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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oseless

깔끔함의 기술

60년 경력의 세탁소

by 안테나맨

회사를 다니게 되며, 여유롭던 지난 날의 프리랜서로서의 삶과는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일할 때 빡세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었던 그때의 나는 영업시간의 소중함을 몰랐다. 은행 일을 보는 것도, 택배를 접수하는 것도,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고치는 것도 직장인으로서 행하기는 사실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것들 중 새삼 치명적인 것은 세탁소를 들르는 일이다.


대부분의 빨래는 집에서 하지만, 흰 셔츠나 운동화 만큼은 셀프로는 너무도 부족하다. 그래서 세탁소를 가곤 했는데 최근에는 방문할 시간이 없었다. 학생시절 가족들과 함께 살며 아무렇지 않게 깨끗해져 있던 내 옷과 신발들은 어머니의 시간과 수고스러움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혼자 사는 지금, 집에서 방문세탁 서비스나 늦게까지 하는 크린토피아와 같은 맡기기만 하면 본사로 넘어가 기계가 처리해주는 자동 처리 시스템을 종종 이용하곤 한다. 내가 집에서 낑낑거리며 손으로 하는 것 보다는 결과물이 좋고 더 깨끗한 느낌이다. 하지만 셔츠마다 다른 저마다의 엣지를 잡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신발도 스웨이드 부분이 정도이상으로 헤져서 돌아온다. 옷을 막 엄청 아끼는 편은 아닌데도 이런 부분은 꽤나 속상하다.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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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입던 바지단이 찢어지는 날이 있었다. 사실 단추가 떨어지거나 길이가 살짝 길어서 애매한 바지들이 좀 쌓여있었는데, 이참에 한 번 그것들을 모아 수선을 맡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토요일에도 영업하는 수선집을 찾다가 세탁소를 검색해보았는데, '60년 경력'의 세탁소를 발견했다. 60년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수선도 당연히 한다고 했다. 수선이 필요한 바지 5개와 운동화 두 켤레를 가져가서 맡기기로 했다. 실제 방문해보니 세탁소 사장님이, 아니 소장님이던가. 아무튼 보자마자 아우라가 느껴졌다. 큰 키는 아니지만 각이 살아있는 반팔셔츠와 정장바지를 입고 있었고, 염색을 하셨는지 짙은 블랙의 잘 정돈된 헤어 그리고 번쩍이는 가죽시계를 차고 있었다. 세탁소를 인물화한다면 어렵지 않게 그려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세탁소 그자체였다. 그 공간에는 세탁물이 가득했지만 온통 잘 정돈되고 질서가 있었다. 나는 내 바지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운동화도 함께 맡겼다.


어떻게 수선할 것인가에 대한 짧은 설명과 "예~ 알겠습니다. 잘 해놓을게요."라는 명료한 대답이 돌아왔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여러가지 도구들로 내 바지를 정성스레 수선하겠지. 아니다. 그분에겐 그렇게 큰 정성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해낼 수 있는 간단한 일이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구구절절 설명을 듣지 않아도 느껴지는 신뢰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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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정도 후 찾으러 갔다. 그 결과물은 정말 대단했다. 바지는 수선만 요청했으나 기본 세탁까지 완벽하게 해두셨고 다림질로 각을 살려놓았다. 아, 이게 옷이구나. 나는 그저 천떼기를 걸치는 것과 다름 없이 이것들을 대했구나 싶었다. 기계가 하는 세탁과는 다른 차원의 세탁.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낸 최고로 정결한 상태. 괜히 색도 선명해 보일 정도로 그야말로 깔-끔했다. 바지를 먼저 보고 운동화를 보았더니 그저 깔끔하기만 한 운동화들도 대단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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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보면 묘사할 정도의 기억은 안나지만 사람냄새와 '깔끔'이 공존하는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냄새가 났던 것 같다. 그건 아마 세탁을 할 때 쓰는 세제나 약물의 냄새였으리라. 양쪽으로 뚫린 문이 있었고 큰 창이 있어서 환기가 굉장히 잘 되어, 불쾌한 기운은 전혀 없는 시원한 냄새. 내 옷장에도 그런 산뜻한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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