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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Sep 15.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25) 관계

개인주의자의 생존법

에피소드(1) 개인주의자의 생존법


삶에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주변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로 인해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 문제를 해결해줄만한 사람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도움을 요청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도움을 요청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의 인프라가 풍부해진 건지, 인프라가 풍부해서 도움을 잘 요청하는 사람이 된 건지 그 우선순위는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문제를 참 쉽게 해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남의 손을 빌리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고, 부러움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게 하나의 재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난 여전히 주변에 도와달라는 소리를 잘 못한다. 상대방에게는 별 일 아닌 일일 수도 있고, 가볍게 도와줄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는데 내가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 느끼는 책임감, 귀찮음, 종속성을 상대방에게 투영해 '거저 도와달라고 하는 것에 대한 민폐와 미안함'으로 포기해버린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을 활용?하려고 하지도 않고, 잘 의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직은 별 일 없이 살고 있지만 나에게 관계적 안정감이 필요할 때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은 된다. 종속됨을 싫어한다. 관계는 어떻게 보면 종속됨이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대학교 OT때 알게 된 친구들과 뭔가 안 맞다고 느낀 후 거리를 두었다. 혼자 밥 먹고, 수업도 혼자 들었다. 혼자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괜찮은데 마음이 불편하고, 뭔가 어색한 자리에 있는 것을 못 견뎌한다. 가만히 보면 관계를 잘 맺고 관계로 인해 자신의 삶을 리드할 수 있는 사람들은 관계로 인해 생기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는 것 같다. 그렇게 관계를 지속하고, 잘 활용해 나간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 일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참 생존에 불리한 성향이다. 관계 맺기를 좋아하지 않고,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종속되는 건 싫어하며, 핀트 하나만 어긋나도 관계를 멀리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게다 도와달라는 소리도 잘 못하니 결국 내가 잘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서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찾게 만들지 않으면 굶어죽기 딱 좋은 성향이랄까. 아니면 보호 본능이라도 불러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도움을 주고 싶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내 인상은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생존에 불리한 나의 DNA도 유리하게 진화된 것이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나마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응원하고 내가 하는 일을 응원한다. 나 또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고 함께 하면 즐거운 사람들은 그들이 나에게 꼭 어떤 도움을 줘서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하면 즐거운 이치. 하지만 자주 보지는 않는 관계들. 앞으로도 관계에 얼마나 능숙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거리감을 알게 된 이상 이러한 관계 맺기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에피소드(2) 깊은 관계로의 진화


스스로가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관계를 대하는 마음은 편할 수 있다. 좀 깊은 관계, 이 정도의 부탁은 들어줄 정도의 관계, 나의 일부만 안다고 생각하는 관계 등등 내가 상대방과의 거리를 정의할 수 있어야 그 상대방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혼란은 줄어든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이들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직 내 전부를 보여주지 않아서일 수 있다. 누구나 좋은 점, 안 좋은 점, 다른 점 등을 가지고 있는데 같이 경험하는 것이 많고 부대끼는 시간이 많을 수록 나의 진짜 모습을 보일 확률이 높다. 그런 시간을 충분히 같이 지내지 않고서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일부만을 좋아하는 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환경적인 요인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왔지만 그런 '어쩔 수 없음'으로 나의 진짜 모습을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음'으로 친구 사이를 유지하는 게 고마운 일일 수도 있다. 내가 상대방의 좋은 점, 안 좋은 점, 나와는 다른 점을 발견하고도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 관계를 바라보는 나를 알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거나,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상대방과의 관계 설정이 달라진 것이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과 그 설정에 따른 내 포지셔닝을 잘 다룰 수 있다면 관계를 맺는 것과 좀 더 깊은 관계로 진화하는 것, 관계에 거리를 두는 것에 한층 더 편해지리란 생각을 해본다. 


에피소드(3) 노력(또는 전략)이 필요한 관계들


기본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는 마음을 많이 쓴다. 머리를 써서 맺은 관계는 나라는 사람에게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 굳이 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인맥이 없고, 인맥을 관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전략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 머리를 굴려서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내 맘같지 않은 사람들이다. 내가 보는 나와 상대방이 보는 나의 이미지가 다른 사람들이다. 보통 내가 편한 만남들은 내가 보는 나와 상대방이 보는 나의 모습이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나의 포지션을 (나와는) 다르게 보고 있거나. 그래서 그걸 맞춰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를 써야 한다. 이게 굉장히 잘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난 후자에 가까운 편인데 그래서 그렇게 머리를 써야 하는 관계라면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아예 관계를 끊는 편이다. 예전에는 가족과 친구 사이는 그냥 관계를 지속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또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내맘 같지 않다는 말이 이런 관계 속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가족이든, 친구든, 지인이든 하물며 부부까지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의 밀도로, 어느 정도로 거리를 둘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관계를 잘 못하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우습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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