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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Sep 06.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23) 느림(여유)

에피소드(1) 내가 느린 걸 선호하는 이유


가족들과 외식을 하면 아빠는 저 앞에 혼자 걸어가시고, 나머지 무리들이 따라간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급하냐며 한 마디를 보태신다. 웃긴 건 엄마 걸음도 못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한 명씩 짝을 지어 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우리 가족 중에서는 내 걸음이 제일 느릴 것이다. 원래 성향 자체도 느리지만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옆 사람의 빠른 걸음걸이를 쫓다보면 반항심에 더 천천히 걷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빨리 빨리의 성향은 아마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리라. 아빠는 대한민국이 급속도로 성장하던 80년대에 20대 시절을 보냈기에 그 성장의 흐름이 몸 속에 각인된 것일 수도 있다. 여유를 부려서는 속도를 맞출 수 없다는 두려움과 쉼없이 일하는 것이 가족을 위한 가장의 역할이라는 그 시절의 정답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아빠가 밖에서 일하느라 바빴다면 엄마는 집에서 애들 키우느라 바빴다. 첫째와 둘째가 엄청 순해서 거저 키웠다고 하는데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 악마?(조금 과장해서)같은 셋째가 태어남으로 인해서 엄마, 아빠의 고생 스토리가 시작된다. 잘 울지도 않고, 쭉쭉이(공갈 젖꼭지)만 물려 놓으면 자기 바빴던 첫째와 둘째는 맨날 눕혀 놓아서 그런지 보름달처럼 동그란 얼굴이 되었고, 울고, 보채고, 칭얼대느라 엄마가 많이 안아주었던 여동생은 작디작은 얼굴형의 소유자가 되었다. 착하고 순했던 아가들한테는 넓다란 얼굴을 주고, 엄마를 못살게 군 아가한테는 작고 갸름한 얼굴을 주다니. 세상은 심히 불공평하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기 셋을 키우다보니 엄마는 만능 살림꾼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예전에는 남편이 육아를 도와주고, 살림을 도와준다는 개념도 없었을테니) 집안 일하랴, 빨래하랴, 아기 돌보랴. 본인 몸 챙길 시간도 없이 하루 24시간을 빨리빨리 정신없이 해치워야 하는 미션으로 살아오진 않으셨을까. 엄마 역시 20대에 우리 셋을 낳았고, 20대 때 몸에 배인 습관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것 같다. 


그런 엄마, 아빠의 영향인지 똑똑한 DNA가 몰린 탓인지 언니는 뭘 시켜도 빠릿빠릿하게 잘 했다. 생긴 것도 똘망똘망했고, 실제로도 똑똑해서 엄마, 아빠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과한 기대감때문인지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유치원생인데 쫌 그늘이 있다. <= 본인이 한 말 ㅡㅡㅋㅋㅋ) 1년 반 있다가 둘째를 낳았다. 그게 나다. 그런 첫째에 비해서 뭐든 느렸다. 원래 성향도 좀 느린 것 같은데 비교 대상이 그런 언니였던지라 엄마, 아빠는 좀 이상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는데 초등학생 때 그림 일기의 맞춤법 하나를 틀렸는데 그걸 찾느라 2시간 넘게 엄마한테 혼이 났다. 정답을 찾기 위해 모음을 일일이 대입했고 그 날 밤 난 틀린 모음 수 대로 맞았다. 다행히 엄마가 안아주어서 마음의 상처는 덜었지만, 병주고 약주고. ㅜㅜ 


하여간 그렇게 난 원래도 좀 느린 아이지만, 뭐든 빨리빨리 해야되는 것에 반감이 있는 것 같다.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할 때도 머릿 속에 이야기할 것이 다 정리되어야지만 말을 버벅거리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거나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할 때는 자동적으로 말이 느려지거나, TV의 Pause(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되는데 그러면 가족들은 '오늘 저녁에 이야기할래?'라며 놀린다. 또한 걸을 때도 빨리 걷는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보다 상대방(대부분 가족들)과 함께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해서 천천히 좀 걷자고 이야기하면 가족들은 본인이 빨리 걷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사실 가족들이 빨리 걷는 건지, 내가 느리게 걷는건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내가 천천히 걷고 싶으니까 천천히 가자고 이야기하는 것일 뿐) 사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약속 시간에 늦은 게 아니라면 쫌 천천히 걸어도 되는 거 아닌가? 영화 시간에 늦지도 않았는데 만원인 엘리베이터에 빨리 탑승하지 않는다고 짜증을 냈던 언니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것 타도 괜찮다고.


에피소드(2) 삶의 여유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사실 나도 마냥 여유롭지는 않다. 내 안의 포용력이 한계치를 드러내고, 짜증을 막 표현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부드럽고 냉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골치 아픈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까?'하는 부러움과 경이로움이 퐁퐁 솟아난다. 그런 사람들은 성장 과정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체득되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람들과 그러한 성장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부던한 노력을 통해 그런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게된 사람들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여유로울까? 난 마음이 편한 사람이 여유로울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삶에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여유로울 확률이 높을 거라 본다. 그렇기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가 어느 정도 연관이 있겠지만 절대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돈이 많아도, 지위가 높아도, 명예를 가졌어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처럼 보여도 얼굴에 옹졸함이라고 써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나라는 사람을 100%로 환산했을 때 근심과 걱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면 여유가 들어갈 틈은 그만큼 줄어든다.


남 보기 좋으라고 여유있는 사람이 되고픈 건 아니다. 내가 여유를 가져야 내 삶도 여유롭게 채워질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삶에 여유 통장 하나 만들어놓고 차곡차곡 여유 적금을 채워넣는다. 어떤 행동을 해야 내가 더 여유로워질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내 삶을 더 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 선택이 긍정적이었다면, 행동이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일으킨다면 여유 통장에 기록한다. 어떤 날은 0원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날은 -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가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불평을 하는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으며, 인상을 쓰는 날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여유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과 삶의 여유를 지키고 싶다는 바람을 머릿 속에 심어 놓는다면 내 스스로 여유를 생산해내지 못할 때 여유 통장에서 여유를 꺼내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사는 것으로 남들에게도 여유로움을 전염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것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이다. 그래서 난 내 삶의 여유를 지키고 싶다. 오늘도 여유 통장에 1,000원을 적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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