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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앤트 Nov 15. 2023

즐겁지 않을 때

묵힘

"즐기면서 하는 것은 다 뻥이다."


실제 우리나라 국보급 농구선수가 얘기한 내용이다. 

다치고 힘들고 스트레스 쌓이면서 그가 쌓아온 업적의 과정을 비추어 봤을 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책임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어조 섞여 있었다.

표현은 정제되지 않고 강하게 느껴졌지만, 내용 공감했다.


한 장르를 익혀나가다 보면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마냥 재밌지는 않기에, 적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생긴다. 이 장르를 하는 것이 맞는지,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 혹시나 재능이 부족한 것은 아닐지 수백 번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즐기면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일류의 조건처럼 여겨왔기 때문이다.

즐기는 것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짜 재능이고 가장 잘하는 사람이 필수로 지니고 있는 능력처럼 회자되는 시대다. 나는 왜 즐겁지 않은가? 때로는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받으면서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내용은 경험으로 느껴온 개인적인 생각의 나열이므로 독자분들이 판단해 보면 좋을 것이다.

내가 그림을 막 시작하는 연습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것들 기본기였다. 누구나 기본기 중요하다 생각하고 말하지만, 기본기 다음에 얹어질 법한 스타일들을 금방금방 찾아 나서는 경우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기본기 자체가 스타일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익혀보는 길을 한번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한 방향으로 진행할 때 수많은 난관을 겪으며 단호했던 의지가 흔들리기도 했다. 

주변 반응 또한 냉담했다.


기본기는 누구나 익히고 넘어가기 때문에 정형화된 패턴이주입식 입시 미술 교육의 폐해다. 보이는 거밖에 그리지 못할 것이며 개성이 전혀 없는 고리타분함이다. 왜 항상 그림에서 기본기를 지키면서 그리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 일정한 틀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즐기면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야 창의력 높게 자기만의 세상을 펼칠 수 있으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그리지 말아라. 


이런 얘기들을 외우게 될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 과정을 겪는 혼동 속에서 애써 태연한 듯했지만, 방향성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상황도 빈번히 발생했다. 결국 후반부에 도달한 생각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즐기면서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직업군을 봐도 전문적인 영역에는 수많은 연구와 연습이 필요하며 책임이 뒤따른다. 예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의 창의성이란 명목으로 이 모든 것을 저버린다는 것이 가벼운 접근으로 느껴졌다.

한 분야를 연구하고 공부하며 연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개념은 어울리지 않는다.

재밌게 놀면서도 조금만 몸이 힘들어지면 즐거운 감정이 차츰 희석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연속으로 먹으면 물리기 시작한다. 좋아하던 일이 반복되면, 기대되고, 설레고, 즐겁고, 좋고, 신나는 느낌들이 지속되지 않는다. 같은 카테고리가 연속되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감각이 무뎌지고, 처음과 같은 즐거움은 익숙함과 상쇄되는 구조임을 느꼈다.


김앤트, 선택, 24.2x27.2cm, Charcoal 32 min, 2018


오랜 기간 동안 생각 끝에 결론은, 즐거움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겪어도 지나고 보면 문득 그리워지고, 그때가 좋았던 것 같은 추억 보정을 겪기도 한다.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들도 하나의 분기점이자 계기로 남는 경우들이며, 힘들었지만 나름 즐거웠다는 양가감정이 든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지만 일반적인 상황을 벗어나 특별했던 기억들이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트라우마로 남을법한 사건과 사고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은 실시간으로 느끼는 인스턴트보다 기억으로 느끼는 묵힘에서 더 깊은 맛이 난다.


공부와 연습, 훈련하고 연구하며결과를 만들어 냈을 때 그 성취감이 커다란 즐거움으로 남는다. 막상 다시 할 때면 잘 안되고 막히는 어려움을 겪는 등. 또 괴롭고 힘들다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을 반복적으로 경험해 나가면서 극복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한 즐거움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는 오른팔이 고장 난 적이 있다. 10년 넘게 그려오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가진 직업병, 허리 디스크, 손목 터널증후군 등에 한 번도 영향받은 적이 없었다. 신체적인 높은 내구성에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주일 만에 고장이 나게 된 상황을 겪었다.

외주 그림 작업을 맡게 되었고, 그 일로 발생하는 금전적인 이득은 굉장히 미약했지만 꼭 해보고 싶었다. 해보기로 한 이상 최선을 다해야겠다생각하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작업이 밀려오며 마땅한 대안 없이 무조건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5일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작업을 하게 되었고 끼니는 그리면서 빵으로 해결했다. 작업을 하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수업하고, 수업 끝나면 다시 작업을 병행했다. 너무 피곤하면 의자에 앉아서 1시간 정도 자고 또 작업하다가 수업하고 빵 먹고를 5일 동안 반복했다. 꽤 큰 무리가 되었는지 5일째에 어깨에서 부북소리가 나며 회전근이 손상되고 오른팔을 올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려야 하는 분량은 더 남아있었고

수업 시간도 잡혀 있었다.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괴로움과 즐거움. 두 가지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자고 쉬고 싶다는 생각하다가도, 또 한 장 완성되면 즐겁기도 했다. 기간 안에 작업물을 넘겼을 때 너무 타이트하게 잡힌 일정으로 제대로 못 그려서 줬다아쉬움이 남았다. 아쉬니 후회되지만, 후회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으며 그 자체는 또 즐겁다복합적인 감정들이 섞였다.

 경우는 극단적이지만, 돌이켜보면 즐거움은 항상 이래왔다. 그동안 연습을 해오면서 힘든 과정들을 즐겁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실행하지 않았다면 이런 종류의 즐거움은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리해 보면, 그리는 행위의 즐거움은 초 중반 정도에 존재하고, 그 이후부터는 성취의 즐거움으로 변환된다. 물론 그리면서 재밌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결과에 대한 즐거움이 메인이 된다.


지점 도달하는 과정을 견디고 이겨내며  성취감 꽤 중독되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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