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창가 Jun 10. 2021

21만 원짜리 김밥 클래스에서 배운 것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디지털 왕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나는 철저한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스마트폰도 아주 늦게 대열에 합류했고 카톡도 늦게 가입했다. 처음엔 당연히 블로그, 인스타,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각종 SNS와 전혀 친하지 않다.(지금은 친해졌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부득이하게 스마트폰과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다 못해 유치원에서 찍은 사진 한 장도 전부 앱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자주 들여다보니 SNS에도 접속하게 됐다. 나는 블로그를 하지 않았지만 정보를 찾다 보면 남의 블로그는 들어가 보게 된다. 한동안 매일 눈만 뜨면 요리 검색해서 해 먹는 게 낙이었다. 그때 알게 된 요리 블로거들의 블로그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나와 코드가 맞는 블로그들에 구독 신청을 해 놓고 새 글이 올라올 때마다 읽곤 했다.



그중 한 곳에서 요리 강좌를 연 적이 있었다. 주기적으로 요리 강좌를 여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신청해 보지 않았는데 그날은 메뉴가 김밥이었다. 나는 김밥을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과 아이가 좋아했다.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야외로 나갈 때마다 동네 김밥집에서 쿠킹포일에 말린 김밥 몇 줄을 덜렁 싸 가는 게 미안했다. 이 기회에 김밥 싸는 법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끌리듯 신청했다. 며칠 뒤 소수 정예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신청 완료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때가 그 블로그를 구독한 지 몇 년은 된 상태라 블로거에 대한 나름의 신뢰가 있었다. 경쟁이 치열한 요리 분야의 파워블로거였고, 음식에 정성과 성실함이 그대로 묻어나서 좋아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문자로 알려준 강좌 금액이 생각보다 비쌌다. 김밥 마는 법을 배우는 데 무려 21만 원이었다.



물론 김밥 이외의 메뉴도 있었지만 메인은 김밥이었고 내가 신청한 이유도 김밥 때문이었다.



김밥에 금가루 바르는 법을 알려주나.



가격을 보고 잠시 기분이 상했지만 기왕 마음먹은 김에 김밥을 마스터해서 가족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물론 그런 결정에는 몇 년 간 보아온 그 블로그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작용했다.



드디어 21만 원짜리 김밥 클래스 D-day가 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노트와 필기구를 챙겨 들고 요리 교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블로거의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했다. 부엌은 음식 준비로 분주했는데 블로거와 도우미 분들 간에 합이 잘 안 맞는지 계속 트러블이 있는 분위기였다. 블로거의 짜증 섞인 반응이 간간히 들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전날 급하게 섭외해서 오신 분들이었다.



나는 일단 자리를 잡으려고 한가운데 마련된 탁자의 의자를 하나 뺐다. 아니, 빼려고 했다. 그런데 나오지가 않았다. 20명 정도의 자리가 마련된 공간이었는데 의자와 의자 사이가 너무 좁았다. 탁자가 대충 계산해도 15명 이상은 앉지 못하는 크기였다. 억지로 의자를 구겨 넣었는지 의자 어깨 부분이 서로 맞물려서 블록을 딱 끼워 놓은 것처럼 빠지지 않은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의자를 간신히 빼냈다. 그런 다음 꽃게처럼 옆으로 몸을 돌리고 배를 최대한 집어넣은 다음 숨을 멈추고 얼른 의자에 앉았다. 애초에 그 의자를 어떻게 똑바로 놓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원상태로 들어가질 않았다. 결국 의자를 살짝 비스듬히 빼놓은 상태로 억지로 구겨 앉았다. 인원을 너무 욕심껏 받았다는 느낌이었다. 역시 우려한 대로 시식하려고 젓가락을 들 때마다 옆사람과 팔이 부딪혀서 서로 민망해했다.



시간이 되자 별도의 소개나 인사 없이 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블로거의 얼굴이 매우 피곤해 보였다고 느꼈었는데 내 느낌은 정확했다. 팔이 다쳐서 원래 칼질하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계속했다. 김밥 클래스에서 김밥을 써는 게 기본인데 칼질을 하면 안 된다니 좀 황당했다. 그럼 팔이 나은 다음에 강의를 열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팔 아프다는 말을 양념처럼 버무리면서 김밥을 썰어주긴 했다.



한 종류의 김밥이 끝날 때마다 시식 타임이었다. 그런데 맛을 보고 진심으로 실망했다. 맛이 그냥 그랬다. 사실 요리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사의 친절함이나 장소의 쾌적함보다 음식의 맛이다. 일단 맛있어야 그 돈 내고 배울 가치가 있다. 그 김밥은 맛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매우 평범했다. 주말에 야외로 나갈 때 매일 사 먹어서 이제는 안 사 먹으려고 마음먹었던 우리 동네 김밥집과 맛이 비슷했다. 점점 실망감이 커졌다.



실내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너무 더웠다. 약 5가지 정도의 메뉴가 진행됐는데 끝에 가서는 집중이 흐트러졌다. 자리도 불편하고, 땀도 뻘뻘 났다. 무엇보다 저걸 저렇게까지 해서 집에서 해 먹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주 쓰지 않는 재료에 고난도의 레시피였다. 마치 새로운 김밥을 개발하기 위해 만든 김밥 같았다. 지금도 거기 들어갔다는 재료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무엇이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총알처럼 강의실에서 튀어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마침 같은 방향인 두 분과 함께 걸어가면서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분은 한식 조리사였고, 다른 한 분은 대한민국 웬만한 요리 수업은 거의 다녀본 요리 마니아였다. 그런 두 분의 평가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다. '이 돈 내고 배울 가치는 없었다'였다.



그날 밤, 나는 몇 년 간 애정했던 그 블로그를 미련없이 나왔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이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도 궁금한 적도 없었다. 물론 그 블로거는 대단한 사람일 거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오로지 자신의 피와  땀만으로 파워블로거의 대열에 들어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도 안다. 인정할 건 인정하지만, 그 사람을 보면서 느낀 건 역시 SNS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진리다. 대부분은 아닐지 몰라도 많은 경우 과장돼 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SNS에 보이는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혹하는 것도 현실이다. 나도 그래서 그 사람에게 김밥을 배우겠다고 갔고 이렇게 실망하고 돌아왔다.



엊그제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 먹으면서 오랜만에 그 블로거를 떠올렸다. 그 사람도 맨 처음에 블로그를 시작할 땐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매일 하나씩 요리 포스팅을 올리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았겠지. 그런데 거기서 얻어진 성취감이 앞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요리에 '뽀샵'이 들어가게 된 건 아닐지.  앞으로 SNS를 해 나가면서 그날 그 블로거에게 느꼈던 기분을 남에게 전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날 거금을 내고 배워온 김밥은 집에서 단 한 번도 해 먹은 적 없다. 남편은 아직도 내게 묻는다.



"21만 원짜리 김밥은 언제 싸 줄 거야?"



나는 그럴 때마다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21만 원 내고 김밥은 역시 사 먹어야 한다는 걸 배우고 왔어. 나가자, 내가 김밥 쏠게."









매거진의 이전글 넌 좋겠다, 엄마가 집에서 놀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