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인가

타고난 감각

by 김앤트

높은 벽은 사다리를 타고 넘어가면 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잘 안 풀리는 시기가 길어질수록, 재능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생기지만, 재능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을 위한 장으로 작성한다.


‘왜 이렇게 안 그려질까?’

‘노력해도 왜 안 될까?’


어려움이 점차 누적될수록 재능에 대한 의심은 증폭된다.

다른 이들은 그저 수월하게 해 나가는 것 같고, 심지어 천재같이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는 와중에 나만 잘 안 풀리고 막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안 보이는 곳에서 노력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 본다.

하지만, 나 역시 노력을 덜 하는 것 같지 않기에 ‘재능이 부족하구나’ 확신이 들 때가 있었다.


재능 부족에 대한 확신만큼 의지가 꺾이는 일이 없다.


모두 비슷한 조건에서 유독 안 풀리는 느낌이 들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과정을 심하게 겪어 본 경험을 풀어보겠다.

극복기가 아닌 재능에 대한 해석이다.


재능 부족

당시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재능 부족이 유일한 문제라 생각했다.

마음이 편해지고자 회피하거나 포기하고 싶어서, 일희일비하듯 결론을 내렸던 것은 아니다.


꽤 긴 시간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해나가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 있었다.

재능 탓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던 부분으로 밀려난 것이다.


현재 작업실에 다니시는 분들도, 가끔 스스로 재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경유와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


주변에 재능이 뛰어나다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떠올려 보자.


큰 노력을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지만, 각자 나름대로 다 노력한다.

인간의 멘탈리티는 체력과 같이 한계가 있고 무한하지 않다.

그 범위를 넘어설 정도의 성장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꼭 노력 차이 때문만은 아닐 거라 느껴졌다.

노력하는 방법이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지 인지하지 못했고, 그것을 빠른 시간에 찾아내는 것도 타고난 것으로 생각했다.


‘분명, 재능이 굉장히 뛰어나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점점 올라가는 폼을 보게 되면, 천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부분의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칭찬으로도 많이 쓰이는 호칭의 목적도 있지만, 진짜 천재로 여겨져서 감탄하는 경우들도 많다.


그런데 천재가 그렇게 많을까?


180814퍼그.jpg 김앤트, 표상, 27.2x27.2cm, Charcoal 5min, 2018


굳이 천재를 분석하고 정의하는 이유는, 서로 칭찬하는 문화를 깎아내리기 위한 목적이 절대 아니다.

재능을 잘못 인식해 넘을 수 없는 능력으로 각인되어, 스스로 한계를 긋는 악순환의 경우를 개선하기 위함이다.


천재는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다.

있는 그대로 풀어내면, 일반적인 경우와 특출나게 다른, 높고 타고난 능력을 의미하기에 극한의 희소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주변에 그렇게 많을 수는 없다.


많을수록 상향 평준화되며, 상대적으로 다시 일반화된다.


진짜 천재는, 살면서 실제로 한 명 보기도 힘든 존재다.

보통 내가 천재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다 보면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금 앞서있는 상태였을 뿐이지, 넘을 수 없는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니다.


경험담이다.

그림을 시작할 무렵에 주변에 천재가 가득했다.

학생 때 일반 학급에서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은 한 반에 정말 많아야 다섯 명 안쪽이고, 보통 한두 명밖에 없었다.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변에 미술하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놓인 것이, 세상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 공간에서는 ‘잘한다=천재’로 호환되며, 각자 지닌 장점들을 따와 서로 oo의 천재라는 호칭을 붙여 불렀다.

장난 반 진담 반이지만 그런 호칭의 문화 속에서 지내다 보니, 천재가 너무 많아 보였고 그렇게 인식되었다.

문제는 한없이 작아 보이는 내 재능이었다.


내 칭호는 ‘노력의 천재’였는데, 보통 그 포지션은 타고난 재능이 없어 보이는 둔재가 역경을 이겨내고 있다는 뜻으로 부여받는다.

단순히 노력을 많이 해 보여서일 수도 있지만, 타고난 색깔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 같이 좌절하다 보니 스스로를 둔재로 규정지었다.

천재는 고사하고 평범한 재능이라도 갖고 싶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라리 내가 노력을 덜 했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기를 바랐다.

천재들을 관찰해 보면 평소에는 정말 설렁설렁하는 듯하지만,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재능 차이가 아니길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꽤 흘렀다.

천재들의 온. 오프라인 작업물들은 학원에서 그린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나마 집에서 그린 것은 거의 미완성작이었다.

연구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림에 관해 얘기해 보면 그렇게 진지하지 않았고,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생각해서 성장이 더딘 건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했다.


천재들은 학원에 지각과 결석이 잦은 편이었다.

그렇게 성실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생활에도, 눈에 띄게 발전해 가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무언가 불공평하게 잘못 구성되었다고 느낄 정도였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그런 천재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즐기는 자' 못 이긴다는 것. 현재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고민했다.

이룬 것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조금 더 내려놓고 가볍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세상에 천재가 왜 이렇게 많지?’


아무리 부정하려 해 봐도 그런 상황 속에 오래 놓이니, 재능 차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로에 대해 수없이 다시 생각해 볼 정도로 허탈한 감정만 들었다.


아무리 해도 천재들의 벽은 못 넘을 것 같은데, 그래도 미술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하루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꾸역꾸역했다.

그 시간을 버티다 보니 2년이 지났다.


주변에 천재가 있긴 한데, 이상하게 예전보다 그렇게 많아 보이거나 특출 나 보이진 않았다.


천재가 그렸다고 생각했던 그림들이 특색 없이 평범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저장해 놓은 그림들도 대부분 가볍게 느껴졌다.

드라마틱하게 단축했지만, 이 모든 과정은 2년 동안 서서히 개선되어 온 것이다.


그렇게 속앓이했던 부분들이 점차 풀려가며, 전체적인 방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지금 천재라고 생각되는 애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천재와의 경쟁은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기 위해 필요했던 비교 지표였다.


비교하는 방식을 올바르게 적용하면, 객관적인 판단력이 생기고 흡수와 발전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또 몇 년 연습하며 지내다 보니 주변에 천재는 없었다.

잘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말 많지만, 재능이 특출 나서 잘한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들을 천재라 일컫는다면, 말로 풀어내기 힘들 정도의 기나길고, 어렵게 해쳐왔을 길들을.

재능이란 말로 너무 쉽게 가려버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렇게 해내는 것조차 재능이라 한다면 일부는 인정할 수 있다.

만들어 낸 후천적 재능으로서 말이다.

이런 사유들로, 선천적 재능 차이는 아니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분석 결과다.

체계화가 덜 된 장르일수록 천재의 기준이 낮아진다.

체계가 부족할수록 감각에 의존하게 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기에, 정밀한 판단 단계를 거치지 않게 된다.

결국 감각이 더 좋은 사람들이 그 분야에 천재라 불린다.


감각에 대한 방대한 분량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체계에 근접해 있는 능력이다.


접근하는 방식이 체계와 유사할수록 높은 감각을 가졌다고 말한다.


원리와 방법이 디테일해지며 전문적으로 변하고, 그 정보가 널리 알려질수록 감각에 의존하던 방법들은, 대부분 허술한 점이 드러나게 된다.

정보의 가치에서 서서히 뒤로 밀려 나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당대의 진짜 천재라면 감각을 토대로 체계를 잘 짚어내고 활용하여, 새로운 개념들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일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평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존재다.


그런 존재들도, 후대에서는 점점 완성된 체계가 기반이 된 상향평준화로 인해, 당시만큼의 희소성은 옅어지게 된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짧은 주기로 급발전하고 있는 생활 물품들을 보자.

처음에는 굉장히 센세이션 한 기술들이 담긴 물품들도 보편화되면,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업그레이드된 신품이 나오게 되면 실용성이 떨어지며 단종되는 재고가 된다.


하지만 물품들과 달리 시대를 앞서나간 천재들은, 선구자로서 높은 존중을 받아야 마땅하다.

후대에서 그 선구자의 삶과 기록 등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더 완성된 체계를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남을 천재는 시대가 흘러도 해석하기 힘든 고유의 체계를 지니고 있다.


천재는 희소하다.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개념들을 인지하고 분석하여 해야 할 일에 적용해 가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더 깊은 분석을 하고 더 효율적으로 적용하는 방향으로 떨어지는 감각을 채워나간다면,

그 자체가 후천적 재능이 된다.

둔재에서 오랜 기간 벗어나지 못하고, 뒤늦게 알맞은 방향을 찾아냈다.


나는 지금도 재료나 장르가 바뀌게 되면, 상대적으로 더 오랜 기간 분석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일반적인 감각 궤도 정도에 들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점은,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차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재능이 없다 낙심하시는 주변 분들한테는 꼭 이런 얘기를 해드린다.


만들어 가는 과정의 순서만 맞추면 된다.


빌드업 순서만 맞추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말씀드린다.

그 순서에는 구상, 관찰, 원리, 해석, 변환, 실행등 세밀한 체계가 담겨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알려드려 왔고 좋은 결과물이 많이 나왔다.


특히 구상 미술에서 재능은 꽤 공평한 개척지다.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모두 다 비슷하게 해낼 수 있다.


보통은 스스로 천재라 생각 안 하겠지만.

혹시 재능이 있다 생각되는 분들도 감각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본문 내용들의 인식을 바꿔나가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재능 분석에 대한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일부에선, 기본기를 익히면 특유의 감각이 평범하게 변하고, 각각의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리며.

모두가 일률적으로 복사하듯 그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외국 작가들을 예시로 많이 세우며 개성을 지키기 위해, 미술은 전문적으로 배우면 안 된다는 얘기들도 많이 있다.

전문적인 체계에 대한 짧은 경험으로 오는 해석이며, 감각에 대해 막연한 믿음이라 일축하겠다.


천재라는 벽을, 체계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관찰해 보자.


감각마저 지배할 수 있어야 기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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