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집부터도 그랬다. 모험심 강한 오빠는 항상 새로운 음식을 갈구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먹어봐야지. 또 언제 먹어보겠어!" 하지만 엄마는 조금이라도 낯설다 싶으면 식기를 든 손에서부터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그럼 중간에 낀 나는 조용히 엄마의 미간을 살피다가 메뉴판을 들어 무난한 음식을 하나 더 주문하는 것이다.
아일랜드로 혼자 여행을 가서 가장 편했던 점 중에 하나는 '음식'이었다. 원체 까다롭지 않은 입맛인 데다가 혼자 다니니 더더욱 음식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렌터카를 끌고 다녔던 난, 사실 맛있는 음식보다도 맛있는 맥주 한잔이 더 간절했다.
내가 묵었던 숙박 시설 요금에는 대부분 이미 조식 값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아침을 든든히 먹는다. 그리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쌓여있는 과일 중에 몇 개를 비상용으로 챙긴다. 제공되는 과일은 주로 사과나 바나나였다. 그렇게 걷다가 운전을 하고 또 걷고 나서 허기질 즈음 아무 데나 대충 앉아 챙겨 온 과일을 먹는다. 바위 산 정상이기도 했고, 비 내리는 날 차 안이기도, 바닷가이기도, 아주 큰 나무 아래이기도 했다.
아일랜드 파워스코트에서
유럽 사과는 왜 잼으로 만들어 먹는지 단번에 알 정도로 푸석푸석하고 당도도 낮다. 참 맛이 없는데도 별거 아닌 그 순간이 그렇게 좋았다.
문득 옛날에 본 영화 <Into the Wild>에서 주인공이 사과 먹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의 사과 역시 아마 그다지 맛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고로 맛있는 사과였고 그 순간에는 내게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