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공간

2025. 11. 12. 수

by 개미철학가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시선을 멈추어 보는 것, 최근 내가 공들이고 있는 하루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어제 저녁은 유난히 긴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보이지만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거리의 불빛들이 점점 사라져 갑니다. 서늘하고도 아득한 허공.

거리에 낡은 가로등 하나. 그 기둥의 시작점.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 틈 사이로 홀로 피어난 들꽃처럼.

일과를 마친 나는 매일 이 공간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나만 홀로 남은 이 공간.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아득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나와 우리의 지난 시간은 더 쓸쓸하게 보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던 온기 가득한 낯선이의 대화 소리마저 점점 멀어질때쯤 눈물이 올망하게 들어찹니다.


공간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어 외투 하나를 꺼내 단단하게 여며입고 거리를 나섰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아픈 일은 여전히 아프고 견디기 힘들 일은 여전히 있습니다.

올망하게 맺혀있던 눈물은 달빛에 밝게 빛나고

나는 부끄러움에 얼른 손등으로 지워냅니다.


파랗게 질려버린 시린 내 시간과 잃어버린 내 뒷모습.

지울 수 없을까요. 떨어진 낙엽도 차가운 바람이 몰고 가버렸는데,

왜 아직도 지난 그리움은 이 계절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요.


벌써 십일월인데 나는 여태껏

오월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기억에만 귀를 기울이며 지나간 소리들을 명심하느라 조용히 오래오래 내 귀는 멀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이르게 찾아온 일들은 한결같이 늦은 일이 되고 맙니다.

몸을 움직여 녹초가 되고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반쯤 남긴 물컵 속으로 아침 빛이 듭니다. 멀리서 온 것과 더 멀리 떠나야 할 것들이 한데 뒤섞입니다. 매일 맞는 아침인데 오늘은 왜 더 설게 느껴졌을까요.


평일 아침에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노선의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그 안에 들어찬 사연들은 매일 다른 사연들을 들려주는 듯 합니다. 12개의 노선을 지나 향하는 곳은 도심 속 작은 목공방입니다.


사각사각 나무를 다듬다보면 고민과 아픔, 많은 생각들은

흩날리는 톱밥처럼 밀려가고 번잡했던 머릿속은 단순해집니다.

풀풀 피어오르는 나무 냄새가 가만히 마음을 치유합니다.


동일한 규격으로 잘려진 부재들은 다양한 문양의 결을 만들어내며 다양한 개성을 띄고 있습니다.

동일성과 개성의 공존.

오랜세월 자라며 띠게 된 세로방향의 결대로 붙은

나무들끼리는

단단하게 굳어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마치 각기 달리 살아온 두 사람의 결이 인연이라는 접착제로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결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칫 엇결로 대패질을 했다가는 어딘가에서 무리를 받고, 결국 전체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목공방에서 제일 처음 배운 것은 나무를 이기려들지 않은 것입니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나무에게 배웁니다.


목공방을 다닌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갑니다. 처음으로 목공방을 들어서던 날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게 좋습니다. 처음이 처음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나가는게 좋습니다. 나무를 만지다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분명 오전에 시계를 본 것 같은데 어느새 오후에 훌쩍 도착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공간에 있습니다. 사람의 온기가 가득합니다.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혼자가 아닌 지금에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