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만드는 과정

자연스러운 성장

by 김앤트

인위적인 방법으로 만들 수 없는 영역들이 있다.


여유가 없을 때는 머리도 회전이 잘되지 않는다. 머리가 회전되지 않으면 그 경직이 행동으로 모두 드러나면서 초조해 보인다. 악순환으로 공간의 분위기가 어색해지며 생각할, 행동할 여유도 다 사라져 버린다.

꼭 그림 장르가 아니어도 모든 분야와 상황에서 항상 강조하는 얘기들이 있다. '여유를 가져라.' '여유가 있어야 매력적이다.' '성공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등등 여유에 관한 조언들이다.

여유가 분명 중요하지만, 인위적으로 절대 만들 수 없는 영역이다. '여유를 가져야지' '여유 있게 행동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여유가 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만들어 내면 티가 나면서 모두가 다 알게 되고 오히려 초조함만 부각된다.


여유를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리면서도 여유가 없으면 다음 단계를 생각 못 하며 그리던 목적도 잊어버리게 된다. 현재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판단 안 되는 상황이 오게 되는 이유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연산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손 가는 대로 그냥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멍하게 그리게 되는 상태가 된다.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는데 그리긴 해야 하니, 손이 먼저 가는 경우들을 자주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손을 잠깐 멈추고 무엇을 그리고 있었는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항상 강조한다.


리프레쉬는 다음 단계에 대한 구상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입시 준비할 때를 돌이켜 보면 시험장이나 대회장을 다닐 때마다 환경이 계속 바뀌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 안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에 대한 초조함을 많이 느꼈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상황에 들어가면 항상 긴장되고 여유가 없었다. 1~2시간 남았을 때 시험장을 배회하면서 돌아다니는 경우들이 있다. 나 역시 한두 번 정도 그런 적이 있는데, 여유가 있어서 했던 행동이 아니라 사실상 반포기 상태에 가까웠다. 객관적인 시야를 갖기 위해서 잠깐 환기하는 목적으로 둘러보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줄여 그림에 집중하고 완성도를 올리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심리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의 시간을 이렇게 써도 자신이 있다는 허세가 조금 담겨있고 여유가 있는 척을 했다. 역시나 나중에 시간이 모자라서 '돌아다니지 말걸' '5분만 더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결과도 안 좋았던 경험이 있다.


IMG_20150307_183802.jpg 김앤트, 성장, 27.2x27.2cm, 도화지에 연필, 2010


누구도 어떤 상황이든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마음이 강할수록, 의식하며 허세로 채우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림은 시각적으로 정직하게 보여서 어차피 허세를 부리기 힘들고, 그런 특성이 있기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다.

자연스럽게 여유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연기를 잘하면 처세술을 발휘해 여유 있는 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이 들어가는 예술적인 부분들에서 여유가 있으려면 오로지 경험치밖에 없다.

본업을 진행할 때는 여유가 있더라도 안 해본 장르로 넘어가면, 상대적으로 경험치가 부족해서 굉장히 초조해진다. 예를 들어서 춤을 춘다. 스케이트를 탄다. 클라이밍을 한다. 프라모델을 만든다. 등등 안 해본 것을 어떻게 여유 있게 할 수 있을까? 안 해본 것은 여유가 생길 수가 없다. 생활 속에서도 똑같다. 매번 가는 식당은 익숙하기에 메뉴를 고르기 편하다. 호프집이나 바 같은 곳은 경험이 적어 메뉴가 예측되지 않아, 가기도 전에 긴장이 된다. 여유가 없으니, 주문할 때도 비교적 뻣뻣하고 쑥스럽게 얘기하게 된다.


한 장르에서가 아닌 삶 전체의 경험치를 믿어보자.


그림은 오랫동안 그려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경험도 많이 쌓여 익숙하고 편안해서 자연스럽다. 그릴 때 이것저것 생각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며 그것이 여유로 연결된다.

다른 일을 하다가 그림을 그리러 오신 분들은 경험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여유가 생기기 힘들다. 개인작을 그릴 때는 많은 과정을 하나로 통합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알려드릴 때는 과정을 세부적으로 하나씩 나눠서 순서를 정해 놓았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하나씩 나눠놨던 과정이 조금씩 병합해 나가며,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이 연습들로 그림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하면, 여유가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정리

여유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경험치로 만들어 낸 여력으로 생긴 결과물이다.

여유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폭넓게 생각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전체 룰을 파악하여 대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도하며 그릴 수 있게 된다.


여유는 단기간 목표가 아닌, 좋은 과정을 익혀가며 얻게 되는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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