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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Sep 12.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24) 노래(방)

흥발산 총량의 법칙

에피소드(1) 흥발산 총량의 법칙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들어볼까.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음...아침을 경쾌하게 시작할 수 있는 노래를 들어볼까.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을 들어보자. 전주가 웅장하다. 주변을 둘러본다. 마침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노래에 맞춰 나만의 길거리 노래방을 시작한다. 맞다. 길에서 노래부르던 미친 사람이 바로 나다. 가끔 노래를 잘 부르다가 옆에 사람이 갑자기 지나가면 상당히 민망하다. 하지만 요즘은 이어폰을 꽂고 걸어다니는 사람이 90% 이상이라 그걸 확인하고서는 계속 부르기도 한다. 흥발산 총량의 법칙이란 것을 아는가? 미안하다. 내가 만든 법칙이다. 누구나 발산해야 하는 흥의 총량을 갖고 있다는 법칙이다. 흥이란 것은 자기만의 끼를 표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일 수도 있다. 흥을 발산해야 하는 자기만의 이유가 제각각이듯이 흥을 발산하는 방법 또한 제각각일 것이다. 그 방법이 나에게는 노래이다. 


20대 때는 친구들과 노래방을 곧잘 다녔고 회사를 다녔을 때는 회식 후 3차로 노래방을 갔다. 원해서든, 원하지 않든(원하지 않을 때는 거의 없었던 듯) 정기적으로 흥을 발산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노래를 불러야만 들을 수 있는 나의 목소리(말할 때의 목소리와 노래할 때의 목소리가 약간 다른데 노래부를 때 목소리를 좋아한다), 100데시벨의 샤우팅도 가능한 안락?한 환경, 그 공간에서만큼은 평소 발산하지 못한 흥을 마음껏 뽐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노래방을 같이 갈만한 친구도 없고(눙물이 ㅜㅜ), 회사도 안 다니니 노래방을 갈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길거리 노래방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흥발산 총량의 법칙에 의하면 나의 흥을 적정 시기에 적당히 발산해줘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그냥 길거리에서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근거리에 있는 코인 노래방(1인가구의 증가로 혼자 놀 수 있는 공간이 부쩍 많아졌는데 그 중에 하나가 코인 노래방이다.)을 알아놓기는 했는데 아직 도전하지 못했다. 길거리 노래방을 애용하면서 느낀 거지만 성대와 폐활량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2시간, 3시간씩 노래를 불러도 끄떡없었는데 이제는 폐활량 때문에라도 코인 노래방을 이용해야 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언제쯤 나의 흥을 풀 수 있는 날이 올까. 노래방 가면 불러봐야지 하고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놓은 곡(이선희의 '인연', '아름다운 강산',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 정인의 '장마', 윤종신의 '세로' 등등)이 벌써 수십곡이지만 에코가 빵빵한 노래방에서 언제쯤 부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오늘도 발산되지 못한 나의 흥은 쌓여만 간다.  


에피소드(2)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


1. 가리워진 길 - 볼빨간 사춘기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 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 보낸 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가장 많이 듣기도 했고, 좋아하는 노래다. 내가 노래를 듣는 이유 중의 하나는 '위로받기'위해서 이기도 한데 미생 드라마 편에서 알게 된 이 노래는 가사가 정말 주옥같다. 원곡은 유재하 노래지만 볼빨간 사춘기의 여성 보컬 음성과 기타 주법이 더 마음에 든다. 1인기업을 시작하고 5년이 지나고, 8년이 지나도 자리 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내가 뭔가를 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나와주지 않을 때 이 노래를 듣다보면 마음이 담담해졌다. 나의 길 역시 보일 듯 보이지 않았고, 갈 길을 찾은 듯 보여도 문득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럴때면 이 노래를 틀었고 조용히 따라 부르다보면 허공의 그대가 힘이 되는 것 같았다. 힘들 때 옆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오래 가고 기억에 남듯이 힘들 때 날 위로해준 노래라 애착이 간다. 내 인생의 첫 책쓰기 까페 송년회 때 기타 치면서 불렀었는데 나의 자뻑 욕망을 만족시키는 몇 안 되는 노래이기도 하다.


2. 취중진담


20대 때 나의 18번이었다. 여자 치고 높지 않은 음성이라 남자 노래가 더 잘 어울렸는데 김동률은 특히 저저저음이라 한 3단계 정도 올려서 불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노래 잘 부르는 남자(아빠가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나 아빠는 취중진담 대신 '고향역'을 부르시니...)를 인생에서 몇 번 만나지 못했는데 취중진담을 잘 부르는 남자가 있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에피소드(3) 노래실력도 유전되나


혼자하는 글쓰기2 (운전) 편에서 가족들의 운전 실력을 언급한 적이 있다. 단연 발군인 여동생이 아빠의 운전 실력을 닮았다고 했는데 노래 실력도 자식들에 따라 편차가 있다. 일단 엄마, 아빠의 노래 실력에서는 아빠가 한 수 위다. 운전 실력은 차례대로 유전되지 않았으나 노래 실력은 차례대로 유전된 감이 없지 않으니 DNA의 영향력은 신기하고도 지멋대로다. 그래서 노래 실력은 언니가 제일 뛰어나다. 대학생 때 들어간 혼성 합창단을 통해 노래 실력은 한 층 더 업그레이드가 된 듯한데 30살이 넘어서는 OB 연습에 나가는 게 무슨 의미(노래가 주는 기쁨을 느낄 여력이 없었거나,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시기였던 것 같다.)냐며 찡찡거리곤 했다. 하여간 언니 합창 공연때 봤던 미션 임파서블 OST(둥둥~ 둥둥~ 둥둥 X 2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다닷! 유노 와람씽잉?) 아카펠라는 꽤 멋있었다. 


여동생은 노래를 잘 부르기보다는 노래를 굉장히 잘 따라부른다. 운전을 하면 시동을 켜자마자 핸드폰 블루투스를 연결하는데 막간에 아빠의 뽕짝 트로트(아빠 차니까)가 흘러나오면 절규해 마지 않는다. 매일매일 들어도 하나의 노래를 외우는 건 참 어렵던데 요즘 힙한 노래를 또박또박 다 따라부르는 그녀를 보면 운전에 최적화된 암기 실력(노래 실력 No)이 아닌가 한다. 남동생과 노래방을 간 적이 언제였더라. 20년도 더 된 것 같다. 그래서 남동생이 부른 노래 하면 아주 어렸을 때 불렀던 드라마 '도깨비가 간다(1994) OST'(들어보고 싶어서 검색했는데 안나온다. ㅜㅜ)밖에 생각이 안난다. 94년도니까 4살 때인데 발음도 잘 안되면서 신나게 불렀던 걸 보면 흥발산 총량의 법칙을 어렸을 때부터 잘 지켰던 것 같다. 지금은 다 자기 인생 사느라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4남매 완전체로 노래방에 갈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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