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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앤트 Nov 18. 2023

큰 나무기둥

잔가지

큰 나무일수록 잔가지가 많다.


학창 시절에 짝꿍이 필기를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그에 반면 나는 필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 당시 판단으로는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까지 다 받아 적고 있는 짝꿍이었다. 하도 열심히 하길래 왜 모든 내용을 필기하고 있는지 이유를 물어봤다. 자신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필기해야만 된다고 답변하는 짝꿍에게 필기에 의지해서 기억하면 기억력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점점 퇴화할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그럴듯한 말이라 생각한 짝꿍과 나는 기억력에 의존하며 중간고사를 같이 망하게 되었다.

돌이켜서 생각해 봤을 때 어렸을 때 가설이 그렇게 허무맹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그 기관이 퇴화한다는 생각으로 기억력에 접근해 본 것이다. 만약에 나와 짝꿍의 자체 기억력이 높았다면 이 가설이 적용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피지컬이 부족했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구나! 후회하면서 그 이후에는 필기 전략으로 바꾸었지만 딱히 성적이 상향되지는 않았다. 


이론의 적용은 성향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AnT작업실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성향이 다르다. 생활하는 체계나 생각하는 방식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인데, 커리큘럼을 쭉 진행해 보면 결국에 대부분 적용되는 구간이 존재한다. 가능한 이유는 유사 이론이 아닌 원리에 가까운 이론으로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받아들여지면 능률이 크게 오르게 된다.

원리에 가깝다는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하며 복잡한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왜?'라는 질문을 통해서 현상에 파고들었을 때 적어도 3~4 단계까지 설명이 가능하면 원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유사 이론은 표면적인 설명 외에 대부분 루트의 답변이 막혀있다. 


김앤트, 시범 프로세스, 27.2x37.2cm, 도화지에 연필, 2018


원리에 가까운 이론들은 역사가 꽤 깊다. 몇 세대 이전부터 실험을 거쳐 여러 방향을 통해 오며 내려온 소중한 정보들이며, 지금도 파생되고 연구되는 현재진행형의 근본이다.

검증되면서 엑기스만 남아 탄탄한 이론의 상태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도 답변이 계속 나온다.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상태며 성향마다 맞춤형 답변도 가능한 유연성을 지니게 된다.

성향에 따라 보편적인 방법이 적용 안 될 때가 꽤 많지만, 이런 부분을 캐치해서 같은 내용이어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시키는 것이 참된 교육의 역할이다.

이 방식을 파악해 보면 혼자서 그림을 그릴 때도 적용할 수 있다. 나도 같은 방식으로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확실히 가능하다고 입증할 수 있다. 

인터넷에 널리 퍼진 내용 중 틀린 내용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전달되는 과정에서 근거가 많이 유실된 내용들이 많다. 정보가 불완전하면 막상 적용이 안 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런 부분에서 수도 없이 막히며 좋은 방향 앞에서도 선회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겪어봤다. 

자신의 성향을 자세히 파악하여,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들도 자신에게 맞춰 적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무조건 많이 발생하는 이벤트다. 알아 가는 과정으로 규정지어 좌절하면 안 되고, 하나에 실패할 때마다 정답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멘탈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김앤트, 시범 프로세스, 27.2x37.2cm, 도화지에 연필, 2018


큰 나무의 가장 핵심은 뿌리부터 올라오는 큰 기둥이다. 그 기둥 나무가 핵심적인 이론이라고 비유해 본다면 여기서 파생된 작은 가지들은 옵션처럼 꾸며줄 만한 서브 이론이 된다. 그 옵션이 굉장히 커지며 부각될수록 특정한 스타일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큰 기둥에 접근하게 되면 성향과 관계없이 바로바로 적용될 만한 핵심 정보들이 가득하다. 단, 조건은 그 나무가 심겨 있는 땅이 일반적인 땅이어야 한다. 나무가 자라나기 힘든 땅도 있는데, 그림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할 때도 가끔 볼 수 있는 비상식적인 경우를 뜻한다. 다행히도 대부분 포함되지 않는다. 제대로만 심어놓고 가꾸면 누구나 크게 자랄 수 있다.


정리한다.

학생 때는 이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수많은 이론을 놓치며 성장했었다.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은 보통 맞춤형으로 바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맞춰 주는 작업을 따로 해줘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장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맞춰야 되는 경우에는

대체로 잔가지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큰 기둥을 만나면 바로바로 알맞게 적용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미 충분히 여러 단계와 상황을 거쳐 검증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향에 맞는 이론들을 분류하고 익혀 나가는 것도 이해도에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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