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색 공간
디퓨저라는 것은 어느새 생필품처럼 되어있었다.
향에 민감하지 않은 나는 디퓨저의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혹여나 나에게 또는 내 공간에 좋지 못한 향이 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종종 드는데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곤 하는 것 같다. 보통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걸 활용한다. 생일이 되면 꼭 어디선가 디퓨저를 선물 받는다. 아마도 부담없이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이라 그런 것 같다. 실제로 받을 때마다 굉장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종종, 나 안좋은 냄새가 나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괜히 환기를 하곤 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주는 아이템이라 참 반갑고 기분이 좋다. 그렇게 디퓨저를 선물 받은 때면 나는 향에 신경을 쓰는 사람인냥 행세할 수 있다.
기억하기로는 작년 초, 한참 추울 때에 차량용 디퓨저를 선물 받았다. 말랑말랑한 투명한 받침이 있고 그위에 두는 구조인데, 이게 고정이 잘 되나? 싶었는데 몇개월을 잊고 지낼 정도로 꿋꿋이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다. 안에 오일이 다 마른지도 모르는 채로 시간이 지났다. 오일을 공기 중으로 퍼뜨려주던, 원목 구체로 되어있는 리드스틱에 어느새 먼지가 앉아있었다. 집 한 구석에서 보관중이던 여분의 미개봉 오일이 생각나서 다시 채워넣었다. 다시 향을 신경쓰는 센스있는 사람인척 할 수 있다. 비록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야 겨우 맡을 수 있지만.
그러다 어느날 잠을 찢어지게 자고 컨디션이 좋은 주말, 화정동에 가려고 차에 올라탔는데 어떤 향이 느껴졌다. 꽃향기 같기도 하고 과일향 같기도 했다. 굉장히 익숙한 향이었다. 그날따라 느껴진 그 향이 뭔가 신기했다. 내가 향을 맡았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향이 차에 올라타는 타이밍에 전해진게 참 좋았다.
차 내부가 짙은 회색과 블랙으로만 가득차 있었는데, 그때만큼은 그 공간에서 오렌지색이 느껴졌다. 눈으로는 칙칙한 색들이 보이지만 내가 느끼는 공간의 색은 상큼하고 밝은 오렌지색이었다. 그렇게 유난히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했다. 예쁘게 노을 진 하늘을 보며 운전하면 어쩐지 낭만적이고 괜히 기분 좋은 것처럼 내 차 안은 노을 빛 오렌지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피곤이 쌓였는지 코가 막혀서 다시 느끼진 못했지만 '이 맛에 디퓨저를 두는구나.'를 처음 느껴본 귀한 순간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로 오늘의 기분 좋은 경험을 전해줄 디퓨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로서 다시 그 디퓨저를 보았다. 투명하고 짙은 브라운 컬러의 유리병과 약간 레몬색이 도는 오일, 그리고 원목 리드스틱. 흔히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티피컬한 구조지만 참 멋지다. 차는 순정이 제일이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화려한걸 두고 싶지 않다. 그래도 언젠가 받았던 조약돌 모양의 차량용 방향제나 이 디퓨저처럼 내츄럴한 조형감은 좋아한다. 어떤 캐릭터가 키치한 동물 모양의 제품은 내 취향에서 아주 많이 곤란하다. 그런 외형보다는 향에 더 집중해야겠지만 조형언어로 말하는 나는 이런 것이 먼저 고민된다. 이미 시중에는 이쁘고 멋진 디퓨저가 많다. 독특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찾아보게 된다.
디퓨저.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
차에서 쓰는 것이든 집에서 쓰는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