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순위

궤도

by 김앤트

나는 세상에서 몇 번째로 잘 그리는 사람일까?


이 주제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술은 경쟁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순위를 따지는 행위가 통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르 불문. 전공을 한 경우 자신이 일반인보다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심리의 기저를 파악해 보면 예술에도 격차는 존재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술과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우열을 가려야 할까?

그것은 아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을 것이고 그 기준들에 대해 한번 정리해 보겠다.


나는 그림을 시작할 때 이왕 시작한 거 제일 잘 그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가 보니 잘 그린다는 기준도 모호하고, 잘 그려야 한다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들을 보게 되었다. 이 부분에 정말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잘 그린다는 것'은 그림을 시작했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을 해봤을 부분이다. 그리고 무언가 잘한다는 것의 시작점은 상대성으로 출발하기에 누군가와 비교를 해본 경험도 많을 것이다.

꼭 비교가 아니어도 '저 사람 되게 잘 그린다.' '어떻게 저렇게 잘 그릴 수 있을까?' 부러움, 경외감, 동경, 질투 등의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비교하는 행위는 순리적인 일이지만 예술에서는 금기시하는 느낌이 있다. 예술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느낌이나 해석을 나타내는 일이라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비교가 적어지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일이 생긴다. 비교를 통해 여러 가지 경험을 더 빨리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진 경우에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200224해골.jpg 김앤트, 산화, 23.2x28.2cm, Charcoal 25 min, 2020


게임, 스포츠, 경연, 시험 등 항상 일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림의 기본 속성은, 대회가 아닌 이상 우열을 객관적으로 가리지 않는다. 특정 수준으로 올라가면 취향으로 많이 갈리기 때문이다. 만화, 일러스트, 수채화, 유화, 소묘 등 선호하는 장르, 재료, 스타일. 많은 요소를 기준으로 나뉜다.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 더 감명 깊은 작품을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내가 좋다고 느끼는 미술이 최고다.

이런 전제 안에서 잘 그린다는 기준을 정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소리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정의는 아직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추가로 설명해 보겠다.

나만이 알 수 있다는 뜻은 어떤 그림을 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못 하는 부분을 파악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장점과 단점으로 치환해 적용해 보자. 보통은 나보다 잘 그린다고 느껴졌을 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장점 비율에서 크게 밀릴 때가 많다. '저 사람이 나보다 장점이 훨씬 많구나.' '잘하는 부분이 더 확실히 정리되어 있구나.' 분명히 나도 잘하는 부분은 있겠지만, 비교적 장. 단점 비율에서 밀리는 경우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여기서 좌절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장점들을 조금씩 배워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장. 단점 비율이 역전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주제는 사람들과 경쟁하여 이기자는 취지가 아니고, 자신의 그림을 발전시킬 방법을 다룬다.

장. 단점의 비율 비교로 접근하다 보면 과정에서 오는 필연적 분석에 의해, 그림에 대한 이해도가 계속 높아지게 된다. 결국 후반부로 갈수록 표현력이 아니라 이해도를 통해 잘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조금 더 추가해 보면 장. 단점을 알기 위해서 관찰해야 하고, 관찰이 객관적으로 진행될수록 그림 이해도는 계속 늘어난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겸손해지는데, 세상에는 나보다 더 큰 장점을 가진 경우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장점들을 하나씩 배워나가다 보면 실력은 계속 늘어나게 되고, 누구와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 실력을 분명히 가질 수 있다. 이런 체계와 주관이 뚜렷하다면, 남들의 평가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상태로 넘어가게 된다. 나의 그림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궤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비교는 궤도에 올라가는 과정이다.


단순 비교로 진행되면 나의 실력이나 재능 등을 의심하게 되고, 자존감 깎이는 경우가 매우 많이 발생한다.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며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 그림에 적용해 궤도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둔다.

단기간이 아닌 장기간을 두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하루에 하나만 채워도 정말 빠른 것이며, 이런 과정을 평생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제일 잘 그리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꾸준히 열심히 해보자는 취지며, 상대성과 절대성을 다룬 이전 글의 연장선이다.

세상에서 제일 잘 그리고 싶었고 이해도를 늘려나가다 보니 궤도를 발견했다. 궤도에 들어서니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비교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며 내면의 비교를 통한 성장이 가능했다. 세상에서 제일이 아닌 어제보다 나은 나를 목표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 10년 넘게 걸렸다.


그리고 그 과정은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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