하나 다 먹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반으로 나눠서 먹어보자 생각했고 반으로 나눠서 먹으니(때에 따라 떡 사리를 넣거나, 만두 사리를 넣거나 한다.) 딱 좋더라. 내가 독립할 때 집에서 가지고 온 라면이 오징어짬뽕이었는데 매운 맛을 잘 못 먹는 내가 선택한 건 치즈였다. 치즈를 넣으면 느끼하고 고소한 맛이 더해져 매운 맛이 중화된다. 그래서 오징어짬뽕 반 개에 체다치즈 정사각형 반 장을 넣고 계란 하나를 넣어서 먹으면 색다른 라면 맛을 느낄 수 있다. 얼큰하면서도 고소하고 그러면서도 계란의 풍미가 느껴지는 그런 라면. 라면 하나를 먹어도 좀 색다르게 먹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이 되어서 그런지 하나 개발하고 나니 주구장창 이렇게만 먹고 있다. 참, 라면에 맥주는 독립하고 나서 처음 먹어봤는데 라맥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라면 반개가 좀 아쉽다 싶으면 맥주랑 같이 먹으면 좋다. 


3) 아몬드블루베리얼 (아몬드 6알 + 블루베리 + 시리얼 + 요플레)

나름 영양소(대체 어떤 측면에서?)를 고려한 최상의 아침식사다. 혼자서는 아침을 차려먹기 힘들어서 아침은 가볍게라는 모토로 머리를 굴려 만든 아침식사다. 일단 설탕을 최소화한 시리얼 한 그릇에 아몬드를 6알(개인 취향 껏 넣어서 먹으면 되는데 시리얼 한 그릇이 6 숟가락 정도 되므로 한 숟갈 당 아몬드 1알을 적용해 만든 측량이다.) 넣고 냉동 블루베리는 한 2숟갈 정도 넣은 다음 요플레(여기서도 등장. 내 사랑 플레인 요거트.)를 한 통 넣어주면 된다. 사실 이 조합도 머리를 엄청 굴려서 만든 조합이다. 귀차니즘적인 성향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영양을 해치는 식사를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견과류와 과일을 조합했으며 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요플레 그리고 밥의 역할을 해주는 곡물 시리얼을 선택한 것이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때는 아침에는 된장찌개와 함께 시작했고 내가 이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귀찮으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생활 습관이 바뀌더라. 결혼해서도 아침은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독립하기 전이었으니까 아침은 자신에게 맞는 걸로 각자 해 먹는 걸로.


에피소드(2)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독립을 하고보니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더라. 일단 요리는 못하기도 하고, 하는 걸 귀찮아한다. 그건 어느 정도의 저퀄리티(보통 미식가들의 기준에서) 음식도 맛있게 먹는 입맛을 타고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요리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릇도 많지 않다. 모든 식기는 2개(혹시 누가 올 때를 대비해서 하나 정도의 여분은 있다)이며 접시도 작은 거 2개, 큰 거 2개 끝이다. 후라이팬은 집에서 가져온 거 작은 거(지름 15cm) 하나와 냄비는 양수(손잡이 2개) 냄비 1개와 편수(손잡이 1개) 냄비 1개가 있다. 대부분의 요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도구로 완성이 가능하다. 이런 내가 나를 잘못 판단한 게 2가지가 있는데 칼 세트를 산 것과 소스 10종 세트를 구비한 것이다. 가위 1개와 큰 칼 2개, 과도 2개가 들어있는 세트를 저렴하게 팔길래 덜컥 샀는데 나는 과도 하나면 만능 요리가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요리를 많이 할 줄 알았다. 간장부터 식초, 참기름 등 소스는 거의 10종 세트를 구비했는데 웬 걸, 굴소스는 8개월째 미개봉 상태 그대로이다. 간장 구별도 못하면서 국간장과 반찬용 간장 2가지를 산 건 최대 미스다. 실제 간장은 황태채 먹을 때(feat. 마요네즈, 청량고추) 가장 많이 사용 중이다.


처음에는 물을 사먹었다. 그러다 플라스틱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물을 끓여먹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 어떻게 보면 귀차니스트인 나에게 물을 끓이는 작업은 에너지를 쓰는 작업일 수 있지만 플라스틱을 최소화하고 싶다는 욕망이 귀차니즘보다는 강하기 때문에 물을 끓여먹는 것이 전혀 힘들지는 않다. 게다 둥글레차 맛이 그냥 물을 먹는 것보다 맛있기도 하니 이틀에 한 번 열심히 끓여먹고 있다. 주전자가 없어서 냄비에 끓여서 스테인레스 물병에 바로 담는데 냄비가 작아 2번은 끓여야 한다. 환경 호르몬 걱정없이 바로 담아 식힐 수 있으니 좀 비싸도 스테인레스 물병을 산 건 잘 한 일이라 생각한다. 전기 포트도 사놓고 보니 전혀 필요하지 않더라. 팔팔 끓이고 싶은 니즈로 전기포트로 끓이는 것보다 냄비에 끓이는 걸 더 선호해 전기포트도 놀고 있는 중이다. 


뭔가를 할 때 생각하며 하기보다는 체계를 만들어 하는 걸 좋아한다. 한 번 체계가 잡히면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행동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깔끔한 성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저분한 성격도 아니다. 그래서 생활하다 보니 청소 시기가 자연스럽게 정해지더라. 방을 청소포로 닦는 건 3일에 한 번, 청소기는 2주일에 한 번(내가 귀차니스트란 걸 염두해두자.), 화장실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한다. 원룸이라는 공간은 2년 동안 임대해 사는 집이지만 그렇다 해도 거주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내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거중하는 동안은 나의 숙식을 책임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을 깨끗이(내 기준에서) 관리하는데 애착이 간다. 집 안의 공기와 쾌적함이 내 삶의 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잘 살고 싶고, 잘 사는 것에는 내가 원룸에서 보내는 시간이 포함된다. 


미니멀리즘 열풍, 심플 라이프 열풍이 아직 진행형이다. 본인이 맥시멀리스트라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겠지만 난 약간 생활형 미니멀리스트인 듯 하다. 최소한의 것으로 사는 것에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실용을 추구하기 때문에 내 원룸을 보면 무미건조라고 써 있고, 여자(하긴 요즘은 남자 방도 인테리어 뿜뿜) 방이라고 느껴질 거라곤 없다!(헉, 글 쓰면서 생각해봤는데 진짜 없어) 원룸에는 이불 보관과 옷 보관이 가능한 장이 하나가 있는데 난 그 장 하나에 4계절 옷 보관이 가능하다. 내가 코칭한 바로는 대한민국 평균 여성들의 옷장에는 계절당 60가지 이상의 아이템(옷, 신발, 가방 포함)이 있는데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장 2개가 옷으로만 꽉꽉 차 있어야 한다. 거주 공간이 작다면 그 작은 공간을 얼마나 여유롭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심리적인 여유도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거주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 무미건조한 사람은 아니지만(아닐거야...) 금전적인 이유에서든, 기질적인 이유에서든 심리적인 압박없이 아직은 공간에 맞게 잘 적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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