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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May 06. 2020

하이틴 영화의 주인공처럼

지금이 아니면 언제!

엄마랑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갔을 때였다. 10월 늦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두브로브니크의 태양은 뜨거웠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수영을 못하던 나와 엄마는 완만한 해변을 찾아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는 못해도 꼭 그 에메랄드 빛 바다에 몸을 담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첨벙첨벙 아이들이 노는 수준으로만 물장난을 치고 시원한 얼음 칵테일을 마시던 엄마 곁으로 돌아왔다.


엄마! 를 부르던 내 목소리에 옆 자리에 앉은 분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 한국 분!" 가족 여행을 오셨다던 중년의 부부. 내 또래의 딸은 이미 혼자 바다에 들어가 놀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들끼리의 대화가 이어졌다.


"우린 무서운데 어쩜 애들은 이렇게 대범하게 잘 들어가나 몰라!" "그러니까요. 나이 먹으면 겁만 많아진다니까요~"


"어머니! 지금 아니면 언제 아드리아 해에 몸을 담가보겠어요!" 웃으며 건넨 내 말에 사모님이 순간 무언가 깨달은 눈빛을 하셨다. "맞아, 맞는 말이네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그러더니 입고 있던 티셔츠를 훌렁 벗어던지고 "나도 해볼게요!" 하고 바다로 뛰어가셨다. 같이 바다에 들어가자던 딸의 말에 혹시 몰라 안에 수영복을 챙겨 입지만 차마 용기가 안 나셨단다. 딸도 분명 나와 같은 말을 여러 번 했을 거다. 하지만 원래 알고 있는 것과 깨닫는 순간은 다르지 않은가.


어머님들 눈에는 겁 없는 딸들이 멋있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순간 바다로 뛰어드는 사모님이야말로 하이틴 영화의 주인공 같았다. 잠시 후 흠뻑 젖은 채 환한 미소로 나오는 사모님을 바라보던 자상한 눈빛의 남편까지 포함해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ps. 심지어 수영 엄청 잘하셨다. 그 실력으로 안 들어갔으면 아까워서 어쩔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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