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고난과 맑은 하늘

#1-2

by 개미애비

꼬박 하룻밤이 지났다. 전날 응급실의 잔상이 채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나는 간단히 씻고, 아내가 나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저께 빠트린 짐을 양손 가득 들고서는 발로 겨우 병실 문을 옆으로 밀어서 열었다. 먼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얼추 중학년 정도로 보였다.(나는 초등학생 나이를 잘 맞힌다.) 그 아이의 옆 병상에는 인상 좋은 노인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랬다. 병실은 어린이 전용 병실이 아니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창가 병상의 노인이 어린이일 리는 없었다. 당시 그 병원에는 어린이 전용 병실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지금도 없을 것이리라. 초등학생과 노인 그리고 5개월이 조금 지난 우리 아들. 문득 험난한 입원 생활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간단히 아내의 안부를 챙기고 짐을 풀었다. 아내는 밤새 잠을 못 잤는지 눈만 겨우 뜨고 있었다. 별안간 간호사가 커튼을 휙 열고 우리 자리로 밀고 들어왔다. 간호사는 아들에게 수액을 달기 위해 손이나 발에 라인이라는 것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정맥 혈관에 주삿바늘을 찌르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간호사를 따라 주사실로 갔다. 주사실은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작았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나도 따라 올라앉았다. IV 라인 담당으로 보이는 간호사가 아이의 손과 발을 이리저리 더듬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다른 간호사들이 하나둘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결국 간호사 5명 정도가 아이 하나에 붙어서 짧고 통통한 아이의 팔다리에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수차례 찔러 넣었다. 결과는 모조리 실패였다. 아이는 자지러졌다. 아이의 작은 입에서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먼저 나서서 아이의 왼팔과 오른팔을 각각 한 번씩, 총 두 번을 찌른 간호사가 벽 쪽으로 한발 물러서며 내게 말했다.


“아이가 어려서 라인 잡기가 쉽지 않네요.”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연이은 실패의 원인이 오로지 내 아이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간호사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었다. 아무래도 아이가 어릴수록 혈관이 더 얇은 것은 상식적으로도 분명하니. 아이가 울면 혈관이 숨는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었다. 그러나 하도 울어 대서 얼굴이 홍당무가 된 아이를 보고도, 괜찮으니 마음껏 쑤셔보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 난제를 맡아주기를 바랐다.


몇십 분 소동 끝에 경력이 오래된 인상의 간호사가 올라와서 발등에 겨우 라인을 잡았다. 아이의 팔다리 곳곳에 하얀 솜과 종이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실패의 흔적들이었다. 아이는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아이도, 나도, 주사실을 가득 채운 간호사들도 모두 땀범벅이 되었다. 이제 입원 생활을 막 시작했는데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간호사들은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하나뿐인 소중한 아이를 맡겨 놓은 나로서는 아무래도 아쉬움을 삼키기 어려웠다. 지방 의료가 열악하다는 것을 몸소 실감했다. 사실 인력도 인력이지만, 장비가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 병상이 500개가 넘는 종합병원인데, 주사실에 혈관 투영기 한 대가 없었다. 혈관 투영기는 피부 표면에 적외선을 쏘아 실시간으로 혈관을 투영해 주는 의료 기기인데, 특히 어린아이나 노약자처럼 혈관이 잘 보이지 않는 환자의 혈관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장비였다.


간호사들은 오직 손가락 끝으로만 아이의 팔다리를 꾹꾹 눌러가며 바늘을 찌를 자리를 찾아 헤맸다. 불행하게도 그 감각은 정확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소아 혈관을 잡아 본 경험도 많지 않아 보였다.


반면 대구의 상급종합병원에는 병동마다 혈관 투영기가 한두 대씩은 굴러다녔다. 혹시 소박한 외형에 비해 많이 비싼 장비인가 싶어 찾아보니, 종합병원 정도씩이나 되는 곳이 감당하지 못할 가격도 아니었다. 마음먹으면 우리 집에도 하나 들여다 놓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놈의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할 액수기는 했다.


내가 사는 곳은 도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인데도 상급종합병원이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다 서울로 몰려가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뉴스나 신문에서만 접하던 사회 문제를 현실에서 겪게 되니 이 도시가 조금은 미워졌다. 항상 자랑스럽기만 하던 나의 ‘도시’였다.


힘겨운 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아이는 낯선 병실에서 밤낮 구분 없이 종일 울었다. 병실을 같이 쓰는 환자들과 보호자들 눈치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 입원 기간 중 태반은 아이를 안고 복도로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중 누군가의 눈총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같은 병실에 속한 사람들이 힘들긴 했을 것이다. 보호자인 나도 솔직히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누구든 어린 시절을 겪었을 터인데. 이기적이지만, 눈총을 쏘던 여자가 야박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도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었던가? 여자의 아이도 우리 아이처럼 종일 울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었다. 아이가 울고 싶어서 우는 것도 아닐 텐데! 병원 어디에서도 아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는 그날들이 지옥 같다고 생각했다. 얼른 퇴원하고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는 사이 검사의 가짓수는 계속 늘었다. 검사 하나를 끝내면 또 하나를 더 해보자고 하고, 그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의 검사가 추가되는 식이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텐데. 검사 결과의 수치들이 허용 기준치를 크게 웃도니까 계속 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했을 것이리라. 그때는 전혀 몰랐다. 하루 종일 울어 대는 아이를 돌보는 데 온 신경을 할애할 뿐이었다. 그렇게 또 하루를 병원에서 허비했다.


“진료실로 내려가서 진료 보시면 됩니다.”


간호사가 무신경한 표정으로 커튼을 열어젖히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발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몸을 일으켰다.(전날 아내의 몰골이 왜 그런 꼴이었는지 단번에 납득한 순간이었다.)


‘역시 요로 감염인가 보네.나는 지레짐작했다.


간호사가 너무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해서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요로 감염이 뭐라고 이렇게 오래 병원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지. 그리 중한 병도 아니라고 했는데. 극도의 피로감이 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이가 너무 울어서 밤사이 잠을 거의 못 자고 밤을 꼴딱 새운 터였다.


나는 다음 주에 개학을 하면 내가 쳐내야 할 업무와 집으로 돌아가 누릴 평범한 일상을 떠올리며 아이를 안아 올렸다. 가벼운 긴장감과 퇴원할 것이라는 들뜬 기분이 한데 뒤섞였다. 느지막하게 복도로 걸어 나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통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날씨도 우리의 퇴원을 축하하는듯했다.


그리고 약 십 분 뒤, 내 아들은 소아암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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