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돈에 초연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돈에 초연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돈에 초연할 거라 '기대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그랬다. 종교인이 대표적인데 잊을만하면 뉴스에 나오는 종교인의 돈 관련 안 좋은 소식들이 여지없이 그 기대를 무너뜨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동네 교회 목사님은 주일을 제외하고는 교회 주차장과 놀이터의 문을 잠가 놓는다. 자리가 텅텅 비어 있어도 교인 이외에는 아예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 어쩌다가 모르고 울타리를 넘어간 동네 꼬마들은 전부 목사님에게 쫓겨났다. 욕심꾸러기다. (물론 훌륭하신 분들도 많다. 지극히 사적인 내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요즘은 다들 부자가 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시대라서 이런 욕심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대놓고 욕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괜찮다. 그런데이런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듯 검은(?) 속내를 감춘 채 혼자만 고고한 척하는 사람은 정말 싫다.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일주일 정도 가족과 전라도 여행길에 나섰을 때였다. 최대한 자연 속에서 쉬면서 힐링하려고 나선 길이었다. 원래 휴식을 위한 여행에서는 최대한 휴대폰을 자제하고, 당연히 여행지에서 누구를 만나는 약속을 따로 잡지도 않는다. 그런데 남편이 가는 길에 들를 곳이 있다고 했다. 지인이 그쪽 산에 아는 사람이 통나무 집을 짓고 산다면서 관심 있으면 들러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침 그 지역 산나물과 약초를 채집할 계획이었는데 산속에 산다는 그 자연인이 산나물 판매도 겸하고 있다고 했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가면 더 좋은 나물을 얻을 수도 있고, 숙소로 잡아놓은 휴양림에서 가까워서 들르기로 했다.
그곳은 수십 년 전 빨치산들이 숨어들었다는 산이었다. 과연 과도하게 첩첩산중이었다. 생전 그렇게 야생 같은 산은 처음 가봤다. 산길이 좁아지면서 네비가 버벅댔다. 빽빽하고 울창한 숲 속은 극도로 초록빛이어서 착시 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런 산중에 사람이 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 영영 산속에 갇혀 못 빠져나가는 건 아닌지 불안감이 극에 달할 무렵 저 멀리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찾아오긴 힘들었지만 이런 곳에서 나는 산나물은 몸에 정말 좋겠다는 신뢰가 팍팍 솟아올랐다.
주차하고 내리자 한 중년 남자가 개량한복을 입고 평상 같은 곳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 자연인이었다. 남편이 미리 연락을 하고 간 터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자연인은 아이를 보자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오징어 같은 걸 건넸다. 맛있어, 먹어봐. 정체모를 시커먼 것은 아주 딱딱했다. 가죽나물을 전분에 묻혀 굳힌 간식이라고 했다. 맛이 정말 독특했다. 씹는 재미도 있었다. 아이에게 주니 제법 잘 먹었다. 우리는 가죽나물 오징어를 손에 든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강이까지 풀이 올라올 만큼 무성한 숲이었다. 자연인은 그 뒤쪽이 전부 본인의 나물 밭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오른손에 든 주전자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내가 키운 약초로 담근 막걸리예요. 맛이 기가 막혀요. 아침식사 대신 이거 한 잔 쭉 들이켜면 보약이 따로 없어요."
그는 대자연 같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행복이 뭐 별건가요. 이런 자연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거 먹으면서 맘 편히 사는 거, 그게 최고죠."
그는 밥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맛있다는 그 막걸리를 남편에게 권하지 않고 혼자 홀짝댔다. 그때는 점심이 약간 지난 시각이었는데 그는 이미 코가 벌게질 정도로 취해 있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만난 우리가 그가 사는 방식을 뭐라 할 순 없었다. 나는 오히려 가식 없는 그의 자연스러움이 더 믿음이 갔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풀이 너무 무성해서 아이를 데리고 더 둘러볼 수가 없었던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TV 속 자연인들의 집과 비슷했다.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내 눈엔 그냥 야생에 칸막이만 쳐 놓은 것 같았다. 아이가 낯설었는지 자꾸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왔으니 산나물 얘기나 잠깐 나눈 뒤 사 갖고 나가려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자연인이 밖으로 나갔다. 엉겁결에 우리도 따라 일어섰다.
알고 보니 자연인은 여기서 산나물만 파는 게 아니었다. 산속 체험 같은 것과 함께 식사 제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모르고 간 데다가 점심이 지난 시간이라서 이미 식사를 한 상태였다. 일행인 듯한 손님 대여섯 명이 들어오자 좁다란 집은 콩나물시루가 됐다. 그 사이에서 자연인은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엉거주춤 서 있던 우리는 얼떨결에 자연인이 건네주는 그릇과 수저를 받아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인의 소개로 간 터라 손님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아이까지 셋 다 자연인의 조수처럼 밥통에서 밥을 푸고 반찬을 놓았다. 자연인은 미안했는지 우리에게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부엌 바닥 한쪽에 쭈그리고 앉았다. 공짜밥이라 그릇 하나에 밥 한 덩이와 된장만 놓고 식모처럼 눈치를 보면서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쳤다. 이유야 어찌 됐든 공짜밥을 얻어먹었으니 우리는 손님들이 놓고 간 그릇 정리까지 도왔다.
산나물을 뜯을 동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자연인의 부탁에 우리는 마당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자연인이 나물이 담긴 상자를 들고 왔다. 그런데 그가 부른 나물 값이 좀 비쌌다. 하지만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나물이라는 그의 말에, 또 여행 기분에 부르는 대로 값을 치렀다.
그런데 계산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자연인은 그곳에 도착해서 나올 때까지 우리가 '스친' 모든 것에 값을 매겨 돈을 받았다.
체험을 하지도 않았는데 주변을 쓱 돌아봤다는 이유로 산나물 값에 체험비를, 그것도 아이 몫까지 3인 가격을 얹어서 받았다. 황당했지만 기분 좋게 나오고 싶어서 "체험비가 따로 있었나요? 몰랐네요"라고 웃으며 돈을 지불했다. 더 가관은 그다음이었다. 식모처럼 밥에 된장만 찍어서 셋이 쭈그리고 나눠 먹은 점심값도 아이 몫까지 3인분을 내라고 했다. 호텔 고급 뷔페에서도 다섯 살은 반값만 받는데, 우리가 손님들 상도 차리고 뒷정리까지 하고 나왔는데, 무엇보다 우리가 먹은 양은 1인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걸 인당 15,000원씩 45,000원을 내라고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요구했다.
나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상상을 초월한 자연인의 뻔뻔스러움에 남편도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소개한 사람 얼굴을 봐서 꾹 참고 있는데 자연인이 갑자기 비닐봉지를 쑥 내밀었다. 약초와 약수로 직접 담근 된장이라며 가져가라고 했다. 막판에 그래도 양심이 아예 없진 않나 보네, 라고 생각하려는데 웬걸, 된장 값이 25,000원이라며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된장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된장을 파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는 막무가내로 된장을 안기면서 돈을 내라고 하고 있었다. 안하무인인 그의 태도에 우리가 이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먹고 떨어지라는 심정으로 남편이 지갑을 뒤졌다. 마침 만원 짜리뿐이었다. 자연인은 거스름돈이 없다면서 3만 원을 내면 자기가 5천 원을 계좌 이체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대자연의 품 속에서 세상사에 초연한 채 매일 소확행을 느끼며 사는 자연인과 한 시간 가량 만나고 약 15만 원을 뜯겼다.
자연인은 끝까지 상상초월이었다. 너무 얄미워서 꼭 거스름돈 부쳐 달라고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냈는데 그 5천 원은 영원히 송금되지 않았다.처음에 아이에게 준 가죽나물 값을 안 받은 게 오히려 신기했다. 아니면 거스름돈 5천 원 안 보낸 게 그 가죽나물 값이었나?
나중에 들은 소식인데 자연인은 산나물 농장이 망해서 결국 그 산을 떠났다고 한다. 장사 마인드가 그러니 산나물 판매인들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통해서 세상에 돈에 초연한 사람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세상사에 달관한 듯 산속에 사는 도인도 돈은 좋아하더라. 아니, 훨씬 더 좋아하더라. 초연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 돈이 안 풀려서 들어간 것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세상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