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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택 Mar 19. 2019

내가 가장 사랑한 안경

뿔테 크라우드펀딩 도전기 #1

 학생 때 처음으로 안경을 쓰게 되었는데, 첫 안경은 메탈 테였다. 나름 엘리트스러운 맛이 느껴지나 싶더니 어느새 뿔테가 유행이 되었고 그게 조금 촌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엔 안경이란게 시력을 교정해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내심 검은 플라스틱의 그 두꺼움이 멋져보였다. 17살. 그때부터 나는 뿔테를 끼기 시작했다.


 뿔테가 왜 끌렸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 고등학교는 불교재단의 학교였다. 두발규정이 심한 분위기. 머리가 어느정도 긴 학생들은 등교길에 교문 앞에서 잡혔다. 그리곤 바로 옆에 있는 교내 이발소로 끌려가 반강제적으로 삭발을 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있어선 안될 일지만 그땐 그게 우리 고등학교의 정체성이었다. 당시엔 나름의 자부심 아닌 자부심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만큼 빡센 학교를 다니니까 웬만한 일에는 끄덕없다~ 이런 말도 안되는 자부심이었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인상이 진하지 않은 나로서는 삭발을 당하고 거울을 보니 참 희미해 보였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데 주인공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엑스트라 같았고 정체성에, 그리고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던 그때의 나는 그게 참 싫었다. 그래서 인상이 뚜렷해보이게 만들어 주는 검은 뿔테가 참 좋았다.


 처음엔 그저 뿔테라서 이뻐보이고 좋았다. 늘 내 몸처럼 끼고 다녔는데 점심시간에 축구를 무리하게 하다 안경이 부러졌다. 그날 저녁 나는 새로운 안경을 맞추기 위해 안경원을 찾았다. 그때가 용돈을 많이 모아둔 시기여서 평소 맞추던 저가형 뿔테말고 좀더 안쪽에 있는 진열장을 들여다봤다. 그곳에 있던 일본의 수제안경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사뭇 다른 재질감과 묵직한 느낌에 마음을 뺏겼다. 프론트와 다리가 45도 각으로 만나고, 다리 생김새도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부분 한 부분 신경써서 제대로 만든것이 오롯이 느껴지는 안경이었다. 모아둔 용돈을 모두 털어 겨우 그 안경을 구매했다. 그리곤 진짜 보물처럼 여겼다.



그때 그 안경. KINOSHITA MASA


 5년을 썼다. 중간에 렌즈에 스크래치가 많아져 새로 맞춰 끼우고 애지중지 아꼈다. 더이상 운동할 때 안경을 쓰지 않고 렌즈를 꼈다. 군인이 되어서도 훈련용 안경은 따로 구비해두었고, 휴가 때는 항상 이 안경과 함께 했다.


 너무 열심히 쓰고다녔던 걸까. 약간의 크랙을 발견했지만 괜찮겠지 하며 쓰고다니다 어느날 길에서 툭. 하고 부러졌다. 알고보니 이 안경은 요즘 뿔테를 만들때 쓰는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가 아닌 셀룰로이드 재질이었다. 셀룰로이드 테의 특이점은 다리에 철심을 넣지 않는 제품이 많다는 것이다. 내 뿔테도 그랬다. 썼다 벗었다할 때 습관 때문인지, 안경을 끼고 책상에서 엎드려 자던 것 때문인지 한쪽이 부러졌다. 이 안경이 툭 떨어진 순간에는 다른 안경이 부러졌을 때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울컥했다. 지난 날의, 과거의 나를 놓아주는 것만 같았다. 아무튼 신기한 경험이었다. 안경디자이너가 된 지금, 이 안경을 내 손으로 직접 고쳐서 다시 쓸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다. 이 안경은 그냥 내 학창시절 얼굴인 것만 같아서. 세월이 흐른 모습 그대로 두고 한번씩 꺼내보면서 감상에 젖는게 좋다.






 나도 이렇게 닳고 닳을 정도로 사람들이 사랑해줄 안경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진저아이웨어에서도 뿔테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크라우드펀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antennaman_

정성택






ginger本 펀딩프로젝트 (~18.11.04)

www.gng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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