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28. 수
책상에 앉아 쓰여지는 대로 쓰고 되도록 지우지 않습니다. 지우지 않고 쓰기로 한 결심으로 아직 글이 되지 못한 말이 어깨 위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너무 많은 말이 모여듭니다. 어깨 위의 말들이 조용히 낙하합니다. 종이 위에 안착하자마자 머릿 속을 어지럽히던 말들이 사라집니다. 한결 가벼워 집니다.
그렇게 사라지는 일에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봅니다. 그 역시도 삶의 의지일 수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상기하며.
창 앞에 고개를 대자 새하얀 입김이.
휙휙 나를 지나쳐가는 것들이 내 입김에 흐려질 때 차가운 창을 손바닥으로 닦아내자 불행히도 한치 앞이 다시 보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무럭무럭 자라는 지 슬픔 뒤에 더 기다란 슬픔이 오는게 느껴집니다. 단추를 채우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이 따뜻해지는 행위들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해봅니다.
지난 주엔 부산에 소재한 오래된 납골당을 다녀 왔습니다. 00납골당 가-000번 자리에 그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상태를 ’있다’고 해야할 지 확신은 서지 않았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언제나 세상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 기억속에 있었던 기억보다 없었던 기억이 더 깁니다. 앞으로도 그 ‘없음’의 시간은 더 길어지겠죠. 이미 이해해버린 세계는 떠나와야 다음 걸음을 옮길 텐데, 나는 그 ‘없음’을 아직 이해하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돈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지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되돌아가서 무엇이든 바꿔보고 싶을까. 아니면 그 기억 다 안고 지금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택할지..
기본적으로 ‘그리움’이라는 것은 그 뉘앙스가 참 복잡합니다. 슬프지만 동시에 행복하고, 돌아가고 싶은 만큼 그립지만 그렇다고 그때로 정말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고. 돈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해도 역시, 그냥 현재를 담담히 살아갈 거라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현실이 될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살아가며, 하루하루 사라지는 일에 정성을 다합니다. 그것도 힘찬 삶의 의지일 수 있다는 것을 또렷히 상기하면서.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그림‘이라는 명사는 생긴 모양이 많이 닮아있습니다. 지난 장면들을 떠올리며 그린 흑백의 초상화 한장을 그곳에 올려두고 왔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결국 혼자 해야해서 별 수 없이 외로워지곤 합니다.
발제문을 받고 소비의 목록을 주욱 써내려가보니 의식주 외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책, 노트, 펜을 구매하는 지출이었습니다. 그 물건들이 전체 소비에서 20%이상의 지분을 갖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을 구매할 때에는 본능만 있습니다.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 책장에는 더이상 자리가 없어 바닥에 쌓아두기 시작한 책들이 생활에 잔잔한 불편을 준다는 생각, 그 외에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책을 구매할 때는 하지 않습니다. 아니, 생각은 하는데 다만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법륜 스님께서 즉문즉설을 통해 청중에게 이야기 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의 본질은 변하는 겁니다.”
오늘 마음이 향한 선택지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가장 나다운 소비를 하는 것과 아프고 아픈 시간을 수정하려하기 보다 그 모든 기억을, 경험을 그대로 안고 담담하게 걸어가자라고 마음 먹었지만. 오늘을 지나 내일을 살다보면 제 마음 역시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