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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앤트 Oct 05. 2023

소묘로 생계유지가 가능할까?

비주류 장르

소묘를 주장르로 활용하려면 시스템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다루고 있는 주 장르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소묘다. 미술의 시작과 성장을 대부분 소묘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애착과 별개로 주장르를 소묘로 선택했을 때 직업으로 연결이 가능한지 알아보겠다.

본론부터 얘기해 보면 소묘를 해서 고유의 직업을 얻기 힘들다. 소묘가 주장르일 경우, 할 수 있는 영역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정말 소수의 케이스로 연필화 작가 활동이 있다. 예전부터 연필 작가들이 있었지만, 다른 장르들에 비해서는 희소하다. 외주작업도 가능하지만, 소묘만을 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술 전공자에 한해서 학원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전통적인 아카데미가 없기 때문에, 소묘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은 입시학원과 화실이 있다.

입시 학원 쪽을 먼저 살펴보면 입시 소묘 관련 일을 할 수 있다. 내가 입시할 때보다 소묘로 시험을 보는 전형이 확연하게 적어졌기 때문에, 소묘 강사의 입지가 훨씬 좁아진 느낌이다. 입시소묘에 대해서도 그동안 조금씩 다뤘지만, 2005년 이후부터 수요가 적다 보니 큰 발전이 없는 정체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화실을 살펴보면 소묘를 안 하는 곳은 거의 없다. 하지만 소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화실을 찾아보려고 하면 찾기 어렵다. 애초에 독립적인 직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적은 수요층에서 시작하다 보니, 소묘를 전문적으로 유지하던 사람이 많지 않다. 어딘가에 있겠지만 당장 생각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정통적인 방식과 체계성까지 고려해 본다면 확실하게 얘기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앤트, 꺾임, 27.2x19.7cm, 도화지에 연필, 2010


유튜브, sns등을 활용해 개인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지만, 다른 장르도 다 통용되는 루트기 때문에 소묘만으로 할 수 있는 폭과 기회가 적다고 볼 수 있다. 타 장르에 비해 선호하는 사람도 적은 비주류 장르 중 하나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방법도 있지만 단가가 맞지 않는다. 제대로 그리면 시간이 오래 소요되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운영하면 생계유지하기 쉽지 않다.

소묘만 배우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소묘와 다른 장르를 같이 개발해 놓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소묘가 한 장르로 잡았다기보다 미술의 기초로 인식되어, 거쳐 가는 과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로 비유하면 프로 구단 없는 동호회 같은 느낌으로, 역사는 오래됐는데 그만큼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이 안 되어 있는 경우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은, 정확한 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개념의 정착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아직도 소묘하면 그냥 똑같이 그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수, 전공자, 작가 등 현직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빛과 구조를 공부한다는 좋은 목적에, 체계가 부족한 모작의 방식으로 널리 퍼져있다. 이론이 실용적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계승되다 보니,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시피 되었다. 체계적인 곳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야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면 타 분야에 비해 부족한 것은 확실하다. 주변반경에서 찾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적다.


세상은 넓기에 생각하는 곳은 어딘가에 존재한다. 항상 주변에만 없을 뿐.


정리해 보면 소묘는 시스템이 부족해서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고, 기본기를 익히는 통과의례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수요도 적고, 기회도 적고, 공급도 적어 발전이 무뎌지며,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점점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주변에 소묘하는 곳은 많지만, 이 시스템 기준으로 봤을 때, 체험 형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소재들. 육면체, 구, 동물, 정물, 풍경, 인물을 그린 후 소묘를 해봤다고 할 수 있지만, 해본 것과 제대로 할 수 있는것은 다르다.

소묘를 기본기로 활용하기 위한 과정과 방법은 나중에 자세히 풀도록 하겠다.

소묘를 제대로 했다면 그림 이해도가 높아진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재료 숙련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다른 장르로 넘어갔을 때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익힌 소묘로 고유의 직업을 갖기는 어렵다.

보통 AnT 작업실에 소묘를 배우러 오는 경우,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목적이 많다. 소묘를 해야 기본기를 익힐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림 관련 직업을 갖고 계신 분들이 병행하며 다니는 경우가 많다. 

소묘는 숙련도를 이용한 따라 그리기의 체험 형식이 아니라, 장르를 파악하는 이해도 위주로 익혀야 한다. 그렇게 그림에 필요한 기반을 만들 수 있고,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꼭 다른 장르를 병행해야 한다.


소묘가 기초라는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고유 직업은 생기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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