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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Oct 18. 2020

역시 나들이 갈 땐 목장갑이죠.

아빠는 잘생기셨다.


젊으셨을 때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한때 배우시냐, 아니라 하면 왜 배우 안 하셨냐는 질문을 꽤나 받으셨다고 했다(다른 분께 들은 거니 정확할 거다). 그런데 문제는 도통 관리의 중요성을 못 느끼신다는 점. 정확히 말하자면 관리하는 행동 자체를 싫어하신다.


선크림은커녕 아무리 가벼운 질감의 로션도 질색팔색을 하신다. 엄마가 억지로 바른 수분크림은 스리슬쩍 화장실에 가서 씻어버리시기 일쑤다. '지금 세수하고 왔지!'라고 따지면 '아니? 그냥 손 씻고 온 거야~' 라며 능청을 떠신다. 피부 관리 기기를 가까이 가져다만 대도 펄쩍 뛰시며 홍길동 마냥 순식간에 도망가신다. 피부를 위해 좀만 참으시라고 하면 '그냥 피부를 버릴게'라고 말씀하신다. 하, 답답하면 얼마나 답답하다고! 싶지만 당신께서는 가면 쓴 느낌이라고 하니 어지간히 싫으신가 보다.


피부만큼 무디신 게 패션이다. 탄수화물과 나트륨의 힘으로 동산 같은 배가 완성된 지금도 내 눈엔 여전히 멋있으시지만 때때로 아빠의 패션은 내 고개도 절레절레 젓게 만든다. '아잇! 왜 이걸 입었어!' 라며 다른 옷을 챙겨주시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 집에서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한동안 나가지 못해 좀이 쑤시던 어느 날 저녁. 다 같이 바람 좀 쐬고 오자고 해서 이왕 나가는 거 완벽한 외출이 되기 위해 열심히 목적지를 찾았다. 그렇게 결정한 곳은 구릿빛 조명이 별처럼 뿌려진 분위기 좋은 어느 공원.  주변을 빙 둘러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을 만큼 넓은 곳이었다. 렁이는 물가 옆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분위기에 젖어보기로 했다.


엄마는 쌀쌀한 밤바람을 대비해 네이비 색 트렌치코트에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하늘색 스카프를 두르셨다. 예쁘다 예뻐. 편하게 대충 바람막이를 걸쳤던 나도 엄마를 보고 트렌치코트로 바꿔 입어 커플룩을 완성했다. 워낙 타고난 핏이 좋은 오빠는 깔끔한 흰색 티 위에 멋스러운 블랙 항공점퍼를 걸쳤다.


아빠는... 아빠는 항상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답게 벌써 밖에 나가 엘리베이터를 잡고 계신다.


그리고 마주친 아빠의 나들이룩.


역시 추운 날 나들이 갈 때는 목장갑이죠.
새빨간 것도 애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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