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11. 수
계절엔 각기 향기가 있습니다.
내 그리움을 못 이겨 봄이 돌아왔습니다.
혼자 서점에 자주 갑니다.
볼일이 있어 지나가는 길에 서점을 들리는 것이 아니라 서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걷습니다. 예전에 몇몇 도시엔 낡은 헌책방거리가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고서점에 들러 처음 집어든 낡은 시집에 이런 시구를 봅니다.
[한계에 부딪힌다면 한개만 더 해봐.]
[그럼 너의 한계가 늘어날지도 몰라.]
타인에게 요구하면 가혹해지고 나에게 요구하면 치열해지는 글자. 더. 한동안 그 시구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해가 지면 책도 그늘이 되서 오래 머물지는 못합니다.
일상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나는 혼자 있을 때면 나쁜 생각들을 떠올리고는 하는데, 마흔이 넘고서는 내 생활이 간결해진 덕분인지 나쁜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나는 나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입니다.
살며 얻은 찌꺼기 같은 감정. 혼자서 언젠가는 질렀을 비명은 사람의 말로 나누어버립니다. 그렇게 나는 무럭무럭 늙어갑니다.
벽너머 홀로 남겨진 고양이가 지나갑니다. 그 조용한 발걸음을 눈여겨 보는 이 하나 없습니다. 이윽고 그 고요한 침묵을 깨는 한 늙은 사내가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길을 지납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늙은 사내는 깊숙한 곳까지 긁어 그 길 한복판에 냅다 침을 뱉습니다.
침을 매일 삼키며 살면서도 뱉어지면 더러워 보입니다.
가로 600, 세로 1200 네모난 프레임의 창 너머로 늙은 사내와 고양이가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어둑한 골목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저녁 한 때가 저물어 갑니다.
자신의 뒷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타인에게 포착된 시선을 통해서만 자신의 뒷모습을 확인할 뿐입니다. 누군가는 내 뒷모습에서 때로는 쓸쓸함을, 때로는 차가움을, 때로는 경쾌함을 읽어 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등을 가졌다는 것.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조금 두렵고 외로워집니다.
책장에 진열된 낡은 책 한권을 펼쳐듭니다.
[첫 잠에서 깨어나 뜨거운 차를 만들면, ]
[다음 잠에서 깨어날 때 슬픔이 누그러지리라.’]
다음 페이지에서 ‘포팅게일의 늙은 로빈’이라는 스코틀랜드 노래의 한 구절이라고 소개합니다.
스스로 준비한 온기로 덜 슬퍼질 수 있다는 게. 또 어느 밤에 누군가 그런 생각을 했고 노랫말로 또 글로 남겨 두었다는 게. 그리고 ‘누그러지리라...’ 하는 그 부분이 좋았습니다.
어느덧 불안과 외로움이 가신 것 같습니다. 혼자가 된 밤 또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 찾아 오겠지만, 그 외로움에, 고독에 몸을 떨고 눈물을 흘리게 되더라도. 덤덤하게 ‘이것이 혼자라는 것이구나.’ 생각하겠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글로 쓰고, 노랫말처럼 마음속으로나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고 눈을 감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작게 불러봅니다.
음악에 맞춘 노래는 멋이 나고, 음악에 맞추지 않은 노래에는 웃음이 나고, 음악도 없이 부르는 노래는 어쩐지 눈물이 납니다.
오래전 친구의 물음이 생각납니다.
’너도 외로울 때가 있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외롭지.‘
친구가 다시 묻습니다.
’그럼 외롭지 않을 때만 사람을 만나는 거야?‘
‘아니, 그냥 외로운 채로 만나는 거지.’
왜 나는 외로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음마저 노력해야 하는지, 깊어질수록 마음만 바스라지는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도, 덤덤하게 ‘이것이 혼자라는 것이구나’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