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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n 16. 2021

개 키우는 사람이 죄인은 아닙니다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두 마리 있다. 하나는 털 있는 강아지, 하나는 털 없는 강아지다.  털 있는 강아지는 진짜 강아지고, 털 없는 강아지는 아이를 부르는 애칭이다. 아이는 엄마가 강아지를 사랑하는 걸 알고 질투 대신 자기도 강아지라고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두 마리야"라고 말하면 아이가 "나는 털 없는 강아지"라고 받아치며 좋아한다.



나처럼 이렇게 아이와 강아지를 동시에 키우는 사람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다. 요즘은 노키즈존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다가 반려견 출입 금지인 곳도 많다. 주말마다 둘 다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눈알이 빨개지도록 검색한다.



그러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이제는 몇 군데 정해놓고 주말마다 돌아가면서 방문한다. 아이를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을 발견하면 먼저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지 확인한다. 열에 일곱은 출입이 안 돼서 그럴 경우는 아쉽지만 강아지는 집에 두고 사람들만 외출한다. 그게 미안해질 때쯤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곳으로 놀러 가는 식으로 철저한(?) 계획 하에 움직인다.



이렇게 하지 말란 건 절대 안 해도 억울한 경우를 자주 당한다. 개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개 주인이 지켜야 할 매너는 수두룩한데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예의는 아예 없는 듯한 기분이다. 일단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은 '무례'할 것이라고 단정지은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외출할 때마다 매번 놀란다. 엄연히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곳에, 목줄을 단단히 채우고, 강아지가 멀리 가지 못하게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줄 길이를 2초마다 조절하고,  배변 봉투를 넉넉히 챙겨 쌀 때마다 LTE급으로 치우면서 데리고 다니는데도, 강아지가 나타났다 하면 저 멀리서부터 눈살을 찌푸리고 지나가질 않나, 더러운 똥을 피하듯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멀리 돌아가질 않나, "으악!!!" 하며 하마터면 개줄을 놓칠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질 않나(참고로 우리 집 강아지는 5kg 남짓의 소형견이다), 개똥을 치우고 있는데 똥 좀 치우라고 한 마디 하고 가질 않나, 황당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럴 땐 정말 나더러 어떡하라는 건지를 모르겠다.



개가 그렇게 싫으면 개 출입이 안 되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 출입이 가능한 곳보다 불가능한 곳이 훨씬 많으니 그 사람들의 선택지가 훨씬 다양하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공원이었는데 당연히 반려견 출입이 가능해서 아이와 강아지를 데리고 놀러 갔다. 돗자리를 펴놓고 다 같이 공원 한 바퀴를 산책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불같이 화내는 소리가 들렸다.



"개 줄 좀 제발 좀 잡아욧!!!"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았다. 나는 개줄을 꼭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날 쳐다보고 있었다. 옆을 보니 강아지가 풀밭 쪽으로 냄새를 맡으러 가면서 개줄이 '아주 약간' 길어져 있었다. 그 여자는 나와 강아지 사이의 그 줄 앞에 서 있었다. 아마 걸어가는데 앞에 줄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더도 말고 세 발자국이면 줄을 피해 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 여자는 내가 개줄이 늘어난 채 관리하지 않아 자기 앞길을 방해한 '죄'를 저지른 양 당장 치우라고 '당당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로 잘못한 것도 없이 항상 조심하는 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화가 났다. 이렇게 무례할 수가. 여기서 줄을 어떻게 더 잡으란 말인가. 개 키우는 사람은 개 안 키우는 사람이 가시는 걸음걸음 방해도 말고 눈에 띄지도 말아야 한다는 건가. 아니면 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개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건가. 이건 대역죄를 저지른 반역자를 처단하려는 분노와 같은 수준이었다. 설사 상대방이 잘못한 게 아무리 확실한 상황이라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토록 무례하게 불 같이 화낸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때 강아지가 냄새를 다 맡았는지 내 옆으로 오면서 줄이 제자리로 돌아와 그 여자의 앞길이 트였다. 그 여자는 나를 아래 위로 째려보더니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아이만 없었으면 쫓아가서 한 마디 해 주고 오는 건데. 공원에 있는 사람들을 다 붙잡고 과연 이게 내가 잘못한 건지 묻고 싶었다. 그날 화를 참느라고 모처럼만의 외출 기분을 망친 건 물론이었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런 억울한 대접을 꽤 자주 받는다는 사실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무시당하는 건 다반사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서 타려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는 개 싫어한다고 막무가내로 못 타게 밀어내고 문을 닫아 버려서 못 탄 적도 있었고, 멀쩡히 개줄에 잘 묶어서 줄을 최대한 짧게 잡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었는데 문 열고 나오던 옆집 아줌마가 복도가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 바람에 잘못한 것도 없이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 드리면서 집 안으로 다시 쫓겨 들어간 적도 있었다. 들어가는 내 뒤통수로 "내가 개를 무서워하는데 개를 복도에 데리고 나와 있으면 어떡하냐"는 말도 안 되는 질책이 문이 닫힐 때까지 날아 들어왔다. 나는 그날 이후 외출할 때 나가려다가 그 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다시 들어온다. 강아지를 안 데리고 나갈 때도 그렇다. 그런 사람을 상종하고 싶지 않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사람은 자기 집 음식물 쓰레기를 복도에 버리는 양반이다. 그런 마인드의 소유자니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그 정도일 수밖에.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훨씬 많지만 이야기가 길어져서 줄이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개 키우는 사람이 죄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나도 개를 키우지만 정말 매너없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엄연히 맹견이 분명해 보이는 개를 입마개도 없이 버젓이 데리고 다니거나, 자기 개가 똥을 쌌는데 치우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 사람은 예사로 만난다. 하지만 그건 그런 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다.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발, 개 키우는 사람의 매너만 부르짖지 말고 개 키우는 사람에 대한 매너도 지켜주자. 개 키우는 사람과 개 안 키우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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