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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n 04. 2021

넌 좋겠다, 엄마가 집에서 놀아서



살다 보면 남의 일에 지나치게 참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런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무례한 말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오히려 듣는 사람이 당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랄 정도다. 과장 좀 보태서 마치 온 동네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철학을 아기 엄마들에게 가르치려고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다. 아파트 1층에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벌써 "아이고, 귀엽네"라는 기본 인사로 시작해서 "애 추운데 옷 하나라도 더 입혀야지" "뭐 흘렸으니까 얼른 닦아줘라" "유모차 자꾸 태우면 안 좋다" 등의 다소 낮은 수위의 참견이 날아온다. 그러다가  "이유식이 알갱이가 너무 크다" "엄마가 애를 너무 싸서 키운다" "기저귀는 그런 거 쓰면 안 좋지" "울 때마다 애를 안아주면 안 된다" 등의 질책성으로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 어떤 분은 그네 밀어주는 방법까지 코치해 주기도 한다. 그네를 밀어주는 것도 연령별로 따로 방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주로 친정 엄마 연배의 어르신들이라서 그냥 웃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편인데 정도가 지나친 말을 하는 경우는 좀 참기가 어렵다. 내가 겪은 최고봉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떤 할머니였다.



아침부터 몸이 끈적해질 정도로 불쾌지수가 높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당시 4살이던 아이는 새벽부터 뒤척이더니 평소보다 2시간은 더 일찍 일어나서 징징 보챘다. 나는 그럴 때 보통 산책을 나간다. 밖으로 나가면 집에 있을 때보다 시간이 잘 가고, 여름이라서 어차피 오전 10시만 돼도 불볕더위였다. 얼른 나가서 아이의 에너지를 한 차례 빼고 오는 것이 상책이었다.



언제든지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양손을 쓰려고 매고 다니는 배낭 안에 먹을 것과 물티슈, 만약을 대비한 갈아입을 옷, 수건 등을 챙겼다. 금세 불룩해졌다. 제법 묵직한 가방을 매니 나가기 전부터 땀이 흘렀다. 아이는 아까부터 크록스를 신고 현관에서 종종 대고 있었다. 복도로 나간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까르륵 웃었다. 신이 난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할머니 한 분이 타고 있었다. 나는 공손히 인사한 다음 엘리베이터에 탔다.



할머니가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원래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귀엽다는 듯 빤히 바라보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예상외의 질문이 날아왔다.



"얘는 오늘 어디 안 가요?"



어린이집에 안 다니냐는 질문이었다. 잠깐 기관에 보냈다가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가정 보육을 하고 있던 때였다. 4살은 대부분 어린이집을 시작하는 나이다. 다들 어린이집에 갔을 오전 시간에 엄마랑 다니니 궁금해서 물은 것 같았다.



"네, 어린이집 안 다녀요."



그랬더니 아이를 보던 할머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엄마가 일 안 하나 보네."



그땐 전업맘으로 지내던 때였다. 할머니 눈에도 아침 그 시간에 아이와 함께 산책 나가는 걸 보니 직장 다니는 사람은 아닌 게 확실했을 것이다.



"네, 맞아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할머니는 아이한테인지 나한테인지 모를 한 마디를 던졌다.



"넌 좋겠다, 엄마가 집에서 놀아서."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논다고?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내뱉고는 열린 엘리베이터 문으로 나갔다. 가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천둥처럼 울렸다.



"우리 딸은 지금 회사에서 일하느라 바쁜데."



그걸로 끝이었다. 예의상 건네는 미소조차 없었다. 진심인지, 오지랖인지, 비아냥인지, 자기만족인지 모를 그 말을 끝으로 할머니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4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있는 내 발걸음은 할머니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아무 이유 없이 따귀를 맞은 사람처럼 혼자 초라하게 남겨졌다. 쌩하고 거침없는 할머니의 언행에서 남에 대한 배려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 데리고 산책 한 번 해보려다가 '집에서 노는 여자'가 돼버린 나는 내가 정말 놀았는지 나의 전날 일과를 돌아봤다. 그냥 딱 하루만 보면 됐다. 1년 365일이 똑같았으니까. 전날도 난 제대로 잠도 못 잔 채 매일 치워도 치워도 끝나지 않는 살림과 주말도 없이 24시간 지속되는 육아에 허덕였다. 집에서 논다고? 할머니도 아기 키워봤을 텐데 다 잊은 건지, 아니면 본인 딸이 워킹맘이라서 자신의 옛날은 잊은 건지. 그 할머니는 놀면서 아기를 키웠을까? 똑같이 힘든 시기를 보내며 아이를 키워냈을 같은 여자가 딸뻘인 아기 엄마의 일상을 그렇게 매도해버리는 걸 보니 아직도 전업맘을 '집에서 노는 여자'로 보는 시선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햇살 아래서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울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노력과 애씀이 부정당한 더러운 기분, 바로 그거였다. 할머니가 무심코 던진 돌에 '집에서 놀던' 이 개구리가 제대로 맞은 것이었다. 기분 같아서는 그 할머니 집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고 한 마디 해주고 싶지만 꾹 참고 대신 여기에 쓴다.



할머니, 엄마가 집에서 놀아서 저희 아이가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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