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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Apr 18. 2020

여기 손톱깎이 있어요?

난 손톱이 자라는 꼴을 못 본다. 내 손톱에서 자유 모서리, 즉 흰 부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인다. 잘 관리되었을 경우 남의 손톱은 길어도 괜찮은 걸 보니 난 내 손톱의 위생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손 거스러미가 자주 일어나는 엄마는 손톱깎이가 외출 필수품이다. 아일랜드로 떠나기 위한 짐을 싸던 날은 엄마의 손톱깎이가 공항에서 빼앗기는 걸 몇 번 본 후였다. '이건 그냥 가서 사야겠다.' 이 정도 생활용품이야 아무 마켓을 가도 쉽게 구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예상외로 손톱깎이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Nail clipper'는 없고 손톱을 갈아서 정리하는 'Nail file'만 많은 것이다.


다음 가게엔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여행을 이어나간지 약 2주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사람의 손톱은 1개월에 평균 3mm 정도 자란다고 하던데 기분 탓인가. 내 손톱은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 것 같은지. 운전을 할 때도 일기를 쓸 때도 손을 씻을 때도 손톱만 확대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갈아내는 게 손톱 건강에도 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이 참에 네일 파일을 한번 써보자.' 그렇게 정리한 손톱은 물론 손톱깎이를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매끄럽고 부드러웠지만 속 시원함이 부족했다. 임시방편으로 네일 파일을 쓰던 와중 길을 가다가 대형마트를 발견했다. 여긴 왠지 있을 것 같아!


날도 무디고 고정력도 없어 사방팔방 잔해 튀게 만드는 그 손톱깎이가 어찌나 반갑고 예뻐 보이던지. 마트 근처 바닷가 구석진 곳에 숨어버리려던 넓은 포장 종이를 깔아놓고 손톱을 깎았다.


잘 뭉쳐서 버려야지 하는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 손톱들이 후루룩 날아가버렸다. 어어어 하는 것도 잠시, 그 후련함이란!



P.S. 종이는 따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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