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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Sep 22.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26) 미용실(미장원)

염색하기 전 주의 사항

에피소드(1) 염색하기 전 주의사항


큰 사고 한 번 없이 곱게? 성장한 내가 극한의 고통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미용실에서였다. 30살이 넘어서부터 흰머리가 송송 나기 시작했고, 꼭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에게 어울리는 머리색을 하는 재미로 염색을 하곤 했다. 아마 그 때 했던 색이 레드브라운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미용실을 가면 어떤 시술을 하느냐에 따라 머리를 감겨주기도 하는데 그 날은 뭣땜에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는지 오전에 미용실을 예약해놓고 머리를 감고 갔다. 린스는 염색에 지장을 줄 것 같다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샴푸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 더 또렷이 기억나는 건 머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용실을 갔다는 거다. 이 날 떨었던 부지런함이 나를 공포로 몰아넣을 줄 이 때는 몰랐다.


시술을 하기 위한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염색약을 발라야 하기 때문에 거울 앞의 개인 자리가 아닌 넓다란 테이블에 여럿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선생님과 어시스트 분이 염색약을 바르기 시작했고 나의 두피는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액체를 피부에 발랐을 때 피부가 따끔거린다면 우리는 결코 그 액체를 가까이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머리색을 낼 수 있기에 그 정도의 아픔을 감수하며 많은 여성들이 머리를 하러 온다. 할 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염색은 다른 시술에 비해 두피 고통이 있는 편이다. 피부에 치약을 오래 바르고 있는 정도의 약한 따가움에서 마이너스, 플러스를 왔다 갔다 한다. 처음에는 그 정도였다. 두피에 치약을 바르는 정도의 따가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급기야 나중에는 수십개의 바늘이 두피를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주변에는 3,4명의 여성들이 머리를 하고 있었고 나는 머리가 따가워 죽을 맛이었다. 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다.


머리를 다 하고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 울었던 경험(고등학생 때)은 있다. 하지만 그건 고등학생 때고 지금은 30대 중반인데 미장원에서 울 수는 없다며 거의 흐느끼다시피 선생님한테 두피가 너무 따갑다고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거의 다 됐다면 조금만 참으라고 했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염색을 잘 마친 후 집에 돌아왔다. 하루 종일 두피가 미친듯이 따갑긴 했지만 뭐 금방 가라앉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드라마 M에서는 심은하와 키스를 한 남성들이 머리카락이 빠지며 이상해지는 공포를 경험한다. 나는 그 날 부터 두피 껍질이 벗겨지는 공포를 경험했다. 멀쩡한 두피를 열받게 함으로써 스스로 떨어져나가게끔 만든 것이다. 멀쩡한 살을 딱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독성이 필요할까.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어주고 얻은 약으로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처럼 난 선생님에게 받은 염색으로 머리색을 얻고 두피를 잃었다. 인어 공주는 왕자를 만나고 싶다는 원대한 목표라도 있었지 나는 머리색 하나 바꾸고 싶었을 뿐인데.


알고보니 샴푸에는 염색약과 맞지않는 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염색을 하기 전에 결코 머리를 감고 가지 말라는 충고의 말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젠장. 갑자기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이 정도 정보는 헤어 디자이너라면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미용실에 전화를 했을 때 예약을 '염색'으로 한다면 '절대 머리 감고 오지 마세요!'라고 언질을 하는 것이 건강한 염색 서비스를 위한 도리 아닌가. 또한 누가 봐도 머리를 감고 온 것이 역력한 손님한테 '혹시 머리 감으셨어요?'라고 물어보고 확인해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선생님도 몰랐었다로 결론 내렸지만 머리 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 아직 떨어지지 못한 딱정이를 찾아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그 작업은 미용실에 갔다온 일주일 내내 지속되었고 화수분처럼 딱정이가 멈추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인간의 신체는 오묘하기도 하지 다행히 일주일 후에 내 두피는 정상화되었고, 나는 그 이후로 결코 염색을 하지 않았다.


에피소드(2) 조용한 선생님이 좋아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도합 15년이 넘게 나를 거쳐간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은 총 3분이다.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다 남자 선생님이었다. 남자 선생님이 부담스럽다는 친구들도 있지만 난 남,녀 상관없이 머리만 잘 하면 OK라 생각해 남자 선생님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선생님은 따로 있는데 고객과 수다 삼매경에 잘 빠지는 선생님이다. 가끔 미장원에 있다보면 머리를 하는 고객의 성향도 그렇고, 선생님이 그 성향에 맞춰서 그런건지 선생님의 성향 또한 그래서인지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광경을 보곤 한다. 내 성향은 정 반대다. 머리를 할 때도 내가 원하는 머리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때만 대화를 하고, 선생님이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만 답변을 하며 결코 입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눈을 감아 '저에게 말을 시키지 말아주세요.'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인지 나를 담당했던 선생님들은 말을 많이 걸지 않으셨다.


친해지지 않는 이상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더더욱이 미용실 같은 곳은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곳이니 서로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게 될 경우 컴플레인을 적절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철벽?을 쳤던 것 같다. 그러니 같은 분야 종사자라고 해서 혹은 나의 머리를 해주는 디자이너 선생님과의 친분을 알리기 위해 함께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소개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았다. 사실 언젠가부터 내가 원하는대로 머리가 나오지 않아도 나는 화를 내지 않게 되었는데 그건 화를 내봤자 머리가 내 마음에 들게 변할 것도 아니고, 돈을 환불받을 건 더더욱 아니며, 그 선생님께 머리를 안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과 그걸 정확히 구현해내는 능력 두 가지가 필요하다. 내가 했던 선생님들은 다 경력이 꽤 있었는데 성공률이 80% 정도였다. 5번에 1번 정도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전문가들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혹은 내가 나의 니즈를 잘 못 전달했을 수도 있고) 다른 선생님들을 찾기보다 같은 선생님에게 시술을 받았다. 그래서 10년(첫번째 선생님)간 5년(두번째 선생님)간 머리를 맡길 수 있었나보다.


세번째 선생님은 두번째 선생님이 그만두고 소개해준 분(같은 미용실)인데 커트는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지만 두번째 시술에서 거의 낙제점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니즈가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구현에 실패했고, 애시당초 실패한 머리였어서 그런지 A/S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선생님도 말 안 시키는 부분에 있어서는 참 마음에 들었는데 새로운 선생님을 다시 찾아봐야 하니 심히 고민이다. 머리 잘 하면서 내 성향에도 맞는 선생님을 찾기란 정말 힘든데 겉으로는 안 그래 보여도 자기만의 니즈가 확실한 나같은 고객은 어쩌면 디자이너 입장에선 까다로운 고객일 수 있다. 조용한 선생님을 찾는 건 포기해야 하나 싶다.


에피소드(3) 패션 잡지는 괜찮습니다.


미장원에선 자리를 안내받음과 동시에 패션잡지를 건네받는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패션 잡지를 보고 있는데 어느 날 문득 이 광경이 너무 이상하더라. 우리는 미장원에서 꼭 패션잡지를 봐야 하는 걸까? 패션에 관심이 지대했던 20대 때는 나도 패션 잡지를 열심히 봤다. 모델들은 너무 날씬하고, 배우들은 너무 화사했으며, 패션 잡지에 소개되는 아이템들은 반짝 거렸다. 게다가 뒷 페이지쯤에는 연애 상담이나 남녀에 관한 재미난 설문 등이 나와 있었으니 머리를 하는 동안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좋은 필템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이제는 패션 잡지를 보지 않는다. 10년 전과 똑같이 모델들은 날씬하고, 배우들은 화사하며, 아이템들은 반짝거리지만 난 더 이상 그것들에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 미장원에서 갖다주는 패션 잡지를 구독하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과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싶지 않다. 누구는 웹툰을 볼 수도 있고, 영상을 시청할 수도 있으며, 진짜 패션 잡지가 좋아 읽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미장원에 가면 '지루함을 달래줄 것이라는 배려 차원에서' 패션 잡지를 건네 받는다. 헤어 산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패션 산업과의 윈윈 전략인지 아니면 머리를 하면서 보기 좋은 콘텐츠 No.1에 패션 잡지가 뽑혀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이제 패션 잡지를 거절할 줄 안다. 패션 잡지를 가져다주려는 분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내가 좀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콘텐츠를 찾아 머리가 완성되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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