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ADHD 2편 - 코로나 입학생이 된 도일이의 고군분투기
코로나입학생이었던 아이는 일주일에 등교를 한 두 번 밖에 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도 2시간 후면 집으로 왔다. 학교와 교실에 익숙해지고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후 담임선생님과의 첫 번째 정규상담이 기간이 돌아왔다.
아이가 활동적이고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걸 힘들어하니,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있을 것이라 각오했다. 돌도 되기 전 기어다닐 때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던 워킹맘인 나는 선생님들께 항상 죄송하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쯤이면 상담 전에 느끼는 불안한 감정에 익숙해질만도 한데, 쉽지가 않았다. 쉼호흡을 크게 한 후 정해진 상담시간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임 선생님은 연세가 좀 있는듯한 목소리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살짝 높은 톤으로 말을 시작하셨다.
“도일이 어머님, 어머니도 알고계셔야 할 거 같아서 제가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어요. 자리에서도 자꾸 일어나고,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하고 앞, 뒤 친구들이랑 자꾸 떠드네요.”
“아, 그래요? 제가 집에서 잘 이야기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어머니, 여기 목동이에요.”
“......”.
다른 말에는 어느 정도 납득을 하고 대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이 말에는 도저히 무슨 대답을 해야할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냥 듣고만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입학하기 전에 어느 정도 교육을 받고 오거든요. 이 동네가 교육열이 높잖아요. 그래서 교실에서 얌전히 수업받는 연습이 되어있는 거에요.”
나는 다음 대화를 이어가기 전까지 몇 초 동안 수십 번도 넘게 갈등했다. 내가 목동에서만 입시학원을 십 년 넘게 했다고, 목동이면 뭐 어쩌라고라며 따지고 들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죄 많은 학부모의 입장에서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모든 것에 죄송하다고 하는 학부모의 모습이었다. 죄송하다고, 집에서 잘 가르치겠다고 이를 악물고 사과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적응을 잘 못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에 나는 아이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 불같이 화를 냈고, 학교에서 친구 누구누구가 싫다고 이야기하면 친구들이랑은 사이좋게 지내야한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을 더 싫어하게 되었고, 같은 반 친구들이 싫다고, 친구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탓을 했고, 아이가 투정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학원이라는 동네장사를 하던 나는 담임선생님이나 같은 반 학부모들에게 내가 학원 원장이라는 것을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가 학원 원장이면 아이는 얼마나 공부를 잘할까? 매의 눈으로 아이를 지켜보는 많은 눈들이 있었고, 학원 원장은 아이 선행학습을 얼마나 시킬까? 궁금해하고 물어보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행여나 아이가 성적이 안나오기라도하면, 지 새끼도 하나 못가르치는데 학원을 하네?라며 험담을 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아이를 몰아세웠던 것 같다. 아이를 잘키우기위해서, 아이와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돈을 버는건데,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었던 학원이 오히려 내 아이를 짖누르고 있었다.
아이는 항상 솔직했다. 늘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을 항상 가장 큰 잘못이라고 이야기했던 나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천성이 그랬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함께 탔던 긴 생머리의 아가씨를 보더니 “저기요, 예쁘시네요.”라며 웃으며 말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다행히 그 말을 들은 아가씨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애가 좀 솔직해요~ 오지랖이 넓네요.”라고 수줍게 말하며 상황을 벗어나려 애썼던 기억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있던 어른들은 아이의 능청스러움에 다들 웃으며 이 녀석이 크면 여자 여럿 울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렇게 아이는 모든 부분에서 솔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