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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앤트 Oct 08. 2023

그림은 크게 그려야 된다

그런가 보다

이유를 모르니 습득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림 사이즈를 작게 그리고 있을 때 '그림은 크게 그려야 된다.' '그림은 커야 한다.'라는 조언을 많이 받았었다. 이런 인식이 생긴 이유가 궁금했다. 그림을 작게 그리면 크게 그릴 줄 모르게 된다는 답변을 듣고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갔었다.

그림은 왜 크게 그려야 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큰 그림이 좋은 것이 맞다. 그 목적이 전시에 있을 때 더 힘을 발휘한다. 미술 전시회에 가보면 웬만한 크기의 그림들은 다 작게 보인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공간이 넓을수록 그림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 보통 성인 체격 정도 되는 전지, 50호, 100호, 등. 작업실에서 볼 때 커 보이는 사이즈도 전시장에 걸어놓으면 확실히 작아 보이고, 그만큼 규모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150호, 200호, 300호 사이즈 정도가 되어야 전시라는 공간이 주는 이점을 잘 살려낼 수 있다. 하물며 5호, 10호, 20호, 8절, 4절, 2절 등의 사이즈는 마치 메모지처럼 작게 보인다.

작으면 어떤 점에서 안 좋을까? 

전시는 그림에 내용도 중요하지만 직접 보러 가는 만큼, 현장감이 우선순위에 있다. 그림 사이즈에 따라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다르다. 사이즈만으로 줄 수 있는 위압감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크기만 해도 전시에서는 유리하다. 작은 그림들은 현장감을 살려내기 쉽지 않다. 

또 그림이 커야 하는 이유는 시야를 넓게 쓰는 연습을 하기 위함도 있다. 전체를 조율하며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책상이 아닌 이젤에서 그리는 이유와도 같다. 시야 확보를 통해 얻게 되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그림을 크게 그려야 된다는 말의 유래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보편적인 것에는 항상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그림을 크게 그려야 한다는 것을 초반부터 적용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림은 처음에 작게 그려야 한다. 작다는 기준은 8절, 4절 정도의 크기다.

초반에는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가 아니며,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익혀 나가는 단계다. 이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시도와 수정을 굉장히 많이 반복해야 한다. 많이 그려 보라는 얘기는 숙련도를 쌓아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지만, 더 정확히 해석해 보면 과정을 반복하며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부족한 상태로 단순히 많이 그리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그림을 크게 그리다 보면 완성하기도 어렵고, 소요되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리게 된다. 그림의 과정을 크게 나눴을 때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눈다면 그 단계마다 시스템이 다른데, 후반부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하게 됐을 때 초반 중반 부분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림을 새로 들어가게 됐을 때 어떻게 그렸었는지 형태 잡는 방법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었을 때 또 감으로 그리게 되며 내용이 쌓이지 않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김앤트, 부서지는것들, 24.2.X33.4cm, oil on canvas,  2023


만약, 같은 방법으로 그림 연습 기간 30일이 주어진다면, 큰 그림을 한 장 그리는 것보다 작은 그림을 5~6장 정도 그려내는 것이 연습에 훨씬 좋다. 그만큼 과정을 더 순환시킬 수 있고 반복될수록 더 많은 검증을 통해 체계화하기 용이하다. 작은 그림들로 충분히 과정을 만들어 놨을 때, 작품을 남기기 위한 타이밍에서 큰 그림을 그리면 된다.

무조건 그림은 그냥 크게 그려야 된다는 말은 무책임한 정보가 된다. 이런 정보를 믿고 하나의 그림을 10개월 정도 크게 그려 작품은 남겼지만, 돌이켜 보면 과정을 더 순환시키면서 재료 숙련도를 올리고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타이밍 맞는 방법들은 실력향상에 분명 큰 도움이 된다.


정리해 보면, 그림은 처음에 작게 연습해야 한다. 작게 연습할 때는 과정을 순환시키며 만드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 방법이 자리 잡혔을 때 큰 그림으로 넘어가면, 전혀 이질감 없이 진행할 수 있다. 

작게 그리는 경우 크게 못 그린다는 생각은 오류다. 정확하게 크게 못 그리는 경우는, 대상에 끌려다니며 그림을 그려온 숙련도가 우선순위로 잡혀있을 때다. 그리는 과정을 순환하는 형식으로 제대로 만들어놨다면, 작게 그리든 크게 그리든 상관없이 적용을 시킬 수 있다.


절대적인 것은 없지만 가벼운 것들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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