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seless

여름 냄새에 대하여

오늘은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by 안테나맨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 5월 중순인데 요즘의 날씨는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한다. 보통 이맘때쯤에는 한창 더웠던 것 같은데 올해는 이상하다. 아, 사실 이런 이상함은 매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직장을 다니며 안정을 찾고 있어서 그런지 원래는 그냥 지나쳤을 사소한 것들에 관심이 생긴다. 자전거로 출근하다 보니 날씨에 굉장히 민감해졌고, 회사가 있는 망원동은 멋쟁이들이 많아서 괜히 나도 옷차림이 배로 신경쓰인다.


오늘은 아침에 비가 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비 내리는 도로의 모습을 보곤 덜컥 겁을 먹고 새로 산 바람막이와 차 키를 챙겨서 든든하게 나왔다. 망원동 뒷 골목에 나만 아는 곳에 조심스레 주차를 하고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점심시간 쯤 되니 비가 뚝 그쳤다. 비가 다시 올 줄 알았는데 살짝 흐리다 맑아지더니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날씨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비가 온 뒤 이 촉촉한 공기를 자전거로 한강을 달리면 기분이 아주 좋았을텐데 생각하고 있자니 참 아쉽다. 오늘은 누리지 못했지만 그 작은 순간의 즐거움이 내가 비를 좋아하는 비밀스런 이유 중에 하나이다.



994c39930cc4496d4b1da7307835467c.jpg Julian Jackson "Sprout", 2018


나는 여름 냄새하면 습함이 떠오른다. 기분 나쁜 습함도 있겠지만 난 보통 좋게 여기는 것 같다. 여름에 놀러 갔던 시골 폐교, 그곳을 빙- 두르고 있는 산이 뿜어내는 촉촉한 공기. 오늘처럼 비가 올 때 나는 습한 느낌. 아빠와 제주도를 여행하며 산림욕을 하러 들렀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숲의 습함. 또 학창시절 뛰어놀다가 땀이 나버린 채로 교실에 들어와 아직 덜 가라앉은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힐 때의 그 습함이 내가 기억하는 여름 냄새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 습함을 즐기려고 하는 것 같다. 흐르려는 땀을 꾹꾹 참으며 에어컨이 빵빵한 공간에 들어갔을 때의 쾌감! 땀을 흘리면서 들어가면 주변에는 민폐지만 천국을 만날 수 있다. 또 냉방병이 걸릴 정도로 에어컨 바람이 지나친 곳에 있다가 그곳을 벗어났을 때 느껴지는 따수함. 이런 것을 느끼려면 일단은 습해야 한다. 마치 이불을 덮고 있는 것과 같다. 지금 막 떠올랐는데 난 그런 상쾌함을 느끼기 위해 어릴 때 일부러 이불 안에 머리까지 묻은 채로 몇 분이나 참았다가 나오곤 했다. 어릴 때부터 생긴 나의 독특한 취향인가보다.


나에게 여름은 그런 것이다.

오락가락하는 것. 습함과 시원함을 오가는 것. 그 사이에 변화를 즐거워하는 것.

코로는 습함과 그렇지 않은걸 번갈아가며 겨우겨우 무언가를 인지하는 것.

그리고 아직 5월인데 여름인척 글을 쓰는 것.


───

25년 5월 15일 작성.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름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