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도구마스터리

by 김앤트

도구를 가리지 않고 본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장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무협에서 보면 초절정 고수가 나뭇가지 하나 들고, 검을 든 수백 명과 싸워서 이기는 장면들이 자주 묘사된다.

나뭇가지로 마구 휘둘러도 서려 있는 힘과 풍압으로 검, 창, 도, 둔기들을 모두 부러뜨린다. 실제로 이런 판타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일정 이상의 경지로 올라섰을 때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상관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대로 풀이하는 이 해석은 부족하다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무협을 좋아하다 보니 판타지적인 내용들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때가 있다.

무협에서 최고 레벨로 올라가면 생각만으로 대상을 벨 수 있는 심검의 단계가 있다. 도구 없이 생각만으로 실행되는 경지가 있는 것을 보고, 실력이 올라갈수록 도구에 의존성이 낮아진다는 해석을 했다.

꼭 미술용 4B연필을 사용해야 할까? 라는 생각에, 평소 필기하는 문구용 연필이나 돌아다니는 연필 등을 집히는 대로 사용했다. 종이도 두꺼운 켄트지를 고수하지 않고 갱지, A4용지, 재생지 등 보이는 대로 사용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재료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단순한 생각의 접근이었다.

간과했던 것은 재료의 역사다. 재료가 개발되고 향상되기까지의 연구 과정, 실험, 다양한 경험치는 목적에 최대한 적합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당시에 실력도 좋지 않았지만, 그런 요소들을 배제하며 실력에만 의존해 그림에 접근했을 때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

필기용 연필이나 샤프 같은 것들은 심의 강도가 단단하다. A4용지, 갱지, 재생지는 굉장히 얇다. 그러다 보니 명암과 표현이 충분히 적용되기 전에 재료가 견디지 못하고 손상되는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적응하고 계속 다루다 보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밀어붙였다.

장르를 바꿔 수채화를 할 때도, 수채화 전용지가 아닌 켄트지부터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붓을 처음 사용하면서도 꼭 정해진 대로 다룰 필요 없다는 생각에 연필로 소묘하듯이 중첩하며 사용했다.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하는 만류귀종의 법칙과,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 오류로 시야가 좁아지며 근거 없이 밀어붙인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해석과 접근을 하니 적용도 안 될뿐더러, 원리에서 크게 벗어나 표현의 차별성만 추구하게 되는 경험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식했고, 그 기간이 너무 길었다.


김현진 2018740111_4디지털페인팅과정.jpg 김앤트, 생성, 3400x3500 PX, digitizer, 2018


운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상을 감안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안정성 기반 동작들로 실행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방법 없이 무조건 무게를 늘리고 횟수를 많이 반복하다 보면, 연골이 사라지고 디스크 터지는 등 큰 부상이 발생한다.

노래에 적용해 봐도 체계적인 보컬 훈련이 아닌, 폭포를 맞으며 소리를 내거나 노래방에서 될 때까지 부르다가 성대 결절이 생기기 십상이다.

이론상 고수가 될수록 도구와 방식의 일정 틀에서 벗어나, 어떻게 실행하던 모두 적용되고 통용되며 마음먹은 대로 결과물이 나와야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게임을 해보면 구마스터리가 따로 나누어져 있으며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으로 특정 장르에서 특정 재료를 다루기 위해 원리와 속성을 파악한 상태에서 진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필은 점토와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 비율에 따라 원하는 방향에 최적화된 표현 방식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지우개 같은 경우에는 플라스틱 비율을 감안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할 수 있다.

물감은 메이커와 색마다 안료 입자가 달라서 조색 방법과 발림, 내광성에 차이가 있다. 털의 종류와 모양새에 따라 용도와 사용 방법이 다르다.

종이는 켄트지, 아르쉬지, 파브리아노, 몽발 등 내구도와 질감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

색연필은 크게 성과 유성으로 나누어지고, 물감과 마찬가지로 내광성에 대한 등급이 세분화되어 있다.


이유 없이 분류되어 있는 디테일은 없다.


재료에 대한 개념 정리와 분리 없이 표현력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점이 명확하다. 물론 기본 실력이 높을수록 어떤 재료를 다뤄도 일정치 이상은 나올 수 있다. 샤프로도 소묘하고 드로잉 할 수 있지만 4B연필을 쓸 때보다 훨씬 불편하고 많은 제약이 생긴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장인이 될수록 구 마스터리도 같이 높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도구의 분석 능력이나 활용 능력을 따로 신경 써서 분석하며 같이 올려줘야 한다. 신경 쓰지 않으면 일정 레벨 이상부터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도구를 하나씩 분석해 보며, 그림에 알맞은 특성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한 방향성이 꼭 필요하다. 이런 부분을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점을 끊어주면 도구 활용 능력이 올라가게 된다.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게 되어 경험 부족으로 버벅거리되었을 때 '장인은 도구 같은 것을 신경 쓰는 게 아니야.' '어떤 도구로도 잘 그려야지.' 이런 식의 얘기를 들을 때도 있다.

어떤 장인이 와도 평소 즐겨 쓰는 주 도구가 아니면 불편함을 느끼고 버벅거릴 수밖에 없다. 결과물이 일반적인 수준보다 높게 나와도 새로운 재료에 대한 경험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수월하지 않다.


명언, 격언, 속담, 사자성어 등 잘못 해석해 방향성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결론나뭇가지로 싸우면 제대로 된 무기로 싸울 때보다, 활용 능력이 떨어지고 이길 수 있는 상황도 질 수 있다. 도구마스터리에 대한 개념 설정이 필수다.

항상 재료를 최적화하여 세팅해 놓고 연습하자.


도구 마스터리는 정리된 개념이며 풀어가는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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